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낀 새벽에 집을 나서며 무심결에 내 입에서 나온 것은 ‘Serenity Prayer'(평화를 비는 기도) 였다.
미국의 신학자며 윤리학자인 라인홀드 니버 (Reinhold Niebuhr, 1892-1971)의 기도문이다. ‘하느님,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함을,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를, 그리고 그 둘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평소에 하던 주기도문이 어쩌다 이렇게 변했나 생각하니 내가 가진 우주의 평안이 깨진 환경 탓이다. 세상이 어지럽고 사회가 혼란하며 기존의 질서나 윤리가 고난을 겪는 뉴스를 보면 혈압은 계속 오르고 정작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무력감에 우울한 탓이다. 이 평화를 비는 기도를 자주 읊으면서 마음을 가다듬으면 심리적인 안정을 얻는다. 그러다 보니 놀랍게도 이 기도문이 내 하루를 여는 기도가 되어 있었다.
사실 지난달 들어선 새 정권의 권력자와 재력가의 횡포를 그저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고 침묵하니 그들이 사방으로 던지는 돌팔매질의 파문이 줄줄이 여파로 미국만 아니라 세계로 번져 가서 두렵다. 특히 평소에 나는 전세계 160여개국에서 활약하는 국제개발처(USAID)의 업무를 크게 중요시한다. 63년 전 케네디 대통령 시절에 설립된 미 대외 원조기관인 USAID는 저개발국과 도움이 필요한 수 많은 영역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단체이다.
새 정부가 국제개발처의 내부 실상과 원조 상황에 결과, 그리고 긴 안목으로 세상에 끼치는 주요 영향을 간파하고 난 다음에 처리방안을 냈더라면 오히려 이해하고 동조했을지도 모른다. 정권을 잡았다고 벼락치기로 이 독립단체를 폐쇄하려고 하니 끔찍하다. 세상 많은 곳에, 열악한 환경에 사는 지구인들의 삶을 돕는 USAID 활약을 대신할 단체는 지구에 없다. ‘빈대를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운다’ 속담처럼 새 정부가 비리와 남용 의혹을 앞세우고 무차별 난도질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나 하나만 잘 산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고 나도 살고 너도 살고 함께 사는 것이 행복이 아닌가. 세계 193개국, 유엔에 가입한 나라 모두 손잡고 평화로운 공존을 모색해야 할 적에 미국은 손을 안으로 사린다.
며칠 전, 2022년 2월에 러시아가 유크레인을 침략한 후 지금까지 유크레인을 9번이나 다녀온 남부의 한 변호사를 만났다. 유크레인에서 업무를 수행하며 전쟁의 상흔을 목격했던 그는 보고 느낀 것, 또한 찍어온 사진들을 보여주며 우리가 미국에서 듣는 정보가 바르지 않음을 지적했다. 편파적인, 그리고 의도적으로 짜깁기한 정보에 익숙한 미국인들이 정작 중요한 진실을 모르고 있다고 안타까워하던 그의 표정에 내 속이 울렁거렸다.
어디 유크레인 뿐인가. 내가 사는 남부, 앨라배마의 뉴스도 예전처럼 그대로 믿지 않는데 들려오는 여러 나라의 상황을 정확한 사실이라고 나는 다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모두가 다양한 목적으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보매체를 악용하니 나는 제대로 된 정보통을 못 찾아 헤맨다. 그렇게 의심에 회의가 새끼줄처럼 엮여 있으니 믿을 지도자나 올바른 뉴스를 전하는 매체도 분별하기 힘든다. 솔직히 함께 사는 남편도 안 믿는다. Fox뉴스에 중독된 남편과 간단한 대화조차 제대로 못하는 내 하루에 워싱턴DC는 먼 곳이다. 그러니 유크레인이나 세상 다른 지역은 말 할 것도 없다. 아픔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퍼진다.
YMCA에서 운동하고 나와 주차장으로 가서 차문을 열다 깜짝 놀랐다. 앞 유리에 캐나다 구스가 괘씸하게 흔적을 남겼다. 푸르스름한 오물 두 뭉치가 유리창에 떨어져 퍼뜨린 그림을 보며 운전하니 기분이 묘했다. 전에 없었던 일이다. 내 마음속에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을 미물들이 어떻게 알았을까? 집에 와 차를 세척해서 푸른 흔적을 말끔히 닦아내고 나서 중얼거린 것은 다시 평화를 비는 기도였다. ‘하느님,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함을,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를, 그리고 그 둘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2025년 초부터 이 기도문을 입에 달고 살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