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아버지는 이른 새벽부터 잠을 깨지 못해 눈도 못 뜨는 우리들을 일으키시어 딱딱한 호두알이나 거친 껍질이 있는 땅콩을 입으로 깨부수고 문 밖으로 던지며 큰 소리로 외치라 하셨다. “부스럼 깨물었다!”
텁텁하게 입안에 남아있던 호두 껍질 조각들을 마저 뱉아내고는 아버지가 건네주는 귀밝이 술, 달달한 샴페인도 한 모금씩 마셨다. 그런 의식을 거치고 나면 일년 동안 부스럼이나 해로운 것 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고 철썩 같이 믿고 정성껏 아버지가 일러주는 데로 따라 외쳤었다. “내 더위 사가라!”
이렇게 외치는 날이 바로 정월 대보름이다. 정월 대보름은 가장 큰 보름이라는 뜻으로 음력 정월 보름인 1월 15일을 말한다. 올해는 2월 12일 밤 10시53분에 가장 완전한 둥근 달이 뜬다고 한다. 예전 농경 사회에서는 설날부터 정월 대보름까지 보름동안 동네 웃어른을 찾아 뵙고 세배 드리며 한해 농사를 준비하는 기간으로 보냈다. 설날은 개인적이며 가족 중심의 피붙이 명절임에 반해 대보름은 집단적이고 개방적인 마을 공동체 명절이었다.
그래서인지 그 날은 설 명절과는 다른 즐거움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날은 하루 종일 빨간 음식은 먹지 못했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지만 그래야 한다고 엄마가 말했다. 엄마는 찹쌀, 팥, 조, 보리, 수수 등 여러 잡곡을 섞어 찰진 오곡밥을 만드셨고 김에 들기름을 척척 발라 주시면 나는 손가락 끝으로 소금을 살짝 집어 올려 조심스럽게 골고루 뿌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김을 구워 놓으면 정말로 맛이 기가 막혔다.
적당히 식은 오곡밥에 김을 싸서 먹으면 하루 종일도 먹을 수 있을 만큼 맛있었다. 거기에 하얗게 볶은 무나물과 몇일 전부터 불려 놓은 오래 묵은 나물들을 간장,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깨를 뿌려 고소한 맛을 얹어 놓으면 평소에는 잘 먹지 않던 나물이지만 그날은 특별한 음식으로 느껴질 만큼 맛있게 잘 먹었었다.
해가 지기전부터 동네 사람들은 하나 둘씩 공터에 만들어진 높이 쌓아 놓은 짚 더미 둘레로 모여들었다. 조금 있으면 그 짚더미에 불이 활활 타오를 것이고 아이들은 저마다 가지고 놀 불놀이를 생각하며 흥분하여 뛰어다녔다. 어른들은 불씨를 돌리며 노는 우리들에게 밤에 오줌 싼다고 그만하라 말리면서도 함께 웃고 즐기셨다. 불놀이가 어느정도 되어지고 나면 그날의 하이라이트인 모든 사람들이 손에 손을 잡고 커다란 원을 그리며 강강수월래를 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손을 잡고 빙그르르 돌려면 작은 우리들은 껑충껑충 뛰듯이 달려야 원 밖으로 밀려나지 않을 수 있어서 다리에 힘을 잔뜩 실어 신나게 돌았다. 강강수월래를 외치며 돌다 보면 한사람 또 한사람 더 보태어지고 원은 점점 더 커져갔다. 달은 얼마나 크고 밝은 지 해가 졌어도 환하게 비추는 달빛 아래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한참을 놀다 보면 짚더미의 불은 다 꺼져가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남은 어른들은 불씨가 남지 않도록 안전하게 살핀 후 시끌벅적 했던 놀이를 정리하셨다.
그 날 밤은 잠도 자지 말아야 한다고도 했다.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얘진다고 겁을 주는 바람에 눈을 부릅뜨고 몰려오는 잠을 쫓으려 애쓰기도 했지만 늦게까지 추운 밖에서 놀고 온 우리들은 바로 잠들 고야 마는데 아침에 하얘진 눈썹을 보고 기겁을 한적도 있었다. 언니가 놀려준다고 눈썹을 하얗게 칠해 놓았던 것이다. 이렇듯 재미났고 마을의 잔치 와도 같았던 전통놀이들이 대부분 사라져 가는 요즘, 아이들은 어떤 추억을 가지며 살아갈까 생각하니 계속 지켜주지 못한 어른이 된 거 같아 미안하다.
세상은 더 이상 오래 이어온 전통문화와 생활양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 듯하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되고 빠르게 새로운 기술을 내보이며 상상의 나라를 현실로 만들어내고 있어 적응해 가기도 버겁지만 추억 속 그 날처럼 세상 모든 이들이 손을 잡고 지구를 다 덮을 만큼 커다란 원을 만들며 강강수월래를 외쳐보면 얼마나 신나고 행복할까? 하고 꿈꾸듯 달님에게 속삭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