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들썩한 연말이 지나고 새해가 시작되면,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 어느새 꽃봉오리가 움트는 봄소식이 들려온다. 내가 사는 몽고메리는 따뜻한 미국 남부 지방이지만, 나름의 겨울이 있어 꽤 춥게 느껴진다. 이번 겨울은 오랜만에 눈까지 내려 체감 온도가 한층 더 시리게 느껴졌다.
포근한 날씨가 찾아오면 마음이 몽글몽글해지고 봄날 피어나는 아지랑이처럼 몸은 근질근질해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봄이면 으레 하는 행사가 있다. 연간 한 번씩 치러지는 대대적인 집안 정리다. 이 연례 행사는 날이 풀리고 해가 나야만 마음이 움직인다. 내가 주로 사용하고 관리하는 주방과 팬트리, 옷방이 정리 대상 공간이다.
정리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하루에 하나의 공간을 정해놓고 일단 모든 물건들을 끄집어 낸 뒤에, 버릴 것과 나눌 것을 구분한다. 공간에는 물건이 80% 이상 차지하지 않도록 신경 쓴다. 내가 생각하는 정돈의 핵심은 찾기 쉽게 자리를 정해주고, 사용 후 제자리에 돌려놓는 것이다.
난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는 어렵겠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받아들였다. 대신 넘치는 물건들을 잘 다스리며 살자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리정돈’이란 의미를 살펴보면, ‘정리’는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구분해 필요하지 않은 것을 버리는 일이고, ‘정돈’은 필요한 물건들을 사용하기 편리하게 제자리를 만들어 주고, 사용 후 되돌려 놓는 것을 말한다. 집이라는 공간은 하루의 피로를 풀고, 마음을 재충전하는 가족의 쉼터가 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잘 정리된 쾌적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 나에겐 큰 임무처럼 느껴진다.
정리 컨설턴트들이 한결같이 주장하는 비움-나눔-채움을 실천하기 위해, 지난 1년간 사용하지 않은 물건은 과감하게 비우고, 나의 손때가 많이 묻은 알짜배기 물건들만 남긴다. 자주 사용하고 꼭 필요한 물건들로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다. 비워낸 물건들 중에 상태가 좋은 것들은 필요한 곳에 기부하거나 야드 세일, 중고 마켓에 내놓는다. 이런 정리 과정은 나에게 크나큰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마치 꽃봉오리가 금방이라도 피어날 것 같은 설렘이 새로운 시작으로 발돋움하게 이끈다.
안 쓰는 물건이나 지나간 관계에 대한 집착은 덜어내고, 비운 공간을 필요한 것들로 채워 나갈 때 비로소 풍요로운 인생을 살 수 있다고 한다. 나도 그런 개운한 마음인가 보다. 정리정돈은 삶의 균형을 잡는 일이다. 나이가 들수록 아이들과의 추억이 가득한 물건들, 애정 어린 소품들, 여행지의 기념품들이 점점 쌓여간다. 그런 것들은 나만의 룰을 정해 최소한으로 사들이고, 현명하게 관리하며 추억 저장소에 보관해야 할 것 같다.
정리정돈은 집안을 깨끗하게 하는 것을 넘어 시간과 비용을 절약하고, 나의 생활 습관을 반성하고 변화시키며, 삶을 더 안락하게 만든다. 운동도 갑자기 격렬하게 하면 근육통이 생기고 부상 위험이 있듯, 정리도 준비 단계가 필요하다. 무분별하게 버리고나서 상실감에 빠져 다시 물건을 사들이는 악순환에 빠지지 않도록, 작은 습관부터 조금씩 바꾸어 나간다. 절약과 적절한 소비 패턴을 갖추면 청소와 정리에 드는 시간이 줄어들고, 짐이 쌓여 있던 버려진 공간은 여유롭고 쓸모 있는 곳으로 바뀌게 된다. 그러면 한결 더 평온한 마음에 소비도 줄며, 일의 능률과 집중력이 향상될 것이다.
작은 생활 습관 중 하나로 아침에 일어나면 침구 정리하는 것을 우선한다. 성공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실천하는 기본 루틴이라고 한다. 기상 후 환기를 시키고 침대를 정리하는 일은 5분도 안 걸리는 단순한 일이다. 그러나 이 작은 성취감은 자신감과 함께 단정한 마음 가짐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하고, 집에 돌아와서도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해준다.
상쾌한 햇살의 봄을 맞이하는 지금, 마음과 주변 공간을 가지런히 정비해 본다. 묵은 때는 씻어내고, 쓰지 않는 물건은 필요한 이들과 나누며, 비워진 자리는 새로운 사랑을 채울 준비를 한다. 비움과 채움이 어우러진 균형 속에서 가벼워진 마음으로 또 다른 하루를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