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절반 이상, 코로나 걸렸거나 백신 맞아…게임의 룰 바뀌어”
“얼마나 빨리 엔데믹 전환하느냐는 다음 변이의 성격에 달려”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영국, 미국 등에서 오미크론 변이로 인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폭발적인 확산세가 한풀 꺾인 듯한 징후를 보이면서 이제 곧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이 끝날 것이냐는 물음이 제기되고 있다.
CNN 방송은 작년 11월 말 오미크론 변이가 출현하면서 세계가 최악의 상황을 두려워했지만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나 오미크론이 많은 나라에서 우세종이 된 가운데 이런 프레임이 다소 바뀌었다고 22일 보도했다.
과학계 일각에서 오미크론이 팬데믹의 최종장(章)이 될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낙관론이 나오고 있다.
상대적으로 중증이나 사망을 덜 유발하는 오미크론 감염자가 대거 나오면서 인류의 상당수가 면역력을 갖게 되고 그 결과 코로나19가 감기나 독감 같은 계절성 질환과 비슷해지는 엔데믹(endemic·토착병) 국면에 더 근접하게 된다는 것이다.
엔데믹은 어떤 질병이 지속적으로 존재하지만 팬데믹처럼 대규모로 감염을 일으키지 않고 사회의 각 기능이 작동하는 데 차질을 일으키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런던 위생열대의학대학원의 데이비드 헤이먼 교수는 “내 개인적 견해는 다른 코로나바이러스가 그랬던 것처럼 코로나19가 엔데믹이 되고 있으며 당분간 엔데믹으로 머물리라는 것”이라며 “모든 바이러스는 엔데믹이 되려고 노력하며, 이것도 (이에) 성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물론 변수는 있다. 아무도 오미크론의 출현을 예상하지 못했듯, 다음 변이는 공중보건에 더 심각한 위협이 돼 팬데믹의 종식을 늦출 수 있다. 또 아직 백신 접종률이 낮은 많은 나라에서는 오미크론 쓰나미(지진해일)로 병원이 환자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그러나 2020년 벽두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전염병 전문가들과 정치 지도자들은 코로나19가 엔데믹 상태로 옮겨가고 있을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CNN은 전했다.
이런 맥락에서 올 한 해 내내 과학계와 전 세계가 고민할 화두는 언제 코로나19가 엔데믹 상태에 들어가느냐가 될 것이라고 이 방송은 진단했다.
이미 덴마크와 영국, 스페인 등 유럽 일부 나라에서는 국가 방역 체계의 전제를 엔데믹으로 전환하는 듯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에든버러대학의 전염병 교수 마크 울하우스는 코로나19가 우리가 사는 평생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대신 대부분의 사람이 어린이일 때 한 차례, 또는 여러 번 감염되면서 누적된 감염을 통해 점차 면역력을 길러가는 다른 질병과 비슷해지는 시기에 궁극적으로 도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울하우스 교수는 “오미크론은 바이러스의 또 다른 1회 투약분”이라며 “그 투약분을 맞았거나 백신을 맞았기 때문에 우리는 평균적으로 질병에 덜 취약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중증도가 약한 오미크론의 특성이 중요해지는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종전의 변이들이 안겼던 것과 같은 수준의 입원·사망 위험은 안기지 않으면서 한 겹의 추가적 면역력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스코틀랜드의 연구에서는 델타와 견줬을 때 오미크론으로 입원할 위험이 3분의 2, 남아프리카공화국 연구에서는 80%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울하우스 교수는 “전 세계의 절반 이상이 이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또는 백신에 노출됐다”며 “바이러스의 관점에서 보면 게임의 규칙이 바뀌었다”고 진단했다.
과거 역사도 이런 전망을 뒷받침한다. 이전 팬데믹의 시나리오를 현 상황에 적용하는 것은 정확하게 과학적이지는 않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바이러스들은 점점 중증도가 약한 쪽으로 진화하다 결국 감기나 독감군(群)에 편입된다는 것이다.
헤이먼 교수는 “이미 엔데믹으로 전환한 4개의 다른 코로나바이러스가 있다”며 전염병의 역사를 보면 코로나19가 다섯 번째가 될 것임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일례로 1918년 터진 ‘스페인 독감’ 사태로 인류는 아주 끔찍한 ‘H1N1 독감 바이러스’를 갖게 됐고, 거의 해마다 이 바이러스의 유행을 겪는다는 것이다.
CNN은 오미크론이 코로나19의 엔데믹 단계 진입을 앞당겼다는 데 전문가들이 대체로 동의한다면서 얼마나 빨리 거기에 도달하느냐를 결정할, 유념할 조건은 다음 변이가 어떤 것이냐라고 진단했다.
앤서니 파우치 미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소장은 17일 화상회의로 진행된 세계경제포럼(WEF)의 ‘다보스 어젠다’에 참석해 “그게(오미크론 변이) 모든 이가 바라는 살아 있는 바이러스를 이용한 백신 접종이 될지는 아직 답할 수 없는 문제”라며 “왜냐하면 앞으로 출현할 새 변이와 관련해 너무 많은 가변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울하우스 교수는 많은 긍정적 조짐들이 있지만 그게 새 변이가 나타나서 사태를 악화시키지 않을 것이란 뜻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다음 변이는 오미크론을 능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그 변이가 가질 핵심 능력은 자연면역과 백신 유도 면역을 회피하는 것”이라며 “우리가 미리 알 수 없는 것은 그게 얼마나 나쁠 것이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