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90억불 전부 끊을까”…막후엔 스티븐 밀러
미국 명문대학의 상징과도 같은 하버드대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문화 전쟁’의 한복판에서 정면 충돌했다.
하버드대가 연방 지원금의 돈줄을 앞세운 ‘정책 변경 압박’에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자, 트럼프 행정부는 실제로 천문학적 금액을 동결하며 반격에 나섰다.
앨런 가버 하버드대 총장은 14일 교내 커뮤니티에 보내는 글에서 “우리 대학은 독립성이나 헌법상 보장된 권리를 놓고 협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캠퍼스 내 반유대주의 근절 등을 명분으로 트럼프 행정부가 요구해 온 조치사항을 이행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가버 총장은 트럼프 정부가 연방 기금 지원을 유지하는 대가로 기존 요구 조건을 넘어서는 조건부 학칙 연장을 요구했다며 “이는 반유대주의를 협력적이고 건설적인 방식으로 해결하기 위해 우리와 협력하고자 하는 의도가 아님을 분명히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그 어떤 정부도 사립대학이 무엇을 가르칠 수 있는지, 누구를 입학시키고 고용할 수 있는지, 어떤 연구와 탐구 분야를 추구할 수 있는지 지시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행정부도 즉각 대응에 나섰다.
미 정부 내 ‘반유대주의 근절을 위한 합동 태스크포스(TF)’는 몇 시간 만에 성명을 내고 하버드대에 수 년간 22억 달러 규모의 보조금과 6천만 달러 규모의 계약을 동결한다고 발표했다.
TF는 “하버드대의 오늘 성명은 우리나라의 최고 명문 대학에 만연한 문제적인 권리 의식, 즉 연방 정부 투자에는 시민권법을 준수할 책임이 따르지 않는다는 생각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최근 몇 년간 캠퍼스를 휩쓴 학습 차질, 유대인 학생들에 대한 괴롭힘은 용납할 수 없다며 명문대학들이 납세자의 지원을 계속 받으려면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의미 있는 변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버드대는 지난해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학생들을 주축으로 한 가자지구 전쟁 반대 시위 이후 백악관의 공격 대상이 된 명문대 가운데 하나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2월 TF를 구성하고 하버드대와 컬럼비아대 등 ‘반유대주의 사건’이 발생한 10개 대학 캠퍼스를 방문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가운데 하버드대에 대해서는 최대 90억 달러 규모의 연방 기금 지급 및 계약 여부를 재검토하고 있다며 ‘지속적인 재정 관계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9가지 조치 실행’을 요구했다. 여기에는 다양성·평등·포용(DEI) 프로그램 폐지, 입학 규정 변경, 이념적 견해를 이유로 특정 학생, 교수진 ‘세력’ 채용 및 억제 등이 포함됐다.
다른 대학들에도 비슷한 기금 중단 압박과 함께 DEI 폐지 등 정책 변화를 요구했다. 이 가운데 명시적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요구를 거부한 것은 하버드대가 처음이다. CNN 방송은 “하버드대의 결정이 다른 고등교육기관들의 연쇄 반발로 이어지는 물꼬를 틀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이날 곧바로 TF의 조치가 이어진 데서 보이듯 트럼프 행정부 역시 강경한 모습이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달 1일 백악관에서 오찬을 마친 뒤 하버드대에 지급하는 연 90억 달러를 모두 끊는 방안을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태평한 말투로 “아예 돈을 안 주면 어떠냐. 멋질 것 같지 않냐”고 말했다고 한다.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부터가 지원 중단에 적극적인 데다, 이에 따라 TF와는 별도로 스티븐 밀러 백악관 정책 담당 부비서실장이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한다.
그 배경에는 ‘급진 좌파 엘리트가 장악한 대학 권력’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트럼프 대통령과 측근들의 시각이 깔려 있다고 NYT는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캠페인 등을 통해 대학 캠퍼스를 “마르크스주의 광신도들이 주도하는” 불의가 만연한 곳으로 묘사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을 지지해 온 보수 활동가 크리스토퍼 루포는 NYT에 “적어도 한두 세대 전으로 되돌려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