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다녀온 한국 여행은 설 명절을 부모님과 함께 보내는 것에 집중되었다. 그래서 지인들과는 짬을 내어 만날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자주 만나지는 않아도 삶의 굴곡이 생길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들이다. 특히 어려운 일이 생기면 그들에게 털어놓고 투정을 부린다. 그들과 쌓은 우정은 우리 부부에게 큰 자산이다.
남편과 아들과 나는 약속이 먼저 잡힌 Y부부를 만나러 갔다. 그들은 언제나 우리 가족을 그들의 일터와 집으로 초대하였다. 그들은 워낙 정갈하고 세련되어서 처음에는 가까이 다가서는데 주춤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의 세련됨을 엿보고 싶고, 거기서 문화적인 신선함을 발견하곤 한다.
Y부부는 코로나 기간을 지나면서 일터인 교회를 새로운 곳으로 이사했다. 그들은 여전히 교회를 위해 아낌없이 헌신하고 있었다. 새로운 예배실을 꾸미는 일과 건물 유지를 위한 청소도 몸소 감당하고 있었다. 우리는 예배실에 가보았다. 앞쪽에 불을 켜자 흰 벽에 음각으로 새겨진 십자가에서 빛이 새어 나왔다. 투명하고 광택이 나는 바닥에 십자가가 어렸다. 마치 고요한 호수 위에 비치는 십자가가 기도하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흘러가 안기는 느낌이 들었다. 나의 느낌을 말하자 물과 빛을 잘 표현하는 일본의 유명한 건축가 안도 다다오를 알려주었다.
며칠 후, 주일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S부부가 일하는 교회를 찾았다. S는 남편의 의형제다. 나는 7년 전에 S의 교회에 방문한 적이 있었지만 남편은 그럴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꼭 가보고 싶어했다. S는 십자가를 수집하고 연구하고 책을 쓰는 사람이다. S의 아내 R은 들꽃을 찍는 사진 작가이다. R도 자신의 사진과 들꽃 이야기로 책을 펴냈다. 글쓰기에 관심이 많은 나는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했다.
S는 길을 걷다 가도 메모를 한다고 R이 알려주었다. 사람들과 주고받은 편지나 자료들을 꼼꼼하게 정리하는 S의 습관과 그것을 이야기로 풀어 쓰는 솜씨를 이미 알고 있다. 이런 습관의 바탕에는 관심사를 나눈 사람과의 관계를 정성스럽게 이어가는 성품이 배어 있다. 또 교회 개혁이나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할 일을 생각하고, 살고 있고, 글솜씨가 있으니 그의 글은 살아서 독자에게 가 닿는다. 은퇴 후에 작가로 살면서 좋은 글을 남기고 싶다는 S의 소망은 한가로움이 아닌 절박함으로 다가왔다.
이번엔 부모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는 P부부와 만났다. P부부는 부모님을 보살피는 일들을 먼저 잘 하라며 그런 후에 만나자고 우리를 배려했다. P는 사람들을 참 좋아한다. 그와 만난 사람의 신상을 기억하고 세세한 관심을 가지고 관계를 이어간다. P의 아내 K는 P의 사람에 대한 관심과 기억력은 하늘이 주신 거라고 말한다. P는 한때 공황장애가 와서 무기력증으로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사람들 사이에서 에너지를 얻는 그가 공황장애로 얼마나 힘들었을 지 상상이 안 되었다.
P는 건강을 회복해가는 중이고 요즘은 시니어한테 관심을 쏟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P가 일하는 교회는 지역사회를 위해 오케스트라, 카페, 십자가 전시관 등으로 봉사한다. 최근에는 지역내 시니어의 행복한 생활을 위해 여러 일들을 벌이고 있다. 동네를 걷다가 시니어들끼리 만나면 수다도 떨고 함께 식사도 하는 생활을 권장한다. 하루에 한 번씩 전화로 시니어의 안부를 챙기고 식자재와 생활용품을 나누어 쓰기도 한다. 우리가 사는 곳에도 시니어가 많은지라 P의 실천이 남 일 같지 않았다.
대학 동기들 부부와의 만남도 빼놓을 수 없다. 한 부부는 농촌지역에서 교인들과 함께 농사를 짓고, 다른 한 부부는 도시에서 생활협동조합을 운영한다. 그들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건강한 삶을 위해 기꺼이 헌신하는 사람들이다. 동기들과는 그냥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우리가 만난 이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맛있다. 손수 음식을 만들든 식당을 고르든 대충하는 법이 없다. 그러니 식탁이 건강하고 맛날 밖에. 우리들의 우정이 식탁에서 만들어진다고 할 정도다. 식탁 위에는 음식만이 아니라 자신보다 타인을 돌보는 따뜻한 삶이 함께 차려진다. 그렇게 나누는 삶은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살아갈 힘을 공급하는 맛있는 우정으로 거듭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