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시간 15분 전에 약속된 장소로 갔더니, 장학금을 마련한 닥터 Y와 그의 의대후배 한 사람이 이미 와서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하며 장학금을 받을 학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의대 후배와 나는 그가 주는 장학금을 받는 학생에게 덕담을 해 주라고 해서 참가했다. 닥터 Y는 90 바라보는 은퇴 의사이다.
닥터 Y를 처음 만난 곳은 골프장이다. 내가 가르친 제자들 중에 장학금이 필요한 학생 있거든 소개하면 장학금을 주겠다고 했을 때, 그의 말을 심각하게 듣지 않았다. 몇 년 전에 닥터Y가 한 학생에게 정학금을 줄 때, 나도 와서 학생에게 격려의 말이나 해 주라고 했다. 가 보니 그가 비행학교에 다니는 한 청년에게 은행에서 지불 보증이 된 5000달러짜리 수표 두 장을 학생에게 주었다. 우린 그 청년이 성공 적으로 학업을 마치기를 기원했다. 그 때야 알았다. 닥터 Y가 2014년부터 계속해서 장학금이 필요한 청년을 찾아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장학금을 받는 학생은 한 목사님을 통해서 선택되었다고 했다. 공대 3학년, 성실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라고 했다. 학생의 자기 소개와 장래의 꿈을 영문으로 써서 이메일로 보내 달라고 내가 중간에서 연락을 했다. 영문으로 쓴 학생의 글은 훌륭했다. 일과 학교 일로 바쁜 학생의 시간에 맞추어 만날 시간을 잡았다.
드디어 그 학생이 장소에 나타났다. 20대 초반의 앳된 학생, 우린 인사를 나누고 둥근 테이블에 둘러 앉았다. 학생은 공대생으로 전기공학 분야에서도 특수하게 음향 관련을 전공한다고 했다. 새로운 분야여서 졸업후에 취직이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고 했다. 이미 잘 알려진 분야 보다 새로운 분야를 전공으로 선택한 것은 잘 한 것 같다고, 좋은 직장 잡을 기회가 더 많을 것 같다는 그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 학생은 홀어머니와 산다고 했다. 아버지는 안 계신다고 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주위에 많은 홀어머니들, 자식들을 헌신적으로 키우는 장한 한국의 어머니들이 생각났다. 내가 그 학생의 처지나 그의 어머니의 처지에 서 보니 장학금의 금전적인 도움도 크지만 차가운 생할 속에 따뜻한 격려와 용기가 고단 한 삶을 위로할 것 같았다. 그런 어머니와 아들을 한사람이라도 돕는 닥터Y 가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하시는 구나 느꼈다.
장학금을 받는 학생이 아버지도 없고 홀어머니가 그를 대학에 보낸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홀어머니의 헌신적인 뒷받침으로 공부를 마치고 성공하여 어머니 이름으로 장학금을 마련한 분이 생각났다. 우리 등산 팀 중에 한 분인데, 그가 나온 버지니아텍에 15년 전에 20만달러 기금을 주어 매년 2명을 선별하여 장학금을 주고, 매년 얼마씩 지금도 장학금을 보내는 분이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그 대학에 ‘관순 리’ 장학금이 있다. ‘관순’은 장하신 그의 어머니 이름이라고 한다.
신문이나 방송에 나오는 장학기관에 많은 사람들이 장학생을 뽑아 장학금을 주어 어려운 학생들을 돕는다. 반면 신문 방송에 나타나지 않고 아무도 모르게 배움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돕는 숨은 사람들도 있다. 내가 사는 활동 범위는 아주 좁은데도 찾아보니 그 작은 속에서도 두 분이 있으니, 이 넓은 사회에 그런 분들이 얼마나 많을까?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반사회적인 범죄자들이 많이 나온다고 하지만 그런 분들 때문에 불우하고 어려운 학생들이 사회에 공헌하는 사람이 되고, 그들의 부모 특히 홀어머니들이 위로와 격려를 받고, 미래가 더 좋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학생이 가고 남은 우리 세 명이 점심을 먹는 식당에서 그의 장학금에 대해 물어보았다. “제일 처음 장학금은 언제 누구에게 주었어요?” “2014년 모처럼 한국에 나갔는데, 자그만 피자 가게에 들어 갔더니, 대학생이 작은 피자가게에서 고생하더라 고, 그래서 주머니에 있던 2000달러를 주었지. 그게 시작 이요.” “장학금 받은 사람들 중에 지금도 소식을 주고받는 사람이 있어요?” “없어, 그들 중에 잘 되어 사회에 봉사하며 사는 사람들은 몇명 그냥 알고 있지. 그걸로 감사하지.”
친척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농사짓던 그가 의대를 못 마쳤을 것이고, 미국 와서 의사 노릇도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두 아들도 열심히 공부시켜 명의를 만들었다. 의대 다닐 때 친척들의 고마움과 교육의 힘을 믿어 그도 이제는 배움에 어려움이 있는 청년들을 말없이 돕는 것 같이 생각되었다.
닥터 Y나 자기 모교에 어머니 이름으로 장학금을 마련한 분들을 생각하니 에밀리 디킨슨의 시가 생각난다. “만약 내가 애타는 가슴 하나 달랠 수 있다면/내 삶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한 영혼의 괴로움을 내가 덜어줄 수 있다면/한 아픔을 내가 덜어줄 수 있다면/죽어가는 로빈 새 한 마리를/그의 둥지에 올려 눕혀준다면/삶은 헛되지 않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