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주 롱아일랜드에 사는 73세 할머니 진은 지난 20일 집으로 걸려 온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그의 손자라고 밝힌 남성은 현재 음주 운전으로 구속돼 있다며 도움을 청했다. 그는 “풀려나려면 당장 보석금 8000달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진은 ‘손자’로부터 이런 다급한 전화를 받고도 침착했다. 진의 실제 손자들은 아직 어려서 운전을 하고 있지도 않았다. 24일 워싱턴포스트(WP) 등은 보이스피싱임을 직감하고 기지를 발휘한 진의 사연을 소개하며 이런 범죄에 주의를 당부했다.
진은 보이스피싱범을 속여 거꾸로 함정에 빠뜨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진은 손자를 걱정하는 척하며 수차례 전화 통화를 이어갔고, 결국 “손자의 변호사”라고 주장하는 ‘현금 수거책’을 집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진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진이 종이 다발로 채운 ‘가짜 현금 봉투’를 건네자마자 현장을 급습, 용의자를 검거했다. 경찰은 체포한 조슈아 에스트렐라 고메즈(28)를 절도 미수 혐의로 재판에 넘길 예정이다.
연방수사국(FBI)에 따르면 미국에선 매년 수백만 명의 노인들이 보이스피싱을 포함한 금융 사기 피해를 당하는데,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이런 범죄는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대면 접촉이 어려워진 틈을 타 진의 사례와 같이 가족이나 지인을 사칭하는 보이스피싱 등이 늘었다고 WP는 전했다.
FBI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한 해 60세 이상 어르신들이 보이스피싱 등 금융 사기로 입은 피해액은 30억 달러에 육박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2020년 한 해 발생한 피해액인 10억 달러의 3배에 달한다.
FBI는 보이스피싱범은 국세청(IRS) 등 정부기관이나 자선단체 사칭도 서슴지 않는다고 전했다. 실제로 2020년 7월 당시 81세였던 한 은퇴한 대학 교수가 사회보장국(SSA)을 사칭한 보이스피싱에 속아 수천 달러 피해를 봤다. 당시 피해자는 “범인들이 나의 모든 신용 정보를 꿰뚫고 있어서 나는 의심할 생각도 못했다”고 토로했다.
보이스피싱범을 잡은 진 할머니는 CBS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누군가 돈을 요구하면 반드시 경찰에 먼저 신고하라”고 말했다.
김서원 기자 kim.seow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