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른들은 “공부는 엉덩이로 하는 것”이라고 했다. 고등학생이 되면 도시락 3개를 싸서, 아침 7-9시 오전 자율학습 시간에 아침, 오전 9시-오후 4시 정규수업 시간에 점심, 저녁 6-9시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저녁 도시락을 까먹던 시절이 눈에 선하다. 한자리에 오래 앉아서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성적이 오른다는 것이 한국의 ‘입시 위주 교육’이었다.
한국보다 덜할 뿐, 미국 교육 역시 학생의 학업 성취도를 ‘학습 시간’으로 측정해왔다. 미국 공립학교는 주 5일, 하루 6~7교시로 고정된 수업 방식을 고수해왔다. 1906년부터 이어져 온 이 교육제도를 ‘카네기 유닛’ 시스템(Carnegie units)이라고 한다. 일주일에 5일, 하루 1시간 수업을 36주간 이수하면 1유닛으로 인정하며, 공립학교 졸업을 위해서는 특정 유닛을 이수해야 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최근 미국 교육계에서는 100년 넘게 유지된 ‘카네기 유닛’이 시대에 맞지 않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 시스템은 학생들이 일정 시간 동안 교실에 앉아 있었는지를 측정할 뿐, 그들이 실제로 무엇을 배웠는지는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학업 성취도 하락과 무단결석 증가는 이 오래된 시스템의 균열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냈다.
교육 전문 매체 에듀소스(EdSource)의 전 편집장인 루이스 프리드버그(Louis Freedberg)는 “학생들은 각기 다른 속도로 배운다. 시간에 맞춘 교육은 모든 학생에게 맞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현 교육 시스템의 근본적 모순을 정확히 짚어낸 말이다. 모든 학생을 동일한 시간표에 맞추려는 시도는 마치 다양한 크기의 발을 하나의 신발에 끼워 맞추려는 것과 다름없다.
이에 따라 카네기 재단(Carnegie Foundation)은 교육 시험 서비스(ETS)와 협력해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력, 창의력, 커뮤니케이션 능력 등을 평가할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노스캐롤라이나, 네바다, 위스콘신, 인디애나, 로드아일랜드 등 5개 주 공립학교를 중심으로, 비판적 사고력, 창의력, 커뮤니케이션 능력 등 실제 역량을 평가하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교실 밖 경험을 학습의 중심에 두는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다.
또한 카네기 재단은 XQ인스티튜트, 미국교육위원회(ACE) 등과 함께 ‘포스트 카네기 유닛’ 교육 시스템 개발에도 참여해 시간 기반 모델이 아닌 역량 기반 학습 모델 구축을 지원하고 있다.
북가주 오클랜드 미드웨스트(Metwest High) 고등학교의 ‘빅 피처 러닝’ (Big Picture Learning) 모델은 이러한 변화의 선두에 있다. 이 학교 학생들은 주 2일을 교실 밖에서 실제 직업 현장의 멘토와 함께 일하며 배운다. 이 학교 살만다 그레고리(Shalonda Gregory) 교장은 “학생들이 수업에 흥미를 느끼려면 교과서가 아닌 실제 환경에서 배우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재 캘리포니아주 250개 고등학교가 시행중인 ‘링크드 러닝'(Linked Learning)은 모든 학생이 대학 진학 요건을 충족하는 커리큘럼과 함께 캘리포니아 핵심 산업군과 연계된 직업 교육을 지역사회 및 기업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제공한다. ‘링크드 러닝 얼라이언스’의 앤 스탠턴(Anne Stanton) 대표는 더 나아가 “청소년기는 유아기 못지않게 중요한 시기”라며 대학 진학과 직업 준비를 통합적으로 접근하는 교육 모델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그의 말처럼 14~24세의 10년은 개인의 미래뿐 아니라 사회와 경제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시기다.
한국 교육계 및 미국내 한인사회는 아직도 “오래 공부해야 성적이 오른다”는 시간 기반 학습에 갇혀 있다. 한국식 입시 중심 교육은 학생들의 실제 역량보다 시험 점수에 더 큰 가치를 두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수능과 내신, SAT와 GPA라는 틀에 모든 학생을 맞추려는 시도는 다양한 재능과 관심사를 가진 학생들의 잠재력을 제한할 수 있다.
공립 교육의 목적은 단순 지식전달이나 입시 위주 교육이 아니다. 학생들이 평생 쓸 수 있는 실질적인 기술과 태도를 길러주는 것이다. 학생들이 ‘시간의 감옥’에서 벗어나 학생 개개인의 역량과 속도에 맞춘 교육으로 전환할 때, 우리는 더 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도록 도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