어릴 때 좋아하던 동요 중에 ‘겨울나무’라는 노래가 있다.
‘나무야 나무야 겨울 나무야/눈 쌓인 응달에 외로이 서서/아무도 찾지 않는 추운 겨울을/바람 따라 휘파람만 불고 있느냐’
이 노래를 듣거나 부를 때마다 가슴 어딘가에는 겨울 찬바람이 불고 쓸쓸함이 밀려들지만, 그래도 추위를 이겨내는 겨울나무의 강인함도 느껴지곤 했다. 겨울나무를 보면 일생을 정직하게 살아온 한 생애를 마주한 듯하다. 나이에 대하여 부끄럽지 않고 섭섭해하지 않는 풍모를 본다.
겨울나무는 사람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겨울나무는 이 세상에서 우리의 시작과 끝은 겨울나무와 같이 아무것도 없는 빈손임을 깨닫게 한다. 빈 가지에서 시작하여 봄이 되면서 생명의 잎들이 돋아나고 꽃이 피며, 여름 동안 무성하게 자라 가을에 풍성한 결실을 맺은 후 다시 겨울이 되면 모든 것을 비우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나무처럼 우리의 삶도 그러하기 때문이다.
춥다. 겨울이 우리에게 주는 이미지는 정지요 침묵이다. 여름내 물을 뿜어 올리던 분수도, 가을이 오기 무섭게 탈탈거리며 돌아가던 솜틀도 겨울이면 그 소리를 그치고 깊은 침묵 속에 빠져든다. 그러나 겨울의 침묵에는 무성(無聲)의 언어가 있다. 이 침묵의 언어는 때로 웅변의 언어를 능가하기도 한다. 겨울이 침묵 속에서 의연할 수 있는 것은 봄여름 가을을 다 겪어본 체험이 있기 때문이다. 겨울에는 인생의 모든 것을 체험한 사람의 달관 같은 것이 있다. 기쁘고 슬픈 세상사를 모두 체험한 사람은 그가 지닌 눈빛, 태도, 목소리에 남다른 무게를 지니게 된다. 소녀들이 화려하게 들뜨게 마련인 것은 인생의 봄 밖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탓이다. 그러나 겨울은 모든 것을 지켜보았고, 모든 것을 겪어보았다. 봄의 화사함도, 여름의 풍요로움도, 가을의 허허로움까지도. 그리하여 겨울은 침묵으로밖에는 표현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대신 이 많은 체험이 그 침묵 속에 넘치는 언어를 담게 한 것이다.
겨울의 침묵 속에는 고독이 감추어져 있다. 그것은 언뜻 보면 죽음처럼 생각되는 절대고독이다. 정말로 고독한 사람은 때로 지나친 밝음으로 자신을 위장하려 든다. 겨울은 자신의 고독을 추위 속에 감춘다. 아니, 추위가 있음으로 겨울이 더욱 고독한 것인지도 모른다. 겨울의 추위는 고독을 상승시킨다. 그리고 겨울은 고독의 더께를 더하여 자신을 그 안에 침잠시킨다. 무대에서 갈채를 많이 받는 배우일수록 텅 빈 객석의 고독을 주체할 수 없듯이, 겨울은 다 떠나버린 이 황량함을 무거운 고독으로 품어 안는다. 안아도 안아도 시리게 파고드는 겨울이 그토록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겨울의 지성이자 자존심이지 않을까.
그러나 겨울의 고독은 절대고독일 수가 없다. 거기에는 봄을 기다리는 남모르는 설렘이 숨겨져 있는 까닭이다. 만약 그 기다림이 없다면 겨울은 진정 계절의 끝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겨울 한때 나뭇잎이 떨어진 것을 보고 우리는 나무가 죽었다고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겨울에도 나무는 보이지 않게 자라고 있기에, 얼어붙은 흙 밑에서도 나무뿌리는 끊임없이 자라기에 말이다. 겨울은 나무에게 혹독한 계절이다. 그러나 잎이 떨어진 자리와 줄기 그리고 가지 끝에 달린 작은 생명체 겨울눈을 보면 생명의 고귀함을 느끼지 않는가.
잎새 다 떨구고 앙상해진/저 나무를 보고 /누가 헛살았다 말하는가/열매 다 빼앗기고/냉랭한 바람 앞에 서 있는/나무를 보고/누가 잘못 살았다 하는가/저 헐벗은 나무들이/산을 지키고 숲을 이루어내지 않았는가/하찮은 언덕도/산맥의 큰 줄기도/그들이 젊은 날/다 바쳐 지켜오지 않았는가….
도종환 시인의 ‘겨울나무’라는 제목의 시다. 봄부터 무성했던 잎들이 여름과 가을을 지내고 모두 다 떨어져 버리고 가지만 남아 있는 겨울철의 나무를 바라보며 허전해하거나 허무해하기가 쉬운데 시인은 겨울에 가지만 남은 나무의 모습만 가지고 나무를 평하지 말고 그 나무가 바로 봄부터 여름을 지나 가을에 이르는 동안 울창한 숲을 이루고 늠름한 산을 이루어 온 나무임을 기억하고 잎새 하나 남아 있지 않은 나무라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한다. 시인은 겨울철 나무를 바라보며 그것이 나무 모습의 전부가 아니라 가지만 남아 있는 지금의 모습과는 다른 나무의 또 다른 모습이니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나무의 모습이 있음을 알려주며 우리네 인생에 대한 평가 또한 그래야 하지 않겠느냐는 도전을 주고 있는 것이다.
잎이 다 떨어진 앙상한 나뭇가지. 마치 잠자듯 다소곳한 모습만 보이고 있다 할지라도 나무에겐 겨울은 봄의 화사함을 준비하는 계절이다. 사실 봄날의 꽃잎들은 모진 바람과 눈보라를 참고 견뎌낸 인고(忍苦)의 결과가 아닌가. 강인하고도 끈끈한 나목(裸木)의 의지. 그 끈끈한 인내야말로 내가 배워야 할 것이란 생각에 가슴이 떨려온다. 기다릴 사람, 기다릴 그 무엇이 있다는 것보다 더 큰 삶의 힘은 없으리라. 기다림은 보다 기쁘고 아름다운 결과를 앞에 둔 소망이요, 기쁨을 약속해주는 행복의 전조이며, 끝까지 이르는 인내와 역경을 극복하는 용기를 함께 가져다주는 진실 되고 보람된 인생의 소망이다. 오늘도 겨울나무는 칼바람 앞에 나목으로 서서 ,속으로 몸속으로 불타면서 ,거부하면서 밀고 올라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문득 푸른 잎이 된다. 나무는 자기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아! 겨울나무의 강인한 의지여 생명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