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필자가 졸업한 로스쿨 모교 교수가 자기 SNS에 글을 올렸다. ‘택스 클리닉’을 운영중인 그 교수는 “졸업 예정 학생들이 일자리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택스 클리닉을 거친 이 학생들은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졸업후 국세청(IRS) 소속 변호사로 취직이 예정돼 있었다. 그러나 얼마전 이 학생들의 ‘잡 오퍼’가 취소되고 갈곳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철밥통’으로 불리던 연방정부 공무원도 더 이상 안심할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세금 신고 시즌이 한창인 요즘, 국세청(IRS)이 요즘 시끄럽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일론 머스크가 운영하는 정부효율부(DOGE)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시작되고 있다. IRS 는 이미 지난 2월 수습 직원 7,000명 이상을 해고했으며, 앞으로 전체 인력 9만 명 중 절반에 달하는 인원을 줄일 계획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IRS 인력 감축은 단순한 정부 기구 축소를 넘어 미국 사회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중대한 변화다.
IRS는 연방 정부 예산의 97%를 책임지는 핵심 기관이다. 그런데 이 기관의 인력을 절반 가까이 줄이겠다는 계획은 단순한 ‘긴축’이 아닌 ‘세수 붕괴’에 가깝다. 예일대 나타샤 사린(Natasha Sarin)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이 정책으로 향후 10년간 최대 3,950억 달러, 간접적 영향까지 고려하면 2조 4,000억 달러의 세수가 사라질 수 있다. 샤린 교수는 “국가 재정 건전성을 위한다면서 세수 기반을 무너뜨리는 모순적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사회 불평등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세금 감면은 주로 상위 소득층과 대기업에 혜택이 집중되는 반면, 그 재원 마련을 위해 메디케이드나 저소득층 식료품 지원 프로그램 같은 복지 예산이 대폭 삭감될 전망이다. “이는 부의 재분배 기능을 약화시키고 사회 안전망에 의존하는 취약계층의 생존을 위협한다”고 뉴욕대 세법센터 마이클 카처 (Michael Kaercher)부소장은 지적한다.
세금 징수 시스템의 약화는 조세 공정성에도 타격을 준다. 근로소득자들은 원천징수로 99%에 달하는 높은 납세율을 보이지만, 자영업자나 대기업은 보고 의무가 느슨해 절반 이하의 납세율을 보인다. IRS의 감사 기능이 약화되면 이러한 격차는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성실히 세금을 내는 중산층과 서민들만 상대적 불이익을 받게 되는 구조라고 카처 부소장은 평가했다.
여기에 최근 IRS와 이민세관단속국(ICE) 간 체결된 불법체류자 납세 정보 공유 협약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연간 660억 달러에 달하는 서류미비자들의 세금 납부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더 나아가 이민자 가정들이 단속을 피하기 위해 병원, 학교, 공공서비스 이용을 기피하면서 사회적 비용은 오히려 증가할 수 있다고 세금정책센터 아라빈 바두팔리(Aravind Boddupalli) 수석 연구원은 지적한다.
국가 재정은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합의와 신뢰의 문제다. 세금은 국민과 정부 간의 사회적 계약이며, 이 계약이 공정하게 이행될 때 사회는 건강하게 유지된다. 세금 징수 시스템을 약화시키는 것은 이 계약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진정으로 재정 건전성을 추구한다면, 세수 기반을 약화시키는 단기적 조치보다 조세 시스템의 효율성과 공정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고령화, 국방비 증가, 사회보장기금 고갈 등 미래의 재정 압박 요인들을 고려할 때, 지금은 세입 기반을 강화해야 할 때다.
필자를 비롯한 그 누구도 세금내기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세금을 줄이고 작은 정부를 실현한다”는 이상은 언뜻 보기엔 매력적으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사회 안전망의 붕괴와 불평등 심화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다. 진정한 국가 발전은 단순한 세금 감면이 아닌, 모든 구성원이 공정하게 기여하고 혜택을 나눌 수 있는 균형 잡힌 시스템에서 비롯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