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보다 더 큰 폭력이 있을까. 미국의 새 행정부가 트랜스젠더의 법적 존재를 지우려 시도하면서, 160만 명의 미국인들이 하룻밤 사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되어버렸다. 이는 단순한 행정 조치가 아닌,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벌어지는 충격적인 인권 침해다.
생물학적 성별만을 인정한다는 미명 하에 이뤄진 이번 행정명령은 표면적으로는 ‘여성 보호’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모든 여성의 권리를 위협하는 역설적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 트레버 프로젝트가 보고한 트랜스젠더 청소년 상담 전화 이용률 700% 증가는 이 정책이 얼마나 큰 공포와 불안을 야기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정책적 차별이 사회적 폭력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의 반트랜스젠더 폭력 사건이 전년 대비 125% 증가했다는 통계는 정치적 레토릭이 실제 폭력으로 이어지는 위험한 연결고리를 보여준다. 정부가 특정 집단의 존재를 부정할 때, 그들을 향한 혐오와 폭력은 정당화되기 쉽다.
이번 행정명령은 또한 의료, 교육, 법률 등 기본적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마저 위협하고 있다. 성별 정정이 불가능해진다면, 트랜스젠더들은 일상적인 행정 절차에서조차 끊임없는 차별과 마주해야 한다. 더구나 수감자 배치 문제는 생명의 위협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사안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정책이 공화당이 표방해 온 ‘개인의 자유’라는 가치와도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것이다. 정부가 개인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의료진과 부모의 판단을 무시하는 것은 보수주의자들이 그토록 경계해 온 국가 권력의 과도한 개입이 아닌가.
현재 미국 내 130만 명의 성인 트랜스젠더와 30만 명의 청소년 트랜스젠더는 자신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들 중 상당수가 이중, 삼중의 소수자로서 더욱 취약한 위치에 놓여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정책의 파괴력은 더욱 크다.
민주주의는 다양성의 존중에서 출발한다. 특정 집단의 존재를 부정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민주주의라 할 수 없다. 법적 투쟁이 난항을 겪을 것이라는 전망에도 불구하고 인권단체들이 저항을 선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저항이며, 침묵하지 않겠다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소수자의 권리를 부정하는 정책이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수없이 목격해왔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차이를 인정하고 포용하는 성숙한 민주주의다. 한 사람의 존재를 부정하는 순간, 우리 모두의 자유가 위협받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