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한 현지화….10년만에 노조 자진 해산
짐 리드는 YKK 미국의 첫 비일본인 지사장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작년 11월 칼럼에서 “말하기는 쉽지만 실천은 어려운 게 제조업의 미국 복귀”라고 했다. “국내 제조업의 평균 연간 수익은 540만 달러에 불과하다. 이들은 ‘빅테크’가 아니다. 공장 부지를 선정하고 인력을 조달하며 미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공정 자동화에 막대한 선불 비용을 쏟아붓는 것은 쉽지 않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흐름 속에서 미국 현지 생산이 한국 경제의 필수 생존 전략처럼 됐지만 제조업 현지화는 결코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세계 최대 지퍼 제조사인 YKK는 명실상부 조지아주에 가장 빨리, 성공적으로 뿌리 내린 동아시아 진출기업이다. 지미 카터 주지사 재임 시기, 주애틀랜타 일본 영사관이 세워진 1974년에 주역사상 최초의 일본 진출기업으로 들어와 지난 11월 진출 50년을 맞았다. 청바지, 맞춤정장 등을 만들던 미 남부의 섬유산업이 커지자 내린 결정이었다. 2022년 창문 공장을 추가 건설해 현재 빕카운티 메이컨 시에서만 2개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지난달 18일 화상인터뷰로 만난 짐 리드 YKK 미주지부 사장은 “관세를 기반으로 사업 전략을 세울 순 없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의) 트윗 한 줄, 엄포 한 마디에 근거해 수십년간 이어질 현지 자본투자를 결정해선 안된다. 아시아 제조업체는 (관세가 아니라) 제조업의 새 시대 흐름 때문에 미국에 진출해야 한다. 로봇 자동화 공정을 실험하고 생산지와 소비자간 거리를 줄여 물류를 효율적으로 운용하려면 넓은 미국 공장이 필요하다.”
사업을 확장하려면 치밀한 현지화 전략을 세우는 게 필수다. 한미 양국의 문화 차이가 큰 탓에 기업은 대내적으로는 인사 문제를, 대외적으로는 지역 현지주민과의 마찰을 겪게 된다. 리드 사장은 “공장 가동 10년만에 사내 노조가 자진해산했다”고 내세웠다. 경영진 판단을 신뢰한다는 이유에서다. “YKK 초대 사장은 새로운 시장에 진출할 때 일본인 관리자로 하여금 그 지역사회에서 다시 태어나라고 주문했다. 새 관습을 익혀 진정으로 지역사회의 일원이 되라는 말이었다.”
현재 600여명의 직원 중 일본 출신 주재원은 20~30명이다. 대부분 연구개발자지만 관리직도 있다. “30년 이상 된 오래 전 일이지만 일본 관리자가 하급직원에게 ‘멍청하다’고 말해 큰 파문을 낳은 적이 있다. 자초지종을 묻자 관리자는 ‘직원이 아니라 그의 업무 결과를 두고 한 말’이라고 해명했다. 출신국이 다른 데서 기인하는 문화적 오해, 언어장벽으로 직원간 갈등이 종종 발생했다.” 이후 존중, 안전, 환경 보호, 선의 등 모든 구성원이 지켜야 할 25개 가치를 매주 반복해 가르치는 시간을 마련했다. 노사 소송을 막기 위한 내부 방침이다.
리드 사장은 첫 비일본인 미국 지사장이다. 1988년 대학 재학시절 오사카 간사이외대에서 교환학생으로 1년간 공부한 게 일본 경험의 전부다. “일본 기업은 한국처럼 수직적 문화가 매우 강하다. 비일본인 현지 직원이 쉽게 업무 지시를 이해할 수 있도록 메시지를 편집하고 다시 가르치면서 소통문화를 쌓아나갔다.” 최근엔 매년 1~2명의 젊은 현지 직원들을 3년간 일본에 역파견하기 시작했다. 이들중 대다수가 일본에서 결혼하고 복귀한다고. “많은 시간이 드는 작업이지만, 인사, 고용 관련 불필요한 소송 비용을 내지 않아도 돼 매우 합리적이다.”
지역사회와의 소통도 활발하다. 메이컨 벚꽃 축제가 조지아의 대표적 봄철 지역 축제로 꼽히게 된 건 이 회사의 공이다. 1990년 30만 달러를 시작으로 매년 최대 후원사로 나선다. YKK 본사가 위치한 도야마현 구로베시와 자매도시 결연을 맺어 지금까지 최소 1100명의 현지 고등학교 교환학생을 지원했다. 요시다 장학 프로그램을 통해 일본 박사과정생이 카터 센터에서 일하도록 돕기도 한다. 리드 사장은 “아시안 관리자들은 지역 커뮤니티에 통용되는 문화 규칙을 적극 채택해야 한다”며 “문화교류 사업은 장기적 관점에서 불필요한 마찰을 없애는 비용 절감책”이라고 설명했다.
장채원 기자 jang.chaewon@korea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