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중 처음으로 접한 식당이 너무 맛있어서 다시 찾아 간 적이 있는가. 그건 바로 우리 뇌가 그 장소를 ‘기억할 만한 곳’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장소 기억(spatial memory)은 우리가 새롭게 접한 환경속에서 중요한 정보를 간추려 저장하게 해주는 뇌의 메커니즘 중 하나이다. 이는 목표 기억(goal memory)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뇌과학 모델로 자주 등장한다. 그 중심에는 해마(hippocampus)가 있다. 해마에서 특정 장소에서 반응하는 장소인 뉴런 (place cells)이라는 신경세포가 처음 발견되었는데, 말 그대로 장소를 대표하여 머릿속에 저장하는 뉴런이다.
예를 들어 회사 회의실 한 구석에 자주 앉다 보면 그 공간을 대표하는 뉴런이 활성화되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 자리에서 승진 소식을 듣는 것과 같은 인생의 중요한 순간이 생긴다면 그 공간은 더욱 ‘특별한 장소’로 인식된다. 그 결과, 더 많은 장소 뉴런이 함께 활성화되며 더욱 강하게 각인된다.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뇌가 ‘바로 여기가 중요하다’고 판단하는지 그 원리는 밝혀지지 않았다. 지난 9일, 네이처(Nature)에 게재된 논문이 그 단서를 제공한다.
뇌의 ‘선택적 기억’
보통 뇌가 경험하는 모든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해마는 경험한 정보 중 특별한 감정이나 행동 결과와 연결된 단서만을 선별해 기억한다. 쥐가 처음 보는 가상현실(virtual reality) 환경에서 보상을 찾는 실험을 진행하며 특정 장소가 어떻게 기억되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쥐는 보상이 있는 목표 지점을 반복적으로 학습한 결과, 목표에 가까워질수록 보상을 예측하는 듯 먹이를 받기 전부터 혀를 내미는 등 행동 변화를 보였다. 이 때, 해마 안의 억제성 뉴런(inhibitory interneurons)의 활동이 선택적 기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기존 연구는 주로 흥분성 뉴런(excitatory neuron)의 일종인 장소 뉴런에 집중한 바와 달리, 이들을 조절하는 소수의 억제성 뉴런을 관찰함으로써 밝혀냈다. 쥐가 목표 지점에 도달했을 때 억제성 뉴런이 놀랍게도 조용해진다는 것이다. 그 순간, 장소 뉴런은 강하게 반응하며 해당 지점을 뚜렷하게 기억하게 되었다. 이는 억제 신호가 마치 ‘여기가 중요하니까 놓치지 마’ 라고 말하듯 학습의 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한 셈이다.
배우지 못하는 쥐
억제성 감소 현상이 학습에 꼭 필수적인가. 이를 검증하기 위해 광유전학(optogenetics) 기법으로 특정 억제성 뉴런을 빛으로 자극했다. 억제성 뉴런이 조용해지는 것을 방해했더니 쥐가 목표 장소를 전혀 배우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기억을 되새김질하며 강화하는 뇌의 고주파(sharp-wave ripple) 현상도 감소되었다. 자극을 ‘어디서’ 했는지가 관건이었다. 목표 장소에서 떨어진 위치에서 억제 뉴런을 자극했을 때는 같은 쥐라도 학습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즉, 뇌는 언제 어디서 억제할지, 정확한 타이밍과 위치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를 조절하는 능력이 새로운 특별 기억을 하는 데 핵심이었다.
뇌와 전략 설계
이 연구는 기업 전략에도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오늘날 기업들은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쏟아내지만, 실제로 기업들이 보유한 데이터 중 80%는 사용되지 못하고 버려진다는 통계도 있다. 그만큼 데이터 속에서 놓치는 기회가 많음을 보여준다. 우리 뇌처럼 전략도 기억될만한 설계가 필요하다. 필자는 뇌과학 연구를 바탕으로 기업 대상 교육 프로그램인 골스 언힌더드(Goals Unhindered) 워크숍을 개발했다. 같은 데이터도 신선한 관점으로 보고, 그에 대한 창의적인 질문을 던지며 실행 가능한 전략을 설계하는 시간이다. 능동적 경험이 가장 효과적으로 기억된다는 과학적 사실을 근거로, 경험적 배움(experiential learning)의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스파이 훈련소 콘셉트로 꾸며진 워크숍은 다양한 사람들의 관점과 목표를 추론하는 미션을 수행한다. 데이터 속에서 중요한 정보를 추출하고 상대 입장에서 어떤 전략이 먹힐지 맞춤형 스토리텔링하는 형식이다. 최근 워크숍에 참여했던 CDC(질병통제예방센터)와 에모리대학의 연구진들은 물론, 오랜 시간 성인교육 커리큘럼을 개발해온 교육자 수강생들 또한 “같은 프로젝트를 전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며 혁신적인 교육 방법이라고 평가했다.
데이터의 중요성은 인식하면서도 정작 KPI(key performance indicator)에 대해 자유롭게 질문하고 그 기준을 수정해 나갈 수 있는 공간은 만들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스파이’라는 흥미로운 콘셉트로 데이터를 친근하게 다루는 워크숍은 팀 전체가 같은 목표에 공감하고 자연스럽게 내재적 동기 부여되는 구조를 만든다. 조용한 집중이 기억될 전략을 만든다. 불필요한 자극을 줄이고 중요한 정보만을 선별해 저장하는 뇌처럼, 전략도 선택과 집중을 통해 실행 가능한 기억으로 남아야 한다. 변화무쌍한 시대, 기억되는 전략을 끊임없이 설계하는 것이 바로 혁신적 팀의 과제이다.
정누리 박사는 에모리대학에서 뇌과학 박사 과정을 마치고 현재 과학기반 전략 워크숍을 통해 기업과 리더들이 데이터를 새롭게 보고 실행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한국에서 태어나 15살에 도미해 글로벌 무대에서 한인의 창의적 사고와 경쟁력을 확장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정 박사는 뇌가 특정 정보를 어떻게 ‘중요하다’라고 판단하는지 원리를 연구했다. 정 박사는 조지아텍과 에모리대에서 공동 수행한 연구논문의 제1저자로 참여했으며, 논문은 지난 9일 네이처지에 게재됐다. 문의=nuri@goalsunhindere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