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미국인 이민진 작가의 장편소설 ‘파친코’의 스토리는 대충 이렇다.
일제시대, 찢어지게 가난한 양진의 부모는 돈을 받고 언청이에 절름발이인 훈이와 양진을 결혼 시킨다. 그리고 정상으로 태어나고 살아남은 딸 선자를 사랑으로 키우며 하숙집을 운영해 성실히 살아간다. 가족을 소중히 아끼던 훈이가 죽고 양진과 선자는 하루 하루 고되게 일만하며 보내게 된다. 그러던 중 선자는 생선 중매상 고한수를 만나 사랑을 키워간다. 사랑과 믿음으로 임신을 하게 되지만 고한수가 일본에 본처가 있는 유부남이자 야쿠자라는 사실을 알고는 홀로서기를 결심한다.
그 무렵 선자네서 하숙을 하던 목사 백이삭은 모든 사실을 알고도 선자와 결혼을 감행하고 함께 오사카로 건너가 형 부부와 함께 산다. 불행한 처지에서 백이삭의 도움으로 구원받게 된 선자는 일본에서 고한수의 아들 노아와 백이삭의 아들 모자수를 낳아 키우며 새로운 삶을 개척해 나간다. 가난과 차별로 어려운 생활을 하던 중 신사 참배 문제로 백이삭은 투옥되고 모진 고문을 당한 채 결국 사망하자 선자는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 악착같이 아이들을 키운다.
노아는 독서를 좋아하고 공부를 잘해 모진 환경에서도 와세다 대학에 입학하는 훌륭한 모범생으로 성장하고, 모자수는 형처럼 될수 없음을 깨닫고 일찌감치 파친코 사업을 익혀 부를 이루어낸다. 뛰어난 머리와 성품을 가진 노아는 일본 사회에 적응하고 출세의 길이 탄탄해 보였으나 훗날 고한수가 자신의 모든 것을 후원해 준 아버지임이 드러나자 더러운 야쿠자의 피가 섞여있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돌연 대학 공부를 중단하고 사라져 일본인으로 위장한 채 파친코 사업을 하며 신분을 숨기고 살아간다. 수소문 끝에 고한수와 선자는 노아를 찾아내지만 노아는 본인의 뿌리를 부정한채 자살한다.
모자수는 아들 솔로몬을 자기처럼 살지 않도록 국제 학교에서 교육받게 하고 미국 유학을 보낸다. 대학을 졸업한 솔로몬은 일본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파친코 사업을 물려받겠다고 고집한다. 태어남과 동시에 시민권을 부여 받는 미국과는 달리 일본은 재일교포 3세가 되어도 외국인의 신분으로 살아가면서 3년마다 지문을 찍고 외국인 등록증을 갱신해야 하며 조선인이라는 차별과 멸시를 안고 살아가야 했다.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며 솔로몬은 과거 어쩔수 없어 뛰어든 아버지 세대와는 달리 스스로의 신념을 가지고 사업에 덤벼들기로 결심한 것이다. 파친코는 뜻밖에 횡재를 할 수도 있지만 한순간에 다 잃어버릴 수도 있는 운명같은 도박이다. 재일교포들은 일본의 차별난 제도에 가로막혀 출세할 수 없었으나 이들에게 파친코 사업만은 유일하게 부유한 경제성과 신분 상승을 이끌어 낼 수 있던 수단이었다. 조선에서는 일본인 취급 받고 일본에선 조선인으로 멸시받는 정체성의 혼란은 불확실한 파친코의 운명과 닮아 있었던 것이다.
파친코를 읽는 내내 미국에 사는 나도 늘 한국을 그리워하며 알게 모르게 겪는 외국인 차별에 마음 아팠던 경험이 있지만, 나라를 빼앗긴 채 자의 든 타의 든 고국을 떠나 타국에 사는 사람들이 겪었을 고통과 설움은 감히 상상조차 안된다. 피해자는 늘 죄없는 국민이고 이들의 고통을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지도자가 나라를 잘못 이끌어 망가뜨린 몫은 고스란히 국민들이 피 흘리며 맨몸으로 막아낸다. 어쩜 그 시대와 현재의 상황이 비슷한 지 안타깝다. 역사를 바로 보고 잘못을 뉘우치지 않으면 그 잘못은 더 큰 과오를 범하는 씨앗이 된 것을 지도자는 왜 모른척하나. 그러나 어려운 시기에도 희망이 늘 함께했듯이 대한민국 국민들은 고난과 역경을 지혜롭게 헤쳐 나가리라 믿는다.
4대에 걸친 선자 가족의 혹독한 삶을 이야기한 이 소설의 마지막에는 일흔이 넘은 선자가 남편 백이삭의 묘를 찾아가 평생을 바친 한 여자의 일생에 대한 회한의 눈물을 쏟아낸다. 그러고는 다시 일어나 유유히 집으로 돌아간다. 우리의 삶은 이렇듯 또 흘러간다. 오늘도 우리는 현재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이 생의 하루를 살아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