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울긋불긋 꽃 대궐 차린 동네/그 속에서 살던 때가 그립 습니다.” 화사한 봄 꽃들이 피면 고향의 봄이 생각난다.
은퇴 후 조지아주 둘루스에 와서 십여 년을 살았다. 어려서 살던 충청도 산골이나 미국에서 오래 산 오하이오 보다 봄 꽃들이 다양하고 풍성한 이곳에서 십여년 사는 사이에 타향이 고향으로 변했다. 새 고향엔 팬지 꽃의 노란 꽃잎, 자주색 꽃잎들이 겨울에도 피어 있고 일년 사계절 꽃들이 핀다. 장미 같은 동백꽃, 등나무의 자주색 꽃들, 여름 내내 피는 나무 백일홍, 내가 살아온 어떤 곳보다 꽃들이 많은 이곳은 다양한 꽃들의 퍼레이드가 계속 이어지면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돌아간다.
올 봄에도 목련의 하얀 꽃, 자주 꽃잎들이 골목 마다 여기 저기 보이더니, 검은 겨울 나무 가지 속에 떨어진 흰구름 송이 같은 배꽃들의 퍼레이드가 지나가자, 춘분 즈음부터 레드 버드의 빨간 꽃들이 퍼레이드를 펼친다. 차를 타고 마을을 오고 갈 때면 수선화, 개나리, 철쭉, 튤립, 매화 등 키가 작은 꽃들 보다 큰 나무에 피는 꽃들의 퍼레이드 속에서 훈훈한 봄바람에 향기와 추억을 실어 보낸다.
지난 주말 분텐파크 트레일을 걸을 때 길 앞에 구름송이가 내려와 앉은 것 같이 하얀 벚꽃이 나타났다. 깜빡 나타난 벚꽃은 아침 햇살을 받아 커다란 다이아몬드처럼 빛났다. 트레일을 따라 걸으며 보니 숲에 가려 여기저기 숨겨졌던 벚나무에서 벚꽃들이 “날 좀 보소” 하고 나타났다. 벚꽃 축제, 수선화 축제 소식도 여기 저기서 들린다.
공원의 걷는 포장도로 길바닥 여기 저기에 노란 꽃가루의 흔적이 빗물이 흘러간 가장 자리에 보인다. 소나무 가지에는 노란 소나무 꽃이 멀리서도 보인다. 길 가에 선 소나무 가지를 잡아당겨 보니 해마다 봄에 자라는 새 가지가 손가락처럼 뻗었고, 새 가지 밑바닥 가장 자리에 번데기 모양의 꽃자루들이 동그랗게 둘러 피었다. 꽃자루들이 익어 노란 화분이 바람에 흩어지기도 한다. 이제 송화가루 날리는 시절이 다가오고 있다.
공원을 걷는데 콧물이 흐른다. 손등으로 밀어 콧물을 닦아내서 보니 콧물이 맑다. 콧물이 계속 코 속의 이물질을 씻어낸다. 나 자신도 모르게 그런 고마운 일을 하는 내 몸이 참 신비하다.
조금 더 걸으니 기침이 난다. 아마도 꽃 가루가 기관지속으로 들어가서 기침을 통해 그 꽃가루들을 몸밖으로 밀어내는 모양이다. 내 생각이 내 몸을 다 챙기는 줄 알았는데, 내 몸이 스스로 내 몸을 돌본다.
대기의 공기중 20%가 산소인데, 들숨 속의 산소를 그렇게 빨리 피속으로 끌어들이고 피 속의 이산화탄소를 공기중으로 내보내는 폐의 기능, 산소 없으면 한 순간도 못사는 나를 위해 숨을 쉬는 것도 내 몸이고, 숨쉬다가 꽃가루가 코에 들어오면 콧물을 만들어 씻어내고, 기관지에 들어오면 재채기를 하여 몸밖으로 보내는 내 몸이 신비하다. 팔딱팔딱 계속 뛰는 심장도 내 몸이 스스로 한다.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나를 살리기 위해 작동하는 내 몸의 신비를 찾아보면 한없이 많다. 그러고 보면 내가 살아 있는 한 순간 한 순간이 살려지는 기적의 연속이다.
걷는 포장 길 주변 초록 잔디밭이 하얀 안개가 덮인 듯해서 허리를 굽히고 자세히 보니 십자가 모양의 작은 풀꽃들이 풀 위에 깔려서 안개처럼 보인다. 여기 저기 자주색 제비꽃들도 노란 민들레 꽃도 보인다. 쌀알 같이 작은 풀꽃마다 씨를 맺겠지? 씨들은 저들의 시간에 싹이 트고 꽃을 피우겠지? 그렇게 생명은 새해로 이어지고 영원으로 이어가겠지? 꽃들을 스치고 지나온 봄 바람은 향기롭다. 내 몸도, 새들도, 벚꽃 나무도, 잔디밭의 이름모를 작은 풀꽃들도, 우린 모두 살려지는 생명체, 서로 협동하여 생명의 신비를 이어가는 동지들이다.
마을 공원 길을 걸으며, 꽃 길을 걷는다. 하얀 벚꽃 속으로 포르르 새 두 마리가 날아든다. 새들은 종알종알 지저귄다. ‘사랑을 나눠야 해, 더 늦기 전에 사랑을 나눠야 해. 우리 새끼들도 봄에 태어나야 여름에 자라고 겨울에도 얼어 죽지 않게 살아가게 지금, 더 늦기 전에 사랑을 나눠야 해.’ 그렇게 지저귀는 것 같다.
꽃 길을 걸으며 콧물도 흘리고 재채기도 하면서 새 고향과 정들어 간다. 뺨과 이마를 스치는 봄바람이 시원하고, 봄바람 속 꽃 향기가 싱그럽다. 푸른 잎들이 돋아나기 시작하는 숲에서 새소리가 들린다. 봄바람에 실려온 꽃 향기속에 내 마음에도 고향의 봄이 온다. 꽃들은 내일의 약속, 내일은 영원으로 이어지는 낙원, 우리는 모두 영원한 고향에 살려지는 생명의 동지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