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들려온 2015년 11월, 그 분이 미국의 한인들에게 당부했던 말씀이 새삼 생각난다. 김 전 대통령과는 1993년 백악관 만찬에서 잠시 만난 게 전부지만 미국 한인들의 장래를 걱정하며 과감하게 대화를 이끌던 모습이 생생하다.
그는 한국 정가를 기웃거리던 일부 한인들이 줄기차게 제기한 ‘교민청’ 설치 요청에 확실하게 결론을 냈다. “이민 갔으면 그곳에서 뿌리내리고 잘 살아라. 모국에 기대 걸어봐야 ‘국물’도 없다.”
고국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는 일부 한인의 희망에 대해서도 이렇게 이야기 했다. “‘미꾸라지급’인 현재의 한인사회로는 용도 미달이다. ‘잉어급’ 정도로 커진 다음에 보자”.
김 전 대통령은 한인들과 만날 때마다 “현지에서 뿌리내리고 충실한 미국 시민으로 살아가시라”고 당부했다. 미주 한인들의 ‘응석’을 단호하게 거절하며 미국에서 이민자로서 긍지를 갖고 살라고 주문하는 그에게 실질적 지도자라는 인상을 받았다.
지금 미국 한인사회에서는 한국 대통령 선거를 위한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다. 머지않아 각 정당의 입후보자나 관계자들이 나와 한인회와 향우회 등을 동원해 득표 활동도 벌일 것이다. 그러면 이른바 한인사회 지도자들도 덩달아 나설 것이다.
지금 미국은 올해 중간선거 캠페인이 한창이지만 아쉽게도 많은 한인들의 관심은 중간선거보다는 이곳 생활과 직접 관련이 없는 한국 선거에 가 있는 듯하다. 많은 한인이 볼 때 한인 사회에서 펼쳐지는 한국 대선이나 총선 입후보자들을 위한 선거 운동은 우리 이민자들이 미국에 뿌리내리고 사는 데 오히려 장애가 되고 있다.
해외 한인들이 가진 몇 표를 얻기 위해 동포 사회를 한국에서처럼 동과 서, 그리고 남과 북 출신 그룹으로 분열시키는 한국 정치인들의 염치없는 행태를 서거한 김영삼 전 대통령이 보았으면 무어라고 할까 궁금하다. 이민 온 우리 같은 사람들이 우선시해야 할 일은 현지 정착과 동화이다.
고국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야 누구나 같지만, 이민을 왔으면 이민자답게 이 나라 미국 시민으로서 성숙한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함량 미달 ‘지도자’들이 대표하는 오합지졸 한인사회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려는 자들만 있을 뿐이다.
후세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하기 위해 다시 한 번 결심하자. 우리 이민자들이 ‘미국팀’으로의 소속감을 갖지 못하면 어디서건 쓸모없는 집단으로 남을 뿐이다. 우리가 애지중지 키우고, 빚이라도 내서 공부시키는 우리의 아들 딸들에게 이율배반의 잘못된 모범을 보이지는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