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때쯤이면 석류를 잔뜩 산다. 올해도 붉고 먹음직스런 빛 좋은 석류를 구했다. 석류를 하나 까니 잘 읽은, 루비처럼 반짝이는 알갱이들이 속에 꽉 차있다. 빈틈없이 들어선 알갱이들을 살살 만지며 하나하나 떼어서 그릇에 담으면 마치 하늘의 별을 잡은 착각이 들고 저절로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 시 구절이 입에서 나온다.
‘…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12월 중순이다. 한해의 마지막을 마무리하며 추억과 사랑, 쓸쓸함과 동경, 그리고 시와 어머니를 생각한다. 여기에 보탤 것이 없다. 추억과 사랑은 내 속에 잠자고 쓸쓸함과 동경은 계절이 지나면 새로운 감각으로 바뀔테고 시는 생활속에 있지만 어머니는 아니다. 어머니는 너무나 멀리 계신다. 하늘의 별이 되신 어머니가 무척 보고 싶다. 어머니 생전에 잘 모시지 못한 과오를 후회하며 살다가 ‘어머니’ 단어가 나타나면 내 감각은 젖어버린다. 그리고 어머니와 만든 어떤 아름다운 추억도 그리움을 달래지 못한다.
거동이 불편한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친구는 가끔 힘이 든다고 실토한다. 어머니가 엉뚱한 고집을 피우시면 그녀의 인내심이 테스트를 받는다면서 허전하게 웃는 친구에게 “너의 행복한 불평을 진심으로 질투한다” 했더니 깔깔 웃었다. 오늘도 그녀는 최선을 다해서 어머니를 편안하게 모시고 있다. 살아계시는 어머니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축복을 가진 것을 현명한 그녀는 안다.
입안에 상큼한 향기를 가득 채워주는 석류를 혼자 먹는 것이 아쉽다. 석류에 칼집을 내어서 살짝 비트니 그 안에 빼곡히 숨은 속살같은 알갱이들이 쏟아져 나온다. 접시에 쌓인 석류 알갱이에 가을의 정취가 뭉클하다. 많은 추억과 사랑이 탄탄하게 익었다. 뭉쳤다가 하나로 흩어진 석류 알갱이들과 달리 하나에서 단체로 변신하는 것은 내가 즐기는 직소 퍼즐이다. 수많은 조각들이 방향 잃은 미아로 정체성이 없다가 하나씩 자리를 찾아가면서 조금씩 모습을 들어낸다. 모든 피스가 정확히 제자리를 찾아 들어앉아야 비로서 완벽한 하나가 된다. 그렇게 각 조각은 사람들이 의존하며 사는 것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거다.
지난 2년 미친듯이 직소 퍼즐을 했다. 자유롭게 나다니지 못하니 지구 곳곳의 멋진 정경과 아름다운 명화를 내 집으로 끌어들였다. 긴 식탁의 한쪽에는 언제나 흩어진 퍼즐 조각들이 상주했다. 어려운 수도쿠 풀듯이 도전을 주는 퍼즐에 집중하면서 세상 시름을 잊었다. 그리고 허튼일에 시간 낭비한다고 핀잔을 주는 남편에게 The Great Courses CD를 들으면서 공부하는 것이 주목적이고 퍼즐은 곁들인 반찬이라고 반박했다.
아이가 태어나서 하얀 백지에 선을 긋기 시작하면 그 선은 다른 선과 이어져서 계속 그림을 그린다. 누군가에게 선이 되어 줄 수 있는 배려를 배우며 조금씩 성장한 아이는 어느 사이에 성인이 되고 생활인이 되어 인생의 사계절을 산다. 아메리칸 원주민들이 동서남북 방향으로 인생의 나이를 사계절로 나누어서 각 계절마다 가져야하는 마음가짐을 주문처럼 읊는 것은 어떻게 살아라 하는 안내가 아니라 자연에 순응하며 지혜롭게 살아야하는 자세를 일깨우는 인생 교훈이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하면 미미한 것이지만 석류 알갱이 하나와 직소 퍼즐 하나에도 내 자리가 있다. 내 삶의 의미가 있다.
인생의 겨울을 맞으면서 “지금 아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하며 과거의 어느 순간을 후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처럼 올해 내가 선택한 크고 작은 결정들이 연말이면 마치 심판대에 선 기분이 들게 한다. 윤동주 시인의 ‘서 시’ 구절,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처럼 나도 하늘을 보며 부끄럽지 않도록 살려고 노력했다. 왠지 올 연말에는 윤동주 시인이 자주 나를 찾아온다. 어쩌면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을 찾는 것이 새해의 내 목적인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