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초, 아직 쌀쌀한 날씨가 계속되던 겨울의 끝자락에서 ‘문학의 밤’이라는 이름을 붙여 놓고 우리들 만의 오붓한 시간을 가졌다. 매주 수요일 만나서 랜덤으로 뽑아진 주제를 가지고 20분동안 자신의 생각을 글로 쓰고 함께 나누는 글동무 여인들은 그날 마치 문학소녀들 같았다.
처음 중앙일보에 글을 쓰기 시작한 분은 이민자들에게 필요한 유익한 정보나 앨라배마 주의 역사와 몽고메리의 소식 등 사회 전반적 이슈를 고루 알리고자 애쓴 우리 글모임의 수장 영 그레이 샘이다. 그렇게 오롯이 혼자 20년을 이어온 신문기고는 몽고메리에 여성 문학회가 시작된 3년전부터 두세명씩 늘어나기 시작하여 지금은 많은 회원들이 신문에 글을 발표한다.
내가 글 모임에 합류하게 된 것은 나이 지긋한 중년의 여인들이 모여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나보다 인생 선배이신 분들과 삶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될 거라는 기대감에서 였다. 20분은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이지만 어렵고 불편한 마음 보다는 신기할 정도로 저마다의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마법 같은 시간이다.
매주 모여서 하는 이 작업은 항상 설렘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어느 날은 도저히 아무것도 써질 것 같지 않은 주제도 있었고 간단히 말하기엔 어려운 무거운 글감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만든 규칙인 20분 글쓰기는 계속되었고 어찌 되었든 모두는 자기의 생각을 풀어 글로 적어 놓는다. 그것이 우리들의 글 쓰는 연습과 습관을 만들어 가는 일이 되고 있다. 중앙일보에 매주 실리는 몽고메리 여성 문학회원들의 시, 수필과 다양한 형태의 글들은 이런 꾸준한 연습을 통해 이어져가는 열매들이다.
모두가 다른 모습의 날들을 보내면서 일주일에 한번, 두시간의 만남은 짧은 시간이지만 충분히 일상을 벗어난 새로움이 있고 평소 다루지 않던 단어들로 이어지는 대화는 한때 아름답게 빛나던 청춘으로 잠시 돌아 간듯한 신선함도 느낄 수 있게 한다. 가끔은 아주 과거에로 때로는 가까운 미래로 현재를 넘어서는 맹랑한 이야기들은 우리들 마음을 말랑말랑 주물러 준다. 그 맛에 하던 일 멈추고 모임 장소로 찾아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가장 늦게 합류한 막내는 글 쓰는 모임에 오면 마음이 통하는 여러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어 행복하다 말한다. 얼마나 좋은 지 그녀는 2시간 동안 많이 웃는다. 그녀의 웃는 얼굴을 보면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다. 그렇게 웃던 그녀가 들뜬 목소리로 문학의 밤을 제안했다. 그래서 그녀의 집 뒷마당에서 장작을 모아놓고 불을 지펴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보며 멋진 제 1회 문학의 밤을 가졌다.
그날 밤, 우리는 밤하늘 별처럼 환하게 빛났고 벌건 불구덩이 속 장작처럼 뜨거웠다. 그곳엔 톨스토이도 있었고 천상병 시인도 있었으며 낯선 이름의 시인들도 함께했다. 내가 소개한 톨스토이의 ‘인생 론’은 그가 15년에 걸쳐 집필했을 정도로 그의 사상과 철학의 정수를 담은 책이다. 톨스토이 자신이 주기적으로 되풀이해 읽은 책이며 모든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라 자부할 만큼 그 책에 대한 애정이 매우 컷 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는 마음이 복잡하거나 일이 계획처럼 풀리지 않을 때, 현실과 이상의 차이에서 갈등하며 고민할 때 톨스토이의 단편집에 수록되어 있는 짧은 소설들을 읽는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두 노인’ 등을 읽다 보면 인생은 무엇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에 대한 답을 찾게 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어눌해 보이지만 늘 웃었던 시인 천 상병. 고단했을 삶을 즐거운 소풍이었다 말하고 웃으며 떠난 그는 우리들 가슴에 찬란한 빛을 남겨준 아름다운 어른이었다.
살기 퍽퍽해 힘들어하는 어수선하고 불안정한 현실에서 술, 친구, 음악, 시, 초생달과 별, 밤하늘, 불꽃, 웃음소리, 눈물, 따뜻한 목소리 등 이런 아름다운 것들로 사치를 부린 문학의 밤은 내 마음 한 켠에 조용히 담겨있다. 그리고 내가 가끔 꺼내어 보는 우리들의 낭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