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란드를 사들이고, 군대를 보내 파나마 운하를 되찾겠다. 캐나다는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라. 중국에 관세 폭탄을 퍼붓겠다. 유럽은 미군 주둔비를 대폭 올려야 한다. 취임하면 바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끝내겠다.”
지난 19일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제47대 미국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쏟아낸 발언들이다. 국제정치의 상식이나 관행을 벗어난 말도 안 되는 소리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런 말들이 마냥 농담만은 아니다. 과거 그의 행적이 이를 말해준다.
트럼프는 과거에 비상식적이나, 관행을 벗어난 정책도 예사로 밀어붙였다. 동맹국도,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도 그의 사전에는 없다. 오로지 미국의 국익만 눈에 보일 뿐이다(진정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는 두고 봐야 하지만). 외교에서도 이익만 쫓는 사업가처럼 행동한다. 내각 인선도 파격에 파격을 일삼고 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라는 구호와 마초처럼 행동하는 그에게 지지자들은 환호한다.
덴마크 자치령인 그린란드는 북국 권 항해와 광물자원 때문에 안보와 경제적으로 주변국의 이해가 얽혀 있다. 미국, 러시아, 중국이 모두 침을 흘리는 지역이다. 종주국 덴마크는 단독으로 러시아와 중국의 위협에 대처할 힘이 없다. 그린란드인들도 덴마크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 않다. 트럼프는 이를 파고들어 매입이라는 카드를 거래하듯 우선 툭 던져 놨다. 파나마 운하 운영권은 언제든 미국이 되찾을 수 있다. 파나마 단독으로 대처하기는 역부족이다. 미국에 맞서 도와줄 나라도 별로 없다. 구한말의 조선처럼-.
트럼프의 이 같은 언행에 중국이나 러시아는 빙긋이 웃고 있다. 강력히 비난도 하지 않는다. 중국의 대만 무력 합병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도 연고권 행사라는 같은 명분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중국이나 러시아도 트럼프식으로 힘의 외교를 구사할 유혹을 느낄 것이다.
그린란드나 우크라이나는 한국과는 먼 나라다. 그러나 중국과 대만은 아니다. 중국은 한국을 제후국처럼 여긴다. 그런 인식이 중국인들의 DNA에 뿌리 깊이 박혀 있다. 시진핑이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유사시 중국이 북한에 군대를 보내 자치령으로 할 것이라는 예측마저 나온다. 트럼프의 파나마 운하 점령 발언 등이 중국의 ‘주변국 제후화’라는 DNA를 자극할 것 같다.
국제 정세는 트럼프 등장으로 급변하고 있다. 북한의 핵무장을 용인하되 미국을 위협하는 대륙간 탄도탄만 억제하면 된다는 주장도 트럼프 측근에서 나온다. 이리되면 한국은 북한 핵을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한다. 주한 미군도 감축 내지 철수가 예상된다. 트럼프는 주한 미군 주둔비도 대폭 올리려 할 것이다. 그는 대선과정에서 한국을 ‘머니머신’이라고 수차 언급했다. 취임 즉시 15%의 보편적 관세인상은 물론 반도체 등 미국에 투자한 한국기업에 대한 미 정부의 지원금도 모두 폐지하겠다고 했다.
국제정세가 ‘힘이 정의’라는 제국주의 시절로 회귀하는 듯하다. 이런 녹녹치 않은 현실에 한국은 눈을 감고 있다. 한국 사회는 계엄과 탄핵, 대통령 구속, 특검 등의 소용돌이에 허우적거리고 있다. 정부는 수장을 잃고 대통령 권한 대행의 대행체제로 갈팡질팡이다. 그나마 이 정도라도 정부가, 경제가, 안보가 유지되는 것이 신기하다.
국회 청문회에 불려 나온 군 핵심장성들의 어처구니없는 태도와 비굴한 행태를 보면 안보를 그들에게 맡길 수 있나 하는 의구심이 든다. 자기 살겠다고 눈물까지 흘리는 장성들이 우리 군의 지휘부였으니 말이다. 나라는 진영으로 나뉘어 서로 상대를 불구대천지 원수처럼 여기고 밥도 같이 안 먹으려 한다. 한국의 국운은 정말 여기까지인가. 이석구/ 전 언론인·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