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함이 세상을 잠재우던 시간, 어둠이 겹겹이 무게를 더해갈 즈음이면 나는 종종 책상 앞에 앉아 편지를 쓰곤 했다.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적어 내려가던 깨알 같은 사연들. 감정의 주머니 깊숙이 숨겨 두었던 말들까지 꺼내어 펼쳤던 그 밤들은 내게 하루의 끝이자 또 다른 시작이었다. 소소한 일상도, 말로 전하기 어려웠던 감정도 글속에 담기면 더 진하게 다가왔다. 그 시간은 나 자신과 마주하는, 눈부시게 순수한 시간이기도 했다.
얼마전, 잊고 있던 박스를 열었다. 빼곡히 들어찬 손편지들 사이로 지난 시간이 조용히 흘러나왔다. 한 장 한 장 꺼내 읽다 보니 ‘이런 시간도 있었나?’ 싶어 웃음이 나기도, 문득 그리운 얼굴이 떠올라 눈물이 고이기도 했다. 힘들었던 시절엔 마음이 아렸고, 간지러운 사랑 고백엔 얼굴이 붉어졌다. 아무리 떠올려도 기억나지 않는 이름 앞에서는 흔적만 더듬으며 접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밤에 쓴 편지를 날이 밝아 다시 읽어본 후 마음이 바뀌어 부치지 못한 것들이었다. 그 밤엔 분명 진심이었지만, 아침의 눈으로 마주한 글은 어쩐지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졌었다. 그래서 그 편지들은 봉투에 담기지도 못한 채, 오랜 시간 내 마음속 이야기로 남아 박스 안에서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지금 다시 읽어보니, 그때는 부치지 못했지만 오히려 그 순간들이 가장 솔직하고 깊었던 마음의 흔적이 느껴진다. 반면, 용기가 필요한 이야기는 밤사이 미리 봉투를 봉하고 날이 밝자마자 망설임 없이 우채통에 넣곤 했다
이메일 계정을 만들어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손편지는 아쉽게도 뜸해졌다. 하지만 손쉽게 주고받을 수 있는 이메일의 편리함 더 많은 밤을 불태우게 했다. 좋아하는 음악을 첨부하고, 사진과 시를 꾸며 보내며, 여행 다녀온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하며 맞이한 새벽도 많았다. 미국에 온 이후에도 이메일을 주고받던 인연들은 여전히 따뜻하게 내 곁에 있다. 지금도 사용 중인 첫 이메일 계정에는 삼천 통이 넘는 편지가 저장되어 있다. 일부는 불필요한 것도 있겠지만, 그 안에 고스란히 담긴 지나온 시간들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한창 바쁘게 살던 시절, 나는 펜을 들거나 자판을 두드리며 선후배와 친구, 동료들을 만났다. 그것은 단순한 교류가 아니라 마음을 전하는 배달부였고, 깊은 소통의 창이였다. 아이들을 키우느라 나만의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던 그 시절에도, 오히려 새벽의 틈을 비집고 편지를 썼다. 밤은 감성의 놀이터였고, 말보다 더 솔직한 나를 드러내는 무대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런 밤은 내게서 점점 멀어졌다. 아니, 그 밤들을 잊고 살았던 것이다.
이제는 내 손길을 필요로 하던 아이들도 자라, 저마다의 길을 향해 떠났고, 나는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더 이상 예전처럼 밤의 정적을 기다리지 않는다. 삶이 자연스레 그 열정을 덜어낸 것인지, 아니면 내 안의 감성이 퇴색된 것인지 알 수 없다. 전에는 전화로도 꺼내지 못하던 속내를 편지로는 쉽게 털어놓았는데, 이제는 손쉽게 오가는 SNS 메시지가 대신하고 있다. 소통은 더 빨라졌지만, 감성은 점점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시간은 많아졌지만 마음으로 전하는 글은 오히려 사라진 듯하다. 그런 것들이 어쩐지 쓸쓸하다.
‘밤에 쓰는 편지’라는 말 한 줄이 잊고 있던 시간들을 다시 불러냈다. 십대시절의 수줍음부터, 육십 대에 접어 든 지금의 여유까지. 이제는 예전처럼 밤을 지새우며 편지를 쓰는 열정은 없지만, 여전히 나만의 방식으로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하고 있다. 짧은 안부 한 줄에도 따뜻함을 담고, 긴 설명 없이도 깊은 신뢰를 전하는 편지. 예전만큼 진한 향기는 없지만 숨결처럼 잔잔하고, 화려한 문장 대신 다정한 공백을 남기는 여유로운 편지를 쓴다.
저녁 산책길, 실눈으로 웃고 있는 달을 올려다본다. 총총한 별들 사이로 오래된 마음 하나가 떠오른다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너에게 전할 안부를 별들에게 살며시 속삭여 본다. 오늘밤, 오랜만에 너에게 그 밤의 향기를 담아 편지를 써야겠다. 그리고 이메일을 열어 보라는 문자를 꼭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