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점심을 함께하던 태권도의 명인, 김 선생님을 오랜만에 다시 뵈었다. 이제는 운전을 하지 않으셔서, 내가 그의 집으로 직접 찾아갔다. 올해 94세인 그는 여전히 주름 하나 없는 맑은 얼굴에 꼿꼿한 자세, 또렷한 말소리, 건강한 걸음걸이를 유지하고 계셨다. 문득 그가 예전에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100세 때, 세계 태권도 연맹 총회에 나가 시범을 보이고 싶어요.”
투고 도시락을 함께 나누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은 혼자 살고 계시는 그의 집은 20년 전에 직접 지은 이층 벽돌집으로, 비슷한 집들이 모여 있는 조용하고 아늑한 동네에 자리하고 있었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 거실 벽난로 선반 위에는 사진틀과 금빛 명패들이 길게 전시되어 있었고, 그 중심엔 그의 모친 흑백사진이 놓여 있었다. 사진 속에는 명예 박사학위 증서 두 장, 오바마와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상장도 있었다. 식탁 위에도 상장과 자격증, 그의 삶의 영광스러운 순간들이 담긴 사진들이 가득했다.
운전을 그만두신 뒤로는 세 자녀가 돌아가며 일주일에 세 번씩 찾아와 함께 지낸다고 한다. 도장에 가실 때는 제자 중 한 명이 운전을 해준다고도 하셨다. 점심을 함께 하며 곁에서 뵈니, 그의 얼굴은 여전히 윤기 있고 반들반들했다.
“어떻게 그 연세에 얼굴에 주름이 하나도 없으세요?” 내가 물었다. “빨래의 주름을 펴려면 다리미질하잖아요?” “설마 얼굴을 다리미질하신다는 건 아니죠?” “손으로 마사지를 해요.” “언제 하세요?” “아침에, 잠에서 깨어 일어나기 전에 침대에 누워서.” “오래전부터 하신 거죠?” “그럼요. 언제부터 했는지는 기억도 안 나요.”
얼굴을 자주 만지고 마사지하면 주름이 줄고 윤기가 난다는 이야기를 예전부터 들어왔다. 90대 중반에도 그런 얼굴을 유지하시는 김 명인은 그런 말의 실제 증거다. 나도 아침 스트레칭을 하며 얼굴을 잠깐 마사지하곤 한다. 혹시 내 얼굴에 주름이 적다면, 그것도 그런 습관 덕분일지 모른다.
점심 식사 후 거실로 나가 텔레비전 앞 안락의자에 앉으려 하자 그가 말했다. “잠깐 여기 와서 맨발로 서 봐요.” 그가 가리킨 곳은 안락의자 뒤쪽에 놓인 둥그런 철판이었다. 나는 슬리퍼를 벗고 그 철판 위에 올라섰다. 바닥엔 울퉁불퉁한 돌기들이 있어 발바닥을 자극했다. “제자리걸음을 해보세요.” 걸어보니 발바닥이 자극되며 따끔거려도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TV를 볼 때 그냥 앉아 있지 않아요. 거기 서서 걸으면서 봐요.”
TV를 오래 앉아서 보면 건강에 안 좋다는 말은 익히 들어왔다. 30여 년 전, 나도 나무판을 만들어 TV를 보며 위에 올라섰다 내렸다 하는 운동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오래 가지 않았다. 김 선생님은 지금도 그렇게 서서 걸으며 TV를 보신다. 또 안락의자에 앉아 볼 때는 만년필 크기의 나무 도구로 발바닥을 문지르며 마사지하신다고 한다. 그는 매일 4마일을 걷고, 스쿼트도 자주 하며, 거실 매트 위에 누워 아령 운동도 한다고 했다.
강인한 체력을 자랑했던 복싱 챔피언 무하마드 알리도 42세에 파킨슨병에 걸려 32년간 투병하다 74세에 세상을 떠났고, 내가 아는 유도 관장은 50대에 파킨슨병에 걸려 고생하다가 세상을 떴다. 어떤 태권도 관장은 70세에 허리가 굽고 절룩이며 병을 앓고 계신다. 그에 비해 94세의 김 명인은 건강관리를 잘한 덕분에 지금까지도 강건함을 유지하고 있다.
집에 돌아와 나도 텔레비전을 보면서 중간중간 걸어야겠다 고 다짐했다. 예전에 야구장을 맨발로 걸으며, 황토를 담은 상자를 의자 뒤에 두고 걷고 싶다고 생각했던 일이 떠올랐다. 하지만 결국 실행하지 못했다. 이번 기회에 해볼까 싶어 아내에게 물어보았다. “그런 상자 어디서 살 수 있을까?” 그러자 아내가 웃으며 말했다. “사흘만 더 생각해보세요. 급하게 시작했다가 며칠 하고 말 거면 안 하느니만 못해요.”
맞는 말이다. 황토 상자는 좁은 방에 거추장스러울 수도 있다. 그래서 인터넷 쇼핑몰을 열고 발 마사지 매트를 검색해보았다. 다양한 제품들이 있었고, 그중 돌기가 울퉁불퉁한 고무 매트를 하나 주문했다. 우선은 그것으로 맨발 걷기를 시도해보고, 황토 상자는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다.
“건강하게 타고나도, 관리를 안 하면 안 돼요.” 김 명인의 이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그의 주름 없는 얼굴도, 94세의 건강한 몸도 모두 오랜 시간 쌓아온 자기관리의 결실이다. 나도 그 나이까지 건강하고 주름 없는 얼굴을 유지하고 싶다. 그러려면, 지금부터라도 꾸준히 실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