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서 샌타모니카까지
미국 최초의 대륙횡단 도로
한때 퇴락했다가 다시 복원
주요 경유지 옛 정취 그대로
66번 국도(Historic Route 66). 이 길은 곧 미국의 역사다. 수많은 사람의 눈물과 애환이 서려 있는, 아픔의 길이자 희망의 길이었다.
출발점은 시카고 다운타운 리처드 토머스 웨이(Richard L Thomas Way)와 조지 솔티플레이스(Georg SoltiPl) 사거리 옆에 있다. 종점은 캘리포니아 샌타모니카 바다 끝 피어 위다.
옛말에 서러움 중에 가장 큰 서러움이 배고픔이라고 했다.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기가 그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오클라호마주의 중부지역에는 초대형 토네이도로 모든 농작물과 가축이 모래와 자갈밭으로 뒤덮여 버렸다. 더 이상 인간의 힘으로는 재기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이곳 사람들은 더 나은 삶을 찾아 서부로 떠나기 시작했다.
이주 행렬은 1950년 후반까지 이어졌다. 그 속에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존 스타인벡도 있었다. 그의 유명한 소설 ‘분노의 포도’는 이 길 위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게이트웨이 아치도 이때의 서부로 간 사람들이 지나갔던 곳이다. 사람은 먹어야 산다. 아기 때는 엄마 젖을 먹어야 하고 그 후에도 엄마가 무엇인가 먹여줘야 살 수 있다. 이 길을 거쳐 간 당시 이주자들도 이 길 위에서 먹고 마시며 버텼다. 그래서 이 길은 일명 어머니 길(The Mother Road)라고도 한다.
66번 국도는 1926년 개통됐다. 총 길이는 2448마일, 비포장 상태였다. 비록 모래와 자갈이 뒤섞인 흙길이었지만 미국 최초의 대륙횡단 도로였다. 66번 국도는 미국의 실크로드라고도 불리고 문학과 음악 같은 예술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노벨 문학상 수상 가수 밥 딜런 말고도 엘비스 프레슬리, 넷킹 콜, 폴 엥카, 척 베리 등 많은 가수가 이 길을 노래했다.
66번 국도는 한국으로 치면 서울-부산 간 경부 국도와 같다. 한국도 비포장 시절에는 비만 오면 도로가 움푹움푹 패어 모든 도로에 자갈을 깔아 놓기도 했는데 필자도 학창시절 자갈 부역을 한 기억이 난다. 또 유성온천으로 신혼여행을 갈 때 타고 가던 버스가 타이어 펑크가 나 2시간여 동안이나 흙먼지 길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기다리면서 신랑의 체면이 말이 아닌 곤욕을 치른 추억도 있다.
66번 국도는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뉴멕시코, 텍사스, 오클라호마, 캔자스, 미주리, 일리노이 등 8개 주를 관통한다. 지금은 대부분 프리웨이로 편입이 되었지만 여전히 66번 국도의 정취를 잘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곳 하나가 애리조나주 콜로라도 강 근처에 있는 오트맨( Oatman)이라는 도시다. 이곳은 골드러시로 번성했던 곳이다.
66번 도로는 이 마을 중심을 관통하는데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당시 미국 최고 배우 클라크 게이블이 신혼 여행을 와서 며칠 밤을 묵고 간 호텔이 지금도 잘 보존되어 있다. 현재 영업은 하지 않고 있으나 그들 부부가 사용했던 침대는 문밖에서 볼 수 있다.
아래층 식당 내부 벽에는 방문객들이 자기 사인을 해서 붙여놓은 돈으로 빈틈이 없다. 길거리에는 야생 조랑말들이 여행객들에게 먹이를 달라고 애원하기도 하고 또 어떤 놈은 실컷 얻어먹었는지 길바닥에서 차가 오든 말든 낮잠을 즐긴다. 그러다 해가 넘어가면 산속으로 들어가고 아침에 해가 뜨면 다시 마을로 출근한다.
66번 국도는 별칭도 많다. 앞서 말한 ‘마더 로드’ 외에도 타운과 타운을 잇는 중심 도로라 하여 ‘메인 스트리트’, 피 끓는 정열이 넘치는 도로라 하여 ‘블러디 66’, 길 자체의 대명사란 의미로 ‘더 루트’ 등으로도 불린다.
시카고 방문 길에 출발점에서 사진을 찍었다. 또 66번 국도에 대해 글을 쓰고 쓴다 하니 바쁜 중에도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카고까지 날아와 오랜만에 부자지간에 친구도 되어주고 많은 정보도 들려준 아들에게 감사한다.
# 여행메모
66번 국도(US Route 66)는 시카고에서 샌타모니카까지 이어지는 약 2500마일의 대륙 횡단 도로다. 대부분 고속도로에 흡수됐다가 한 시대의 문화적 아이콘이라는 점이 부각되면서 2003년 전 구간이 다시 복원되었다. 애리조나 오트만 외에도 66번 국도가 지나가는 주요 도시마다 기념품 가게나 오래된 상점, 작은 여관 등이 있어 외국 관광객들은 물론 옛날 정취를 맛보려는 미국인들도 일부러 이 길을 이용한다.
66번 국도 캘리포니아 샌타모니카 피어 종점.
글, 사진 / 김평식 여행 등산 전문가.
미주 중앙일보를 비롯한 다수의 미디어에 여행 칼럼을 집필했으며 ‘미국 50개주 최고봉에 서다’ ‘여기가 진짜 미국이다’ 등의 저서가 있다. 연락처 (213)736-90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