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민온 많은 한인들의 고민은 영어다. 미국에 몇십년을 살아도 영어를 못알아들어 겪은 설움은 누구나 겪어봤을 것이다. 많은 미국인들이 “미국에 왔으면 영어를 배워라”라고 쉽게 말한다. 그러나 한인 등 아시아계에 있어 영어를 유창하게 말하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것이 사실이다.
사실 미국 인구 대다수를 차지하는 백인들도 처음부터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한 것은 아니었다. 70-80년전만 하더라도 독일, 이탈리아, 동유럽 등 백인 이민자들도 끼리끼리 자기 언어만 말하며 각자의 마을에 모여 살았다. 이걸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없었다. 미국은 이민자들의 나라이며, 다양한 나라에서 온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언어를 말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 법전 어디에도“미국의 공식 언어는 영어”라는 규정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로 이런 상황은 바뀌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3월 3일 “미국의 공식 언어는 영어”라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것이다. “모든 시민이 하나의 언어로 자유롭게 의사를 교환할수 있을 때 미국은 더 강해진다”는 것이 이유였다.
트럼프 행정명령은 한인들에게 무엇을 뜻하는가. 앞으로 정부 차원에서 한인들을 위한 한국어 서비스 지원이 줄어들거나 없어질수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캘리포니아, 뉴욕 등 한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은 백신 접종, 금연 프로그램, 저소득 주택구입 지원 프로그램 등 각종 정부 정책을 한국어 안내문과 광고로 접할수 있었다. 한인들이 많이 사는 귀넷카운티 법원에서도 재판에서 한국어 통역이 무료로 제공된다.
그러나 트럼프가 “공식 언어는 영어”라고 발표한 이상, 정부 차원에서도 추가 예산과 시간을 들여 한국어로 안내할 명분이 없다. 따라서 비영어권 이민자를 위한 다양한 공공 정책이 폐지되고, 관련 홍보도 중단되면 한인 및 이민자 커뮤니티가 제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길도 차단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정부차원의 소수계 지원 프로그램도 계속 줄어들고 있다. 예를 들어 한인에게 친숙한 연방중소기업청(Small Business Administration , SBA)는 최근 정부조달 계약에 이민자와 여성 운영 스몰비즈니스 할당율을 기존의 15%에서 5%로 줄였다. 딜라워 사에드(Dilawar Syed) 전 SBA 부청장은 “당장 수천계의 이민자 기업들이 연방정부 조달계약에서 제외되며, 기업간 경쟁력도 약화되고 장기적으로 경제적 불평등이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뿐만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을 통해 예산감축을 지시했으며, 이에 따라 SBA는 지역사무실 폐쇄를 추진하고 있다. “이민자 기업 지원에 주력하던 SBA가 줄어들면 다문화 기업들의 미래와 이민자 커뮤니티에 영향이 클 것”이라고 다문화 마케팅 기업인 바루(BARU)의 엘리자베스 바루티아(Elizabeth Barrutia) 대표는 지적한다.
트럼프의 이러한 정책은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을 배제하는 정책의 일환이다. DEI는 1971년 연방대법원의 그릭스 대 듀크 전력회사(Griggs v. Duke Power Co.)에서 탄생했다. 의도치 않은 인종차별을 방지하기 위해, 정부와 직장에서는 다양한 인종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도였다. 따라서 정부와 다양한 기업은 이민자와 여성에게 문호를 넓혀왔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이러한 움직임은 이민자와 여성을 위한 기회를 감소시킬 것이 확실하다. 이에 대해 토머스 세인즈(Thomas A. Saenz) MALDEF 대표는 “트럼프 행정부의 조치는 백인 남성을 우대하는 오랜 차별 관행을 유지하고 확장하려는 시도”라며 “DEI폐지는 여성과 유색인종에게 불평등한 한경을 조성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DEI 정책의 폐지는 단순히 행정적 변화가 아니라 사회적 형평성과 포용성을 후퇴시키는 결정이다. 한인 등 소수계 및 이민자 커뮤니티가 연대하여 차별적 관행을 감시하고 대응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언제까지 “영어 못하는 설움”에 입다물고 살아야 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