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정부, 주류매체 상대 ‘언론과의 전쟁’…신생 매체엔 문호 개방
지난해 대선 유세 도중 총격을 당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성조기를 배경으로 주먹을 치켜든 모습을 찍은 AP통신 사진기자도 트럼프 행정부의 백악관 출입을 거부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AP통신의 에번 부치 수석 사진기자는 27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글을 올려 “(트럼프) 행정부가 AP 스타일 가이드에 따른 다툼 때문에 나의 백악관 취재를 금지했다”고 밝혔다. 그는 “일이 잘 풀려 역사를 기록하는 내 일로 돌아가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부치는 작년 7월 13일 대선 유세장에서 총격을 당한 뒤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여 단상에서 내려오던 트럼프 후보가 귀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결연한 표정으로 지지자들에게 주먹을 치켜든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전 세계에 송고한 기자다.
이 사진 속 트럼프는 푸른 하늘에 나부끼는 성조기를 배경으로 영웅적인 분위기를 풍겼고, 이는 그에게 강인한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더해줬다. 세계 최대 뉴스통신사인 AP의 송고망을 타고 전 세계에 뿌려진 이 사진은 당시 공화당 지지층이 결집하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2003년부터 20년 넘게 AP에서 일한 부치 기자는 2020년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흑인 청년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한 뒤 미국 전역으로 번진 시위 현장을 취재한 사진으로 이듬해 퓰리처상을 받은 베테랑 사진기지다. 트럼프 피격 직후 송고한 이 사진에 대해 부치 기자는 한 인터뷰에서 “총격 소리를 들은 바로 그 순간 나는 이것이 미국 역사에서 기록되어야 할 순간임을 알았다”고 회고했다.
부치 기자가 백악관을 출입하지 못하게 된 것은 2기 정부 출범 후 트럼프 행정부가 주류 매체들을 상대로 벌이는 ‘언론과의 전쟁’ 때문이다.
앞서 백악관은 AP통신이 멕시코만의 명칭을 ‘미국만’으로 바꾼 트럼프 대통령의 방침에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대통령 집무실(오벌 오피스)과 전용기(에어포스 원)에서 AP의 펜 기자와 사진기자의 취재를 금지한 바 있다.
AP 백악관 출입기자들은 2025년 2월 14일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공동기지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출발하기 전 승객 터미널에서 에어포스원에 탑승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로이터
트럼프 행정부는 나아가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신생 인터넷 매체와 팟캐스터, 유튜버 등에게 백악관의 문호를 열어주는 등 ‘레거시 언론’으로 불리는 기성 주류 매체 위주의 취재지원 관행을 깨고 있다.
백악관이 표면적으로는 ‘멕시코만’의 표기를 AP에 대한 백악관 취재 제한의 이유로 들고 있지만 이면에는 진보적인 내용을 담은 AP의 ‘스타일북’을 문제 삼은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부치 기자도 자신이 취재를 거부당한 이유가 AP 스타일북 때문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열성 지지자들은 AP 스타일북 내의 수천개 항목을 들며 불만을 제기해왔다.
가령, AP는 스타일북에서 ‘트랜스젠더 주제를 보도할 때는 모든 입장을 포함해 이야기의 균형을 잡는다는 구실로 자격 없는 주장이나 출처를 제공하는 것을 피하라’고 권하는데, 트럼프의 지지자들은 이는 부적절한 권고라고 비판한다. AP가 기사에서 인종을 언급할 때 흑인은 첫 글자를 대문자(Black)로 쓰면서 백인은 대문자로 쓰지 않는 점(white)을 불쾌하게 여기는 보수진영 인사들도 있다.
스타일북은 기사 작성과 편집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언론사가 문법, 용어 사용 등에 관한 규칙을 정리한 지침서로, AP가 자체적으로 제작·발행하는 스타일북 역시 미국 언론은 물론, 다른 나라 언론인들도 기사 작성에 우선 참고하는 표준 지침서로 통용된다.
1846년 출범한 AP는 세계 최대 뉴스통신사로, 사실에 기반한 초당파적 언론을 표방하고 있다. 외부에서도 오랫동안 중립적인 언론의 표준으로 여겨진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