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난리 때, 하늘 나는 잠자리 비행기, 불 총알 퍼붓는 전투기, 폭탄 떨어트리는 폭격기, 높이 나는 B-29를 보았다. 쎄에앵 쾅 터지던 포탄 소리도 들었다. 마을을 점령했던 인민 군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땅을 흔드는 탱크들과 함께 유엔군들이 마을에 들어왔다. 장승 같이 키가 크고, 피부색깔이 희고 머리가 노란 백인을 처음 본 것은 6·25 난리 때 충청도 산골에서였다.
구호물자로 온 밀가루, 옥수수, 알랑미, 가루우유가 배고픈 보릿고개 넘는데 도움이 되었다. 구호물자로 온 중고 신발, 바지, 코트는 횡재였다. 백색인종은 우수해 보였다. 영어를 배우고, 서양문물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인들이 우리 황인종 보다 발전된 문명을 누리며 사는 것은 분명했다. 우수한 무기와 군대, 구호물자, 민주주의, 기술과 지식, 국가적인 경쟁력, 국민들의 경제능력이 증명했다. 백색인종은 황인종이나 흑인종 보다 선천적으로 우수한 민족일까?
미국 유학 와서 백인 학생들 속에서 공부를 해 보니, 백인들이라고 황인종 보다 더 우수한 것 같지는 않았다. 영어 소통능력과 문화적인 경험 차이가 그들을 따라가려는 나를 힘들게 했으나, 백인 들이 선천적으로 우수하지는 않은 것 같기도 했다.
동양 아이들이 공립 학교를 다닐 때, 백인 중심의 학교에서 학과 성적도 우수하고 사회활동도 잘 하고, 다양한 체육부문에서도 잘하는 모습을 보면서 백인 이라고 선천적으로 우수한 것은 아니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런데 왜 유럽이 아시아 보다 문명이 앞장 섰을까?
“강제 혁신” 이라는 제목의 EBS 다큐멘터리를 보는데, “유럽이 동양보다 문명이 먼저 발달된 이유는 유럽에서는 16세기 이후 끊임없이 계속된 전쟁 탓입니다. 원하지 않았지만, 끊이지 않은 이웃나라의 침범이 혁신을 거듭하게 만들었습니다” 라고 유럽 명문 대학 교수들이 설명했다. ‘계속 뛰어야 제자리에 머물고, 앞서려면 몇 배로 더 뛰어야 한다’는 ‘붉은 여왕의 가설’이 유럽에서는 끊이지 않는 전쟁을 통해 강요당해서 결과적으로 유럽이 동양 보다 문명이 앞장서게 한 원인이라고 설명한다. 붉은 여왕은 ‘거울나라의 앨리스’ 라는 동화 속에 나오는 인물이다.
이야기의 핵심은 동아시아에서는 중국의 청 왕조가 1636부터 근 300년 동안 동 아시아를 지배하며, 많은 군대로 변방의 도전을 물리칠 수 있었기에, 처음으로 시도했던 화약무기도 무시되고, 탐관오리들이 아편전쟁에 빠졌다. 엇비슷한 44개 나라로 이루어진 유럽에서는 16세기 이후 빨리 다시 장전되는 총, 대포, 이동이 편리한 작은 대포, 대포 알이 떨어져 폭발하는 포탄, 이동 수단, 통신 수단 등 계속적인 진화가 여러 국가간의 승패의 열쇠가 됐고, 전쟁이 민족간의 창의성을 발휘할 동기와 기회를 만들었고, 일단 유효하면 다른 나라로 널리 퍼져, 모두가 이득을 볼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유럽은 문명이 동양보다 발전되었다는 이야기다.
“GPS 얼마나 편해요? 그것도 군대에서 나왔어요. 캠핑 할 때 불 없이 요리하는 야불면밥, 여행, 등산, 낚시 가서도 불 없이 요리할 수 있는 발열 팩 기술, 전부 군대에서 나왔어요.” 등산길을 걸으며, 잦은 전쟁 덕으로 유럽이 동양보다 문명이 앞섰다는 이야기를 할 때 닥터 K가 말했다.
“황소처럼 일만 하셔도/ 살림살이는 마냥 그 자리/ 우리 엄마 고생시키는/ 아버지 원망했어요.” 막걸리 한잔 이라는 노랫말의 일부다. 서민들이 아무리 뛰어도 사는 형편은 제자리라는 사실이 붉은 여왕의 가설을 증명 하는 것 같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자”라고 부르짖고 남보다 몇 배 더 투자하고 연구한 반도체 산업을 성공시킨 이건희 회장 덕에 오늘 날 삼성전자가 세계 경쟁에서 앞장 선 사실도 남보다 앞서려면 몇 배로 뛰어야 한다는 붉은 여왕의 가설로 설명할 수 있는 것 같다.
은퇴한 나도 계속 움직여야 건강을 유지 할 수 있고, 탁구나 골프도 즐길 정도로 실력을 유지하려면 계속 연습해야 하고, 빨리 변하는 생활환경 속에서 핸드폰이며 인터넷 등 새로운 것들도 배우려고 노력해야 변하는 세상에 적응 할 수 있다고 붉은 여왕의 가설이 속삭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