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렁찬 폭포 소리 들으며
한두 시간 걷기에 딱 좋아
19세기 초 건물도 이색적
요즘 한국에선 넋 놓고 그냥 있기, 즉 ‘멍 때리기’가 유행이라고 한다. 캠핑 가서 불 피워 놓고 멍하니 들여다보는 ‘불멍’, 강이나 바닷가에서 하염없이 물만 쳐다보는 ‘물멍’ 같은 것이 그것이다. 머리 비우고 휴식에 좋다고 그렇게들 한다는데 고개가 끄덕여진다. 워낙 복잡다단한 사회이니 그렇게라도 쉬어 보는 것이 나쁘지는 않겠구나 싶어서이다.
그런데 휴일이라고 누워만 있으면서 하루를 보내는 사람도 적지 않단다. 온종일 잠을 자거나 유튜브나 보면서 하루를 보낸다는 말인데, 그게 쉬는 거라고 생각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누워만 있다고 휴식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적당한 운동이나 평소 일과는 다른 대외 활동이 몸과 머리를 재충전하는 데는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그래서 걷자는 거다. 발길 닿는 대로, 마음 내키는 대로 어디든 한번은 나가 보자는 거다.
오늘 소개할 곳은 조지아 한인 밀집지역인 둘루스, 스와니, 존스크릭에서 멀지 않은 라즈웰(Roswell)이라는 동네에 있는 비커리 크리크 파크 트레일(Vickery Creek Park Trail)이다. 라즈웰은 약 9만 3000명의 인구를 가진 조지아 9번째 규모의 도시다. 백인이 약 6만명(64%)으로 가장 많고 히스패닉(15%)과 흑인(11.5%)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아시안은 5% 미만이다. 한인들도 다수 산다.
비커리크리크의 지붕 덮인 목조 다리. 나뭇잎이 있고 없고에 따라 분위기가 다르다.
비커리 크리크 파크는 지역 주민들이 즐겨 찾는 동네 공원이다. 적당한 높낮이의 언덕과 시원한 물과 폭포가 걷는 재미를 더해주고 나뭇잎이 돋아나면 이곳이 도심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숲도 깊다. 비커리 크리크는 빅 크리크(Big Creek)라고도 불리는 하천으로 포사이스 카운티에서 시작해 풀턴카운티로 들어와 이곳 라즈웰에서 채터후치강과 합쳐진다. 총길이는 26.5마일(42.6km). 원래 이름은 시더 크리크(Cedar Creek)였지만 1830년대 이후 백인들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비커리 크리크로 바뀌었다.
비커리 크리크 공원은 전체가 채터후치강 국립휴양지(Chattahoochee River National Recreation Area)에 속한다. 비커리는 원래 이 지역에 살았던 체로키 인디언 여성 샬럿 비커리(Sharlot Vickery)의 이름에서 유래됐다.
나는 지난 가을에 처음 이곳을 발견했고, 좋아서 지난 주말에 또 가서 걸었다. 트레일을 걸어보면 이곳을 특별히 기억하게 하는 3가지가 있다.
첫째는 트레일 시작 지점에 있는 라즈웰 밀(Roswell Mill) 매뉴팩처링 건물이다. 밀은 보통 방앗간이나 제분소를 말하는데 목화에서 면화를 뽑아내던 방적공장도 밀이라고 불렀다. 원래 라즈웰은 1830년대 목화 등을 재배한 플랜테이션 농장으로 개척되었는데 라즈웰 밀도 그 무렵에 세워졌다. 한때 조지아의 대표적인 방적공장이었지만 1864년 남북전쟁 때 북군의 공격으로 파괴되었다. 전후에 복구되었지만 1926년 다시 불이 나서 가동이 중단됐다. 지금은 사적지로 복원되어 있고 건물 주위엔 이런저런 야외 설치 미술품도 세워져 있다.
라즈웰 밀 방적공장 건물
두 번째는 비커리 크리크를 가로지르는 지붕 달린 다리다. 트레일은 이 다리를 건너 가파른 나무 계단을 올라가면서 시작된다. 나뭇잎이 무성한 여름은 물론 요즘 같은 겨울에도 주변 경치가 썩 좋다. 사진 찍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촬영 장소로 인기다.
세 번째는 폭포다. 자연폭포는 아니고 라즈웰 밀에 전력 공급을 위해 만들어진 댐에서 흘러내리는 인공폭포다. 그다지 낙차가 큰 폭포는 아니지만 사시사철 수량이 많아 멀리 숲속에서도 우렁찬 폭포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비커리 크리크 인공폭포. 평소엔 맑은 물이, 비가 온 직후엔 흙탕물이 흘러 내린다.
트레일은 2.5마일, 3.4마일 4.7마일, 5마일 등 안내 웹사이트마다 다양하게 나와 있다. 어떤 코스를 걷든 제자리로 돌아오는 순환 등산로(loop)라서 길 잃을 염려는 없다. 다만 계곡 아래로 내려가 하천 옆을 따라 걷는 코스를 선택할 때는 나름 경사가 급하고 비 온 뒤에는 물살이 세서 위험할 수도 있으니 주의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주차장은 라즈웰 도심을 지나는 두 개의 큰길 애틀랜타 스트릿(GA-9)과 마리에타 하이웨이(GA-120)가 만나는 사거리 안쪽 깊숙이 들어간 곳에 있다.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구글맵에 Vickery Creek Falls Roswell Mill을 치거나 내비게이션에 주소(95 Mill St. Roswell, GA)를 입력해 찾아가는 게 좋다. 입장료는 없다.
트레일 주차장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유명 커피숍(Land Of A Thousand Hills Coffee / 352 S Atlanta St, Roswell)이 있어 들러볼 만하다.
라즈웰의 유명 커피숍. 간단한 브런치도 먹을 수 있어 하이킹 후 들러볼 만하다.
또 배링턴 홀(Barrington Hall /.주소 535 Barring Dr. Roswell)이라는 사적지도 가까이 있다.
이 집은 배링턴 킹이라는 1838년에 지어 살았던 집인데 고풍스러운 건물과 정원, 옛 농장 잔해들을 볼 수 있다. 배링턴 킹은 아버지 라즈웰 킹(Roswell King)과 함께 초창기 라즈웰을 개척한 사람이다. 라즈웰이라는 시 이름도 그의 아버지 이름에서 왔다.
트레일 인근에 있는 사적지 배링턴 홀. 1930년대 라즈웰 시의 설립자가 지은 집이다.
글·사진=이종호 기자 lee.jongho@korea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