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울하고 답답한 날들을 보내다가 지난달 24일에 반가운 뉴스를 하나 접했다. 헤이그에 있는 국제형사재판소 (ICC) 검사장이 아프가니스탄에 관심을 보여줬다. 탈레반 정권의 최고지도자와 대법원장을 대상으로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죄목은 반 인류 범죄행위인 아프간 여성 박해 혐의다. 2021년에 다시 정권을 되잡은 탈레반 집권자들이 종교의 이름으로 여성들의 권리를 엄격한 규칙들을 마련하며 철저히 박탈했는데 이 체포영장은 한줄기 빛이었다.
사실 이 체포영장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른다. 그래도 당면한 문제를 직면하는 한가지 방안이다. 더구나 근래에 체포영장을 받은 러시아의 푸틴대통령이나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가 꿈쩍하지 않으니 탈레반 지도자들도 두려움을 갖지는 않을 것이지만 국제사회의 따가운 주시는 무시못할 것이다.
세상 여러 곳에 워낙 굵직한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서 아프간 여성들의 극악한 상황을 사람들이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걱정했는데 이번에 내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세상 어느 곳엔 가 일어나는 일에 누군가가 주시하고, 누군가가 마음을 아파하고, 또 누군가는 행동으로 해결방안을 찾고 있음에 희망을 가진다. 그렇게 꾸준히 해결책을 찾는 인권단체의 활약에 아프간 소녀들의 해맑은 얼굴이 어른거렸다.
나는 2009년부터 아프간 미국인인 라지아 잔이 설립한 ‘자불리 교육센터’에서 교육받는 여자 아이를 스폰서 한다. 카불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이 학교는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는 여아들에게 초등교육과 옷, 음식까지 제공한다. 그러니 겨울방학이라도 아이들이 학교에 온다. 나도 아이들이 날개를 다는 과정을 지켜보며 유치원에서 12학년까지 교육받은 아이가 바꿀 밝은 미래를 꿈꿨다. 그러다가 몇 년 전에 탈레반이 여자아이들의 교육을 6학년까지로만 제한한 바람에 거대한 돌덩어리와 마주선 아이들의 참담한 현실이 안타까웠다.
그때 내가 스폰서 하던 아이는 학교를 그만둬야 했다. 해마다 그 아이가 보낸 편지와 사진을 받고 또한 그 아이가 소근소근 들려준 재미난 이야기에 내 가슴에 심은 희망의 씨가 그 아이와 같이 자랐다. 언젠가 그녀는 중간고사를 잘 봐서 기분 좋다는 소식과 뜰에 채소밭을 가꾸며 키우는 채소들이 잘 자라는 것, 또한 몇 주 지나면 수확해서 수입을 올릴 수 있다고 좋아했었다. 학교에 운동장이 생겨서 농구와 배구, 배드민턴과 크리켓을 배운다고 좋아했고 어느 연말에는 크리스마스와 새해 인사를 보냈다.
한번은 공부가 어려워서 6학년 학기말 시험을 패스하지 못했다던 아이는 다음 학기에는 100퍼센트 노력을 할 것이라고 했다. 요리하는 것이 좋다고 하던 아이는 연필로 또박또박 적은 편지지 옆 공간에 크레용으로 개나 나무, 토끼나 새, 꽃과 낙엽을 그려서 보냈다. 순수하고 소박한 마음이 예뻤다. 세상이 어떤 지, 다른 나라들은 어떤 지 알고 싶다던 얼굴에 여드름이 났던 아이는 또한 내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다면서 언젠가는 직접 만나 보고 싶다고 했었다. 우리가 만날 기회는 0퍼센트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니 모든 걸림돌을 피해서 가슴으로만 대화를 나눴던 그 아이가 요즘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다.
지금 스폰서 하는 아이는 성장하면 선생이 되고 싶어 한다. 현 상황에서는 이룰 수 없는 꿈이지만 나는 그녀가 꾸는 꿈이 좋다. 사람은 꿈을 꾸어야 희망을 가진다. 더욱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에게 꿈은 미래를 향한 비상이다. 현재 700명이 넘는 K-6여자아이들이 자불리 학교를 다닌다. 3월달에 새학기가 시작하면 내가 스폰서 하는 아이는 학교를 떠나야 하고 나는 또 다른 아이를 맞이한다. 그러니 이름이나 얼굴은 중요하지 않다. 새해 초에 받은 뉴스는 그곳에 눈이 왔다고 했다. 나 사는 남부에도 참으로 오랜만에 눈이 왔으니 아이들의 들뜬 기분, 나도 맛봤다. 나는 성장하는 어린 꿈나무들의 삶에 늘 하느님의 은총을 기도한다.
솔직히 아프간만 아니라 미국사회도 여자에게 불공평하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 라는 말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발상은 남성위주 사회에서 여성에게 육아와 살림을 떠맡겨서 가정속에 가둔다. 만약에, 여자아이와 남자아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똑 같은 환경에서 똑 같은 배려를 받고 성장한다면,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 조직에서 동등한 존중과 대우를 받는다면, 어떤 사회가 될까? 이것은 오래전부터 내가 흥미진진한 추상을 하는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