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뒤숭숭하니 누군가 뒤에서 내 머리끝을 잡아 당기는 기분이 든다. 기존의 법과 질서 아래 설치된 카펫을 한 권력가가 잽싸게 당겨내니 카펫위의 모든 것들이 흔들리며 무너져 깨지고 엎어지는 현실에 가슴이 섬뜩해진 탓이다.
새 정권의 손아귀에 잡힌 어느 한 단체 무사한 곳이 없다. 그들의 갈퀴가 살아있는 사람들의 삶을 훑는 것만이 아니라 죽은 사람에게도 번진 것은 끔찍한 현실이고 또한 지극히 유감스럽다. 알링턴 국립묘지의 웹사이트에서 반 DEI 정책으로 흔적 없이 사라진 기록들에 대한 기사를 읽고 믿겨지지 않아서 직접 국립묘지의 웹사이트를 찾았다.
미 육군이 관할하는 알링턴 국립묘지는 전역에 있는 164 군 묘지 중에서 가장 신성한 곳이다. 해마다 3백만명이 넘는 추모객들이 미국 역사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의 묘지를 찾는다. 그런데 특출했던 흑인들이나 여성 베테랑에 관한, 그리고 남북전쟁과 그후 재건 시절의 기록이나 명예훈장을 받은 영웅들에 관한 소개가 삭제됐다. 미국의 과거사를 묵살하는 무지한 결정에 놀란 가슴이 뛴다.
특히 여군에 관한 뉴스는 나에게 민감한 주제다. 미국 독립전쟁시부터 현재까지 3백만명이 넘는 다양한 피부색을 가진 여성들이 군 임무를 수행했다. 200년이 지난후인1987년 의회에서 마침내 여성들의 군 서비스를 인정한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여군 기록서가 창조됐다. 그리고 10년 후 알링턴 국립묘지 ceremonial 입구에 다른 국립 기념관과 비슷한 반달형 모습의 여군 기념관이 건설됐다.
그때 나는 현역이었다. 한창 기념관 건설 뉴스가 발표되었을 적에 건설 기금에 참여하고 1997년에 일반에 공개되었을 적에는 창립 멤버로 등록했었다. 비록 나 한사람은 미약한 존재지만 내가 선택한 나라를 위한 봉사에 한 몫을 한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리고 알링턴 국립묘지 방문시에는 꼭 들렸다. 많은 여성들이 미국의 강력한 국방력에 남자 군인들과 같이 기여했음을 보고 내 젊음이 헛되지 않았음을 기뻐했었다. 기념관에 전시된 여군들의 활약만 아니라 나처럼 이름만 남긴 많은 여군들의 수고도 그곳에서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여군 기념관을 나서며 가졌던 뿌듯함은 내가 숨 쉬는 동안 나와 함께 한다.
그런데 급변하는 세상의 물살을 타고 지나간 역사가 변질되고 있다. 백인들만의, 백인을 위한, 백인에 의한 기록만 중시하는 사태에 동양인이고 또한 여성인 나는? 혼란스럽다. 현재 군복을 입고 복무하는 2백만이 넘는 군인들의 30 퍼센트가 소수민족이고, 18 퍼센트는 히스패닉, 그리고 20 퍼센트는 여성들이다. 이들의 존재는 무엇을 뜻하는가? 미국이 부강한 이유가 바로 세계 곳곳에서 온 이민자들이 함께 노력한 덕분 아닌가.
머리가 혼돈스러우니 전신이 비틀거린다. 내 마음이 이렇게 산란해서 평안을 얻자 하니 미국처럼 혼란스런 모국이 아니라 아일랜드가 다가온다. 언젠가 아일랜드에서 온 가수 겸 영성 지도자였던 카멜 보일이 내 손을 잡고 불러준 기도가 생각났다. “하느님의 눈이 당신을 지켜 보시고, 성모 마리아가 당신의 마음을 껴안아 주시길” 지금 나에게 절실한 도움을 준다. 그리고 세상을 좁히고 우주를 내 한 사람만으로 채워서 고대 아일랜드의 축복의 노래를 부른다. “나의 몸에 축복을 주소서/ 나의 영혼에 축복을 주소서/ 그리고 내가 오고 가는 길에 축복을 주소서.”
오래전 초록의 섬 아일랜드를 사랑하게 되면서 아일랜드 출신 작가들과 친해졌고 그들의 스토리를 통해서 나는 아일랜드의 역사와 문화, 생활 풍습을 소개받았다. 수백 년 영국의 권력아래 고난과 시련을 버틴 저력은 어떤 상황이든 유머 스럽게 마주하던 사람들의 자세였다. 특히 아일랜드 작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삶과 사랑을 잔잔하게 풀어내던 여류작가 Maeve Binchy의 스토리도 좋았다. 가슴에 아픔과 동시에 따스함을 준 그녀의 주인공들이 실제인양 착각 되어서 막상 찾아간 아일랜드 작은 마을에서 만난 사람들이 다정한 이웃같이 정겨웠었다.
아일랜드의 수 많은 요정이나 마법의 존재가 득실거리는 민화를 좋아하는 나에게 지역마다 특색 있는 영적 존재나 민속적인 스토리는 세상살이 시름을 잊기에 좋은 처방약이었다. 그렇게 남의 글을 읽고 좋아했지 훗날 내가 글을 쓰게 되리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하던 시절 보다 지금 나의 상황은 가능성을 준다. 아이들을 잠시나마 피터팬으로 머물도록 멋지고 환상적인 스토리를 창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