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는 도도하면서도 세련된 명품도시다. 명품점이 많기도 하거니와 브레라 미술관,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미켈란젤로의 론다니니 피에타 그리고 스칼라 극장도 바로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한 오페라는 로시니의 시금석과 터키인, 벨리니의 해적과 노르마, 도니제티의 루크레치아 보르자와 마리아 스투아르다, 베르디의 나부코와 오텔로, 푸치니의 나비부인과 투란도트 등 무려 40여 작품에 이른다. 티켓 구하기도 힘들고 정장을 하지 않으면 입장하기도 껄끄럽지만 오페라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티켓을 구입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일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멋진 추억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스칼라 극장은 이탈리아 최고의 오페라 극장이다
스칼라 광장에 세워진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동상
아케이드 형식의 고풍스러운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에는 베르사체를 비롯해 루이비통, 프라다, 브릭스, 구찌 등의 명품점들로 가득 차있다. 갤러리아 바닥에는 통일 이탈리아의 주축이 된 도시들을 기념하는 모자이크가 그려져 있다.
붉은 십자가가 그려져 있는 모자이크는 밀라노를 상징한다. 그리고 황소는 토리노, 백합은 피렌체, 늑대는 로마를 상징한다. 그러나 황소 모자이크가 그려져 있는 토리노 모자이크에 사람들이 몰린다. 황소 생식기에 발뒤꿈치를 대고 세 번을 돌면 행운이 온다는 믿음 때문이다.
밀라노를 상징하는 붉은 십자가 모자이크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
사람들은 황소 모자이크가 있는 곳에서 발을 생식기에 대고 세 번 돈다
갤러리아를 빠져 나오면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동상이 세워져 있는 두오모 광장이 나온다. 마침 특별한 행사가 있는지 알페호른을 부는 스위스 사람들이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알페호른은 길이 2m 가 넘는 알프스 목동들의 전통악기다. 전통 복장으로 백파이프와 북 연주를 하는 스코틀랜드 밴드의 모습도 보인다. 흰구두 빨간 복장의 고적대도 눈에 띄었다.
두오모 광장 앞에서 알페호른을 부는 스위스 사람들
이탈리아의 큰도시에는 모두 두오모라 부르는 대성당이 있다. 두오모는 신의 집(Domus)이란 뜻이다. 밀라노 대성당은 밀라노의 수호성인인 성 암브로시오 예배당에서 부터 시작됐다. 암브로시오는 지방 총독에서 주교가 된 후에는 재산을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 인물이다. 그는 카톨릭 성가를 작곡하고 미사를 집전했으며 늘 어려운 사람들을 도운 훌륭한 성품의 주교였다.
390년에는 테오도시우스 황제에게 데살로니카 대학살에 대한 참회를 요구하여 무릎꿇게 한 사건은 유명하다. 1386년 부터 안토니오 다 살루초에 의해 새로 짓기 시작한 대성당은 1965년이 되어서야 모두 완공됐다. 당시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건축가, 수학자, 화가들이 모여 대성당을 건축할 계획을 세웠는데 프랑스 건축가들은 프랑스 방식의 고딕 표준방식을, 독일 건축가들은 첨탑을 이용한 외관상의 높이를, 이탈리아 건축가들은 정사각형의 광활한 공간과 고전적 개념의 거대한 공간을 주장했다. 이렇게 하여 세 가지 주장이 혼재된 거대한 대성당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대성당 탐방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붕 전망대로 올라 가면서 부터 시작된다. 계단을 통해 지붕에 오르려면 201개의 계단을 걸어 올라야 한다. 첨탑 135개. 조각상 3,159개, 가고일 96개의 화려함과 섬세함, 웅장함은 정말 대단한 것이다. 수많은 첨탑 중 109m로 가장 높이 세워져 있는 첨탑은 1774년에 세운 마돈니나상이다. 마돈니나는 조각가 페레고가 구리로 제작한 조각에 금세공업자 비니가 3,900개의 금박 조각을 입혀 제작했다.
1774년, 109m 높이로 세운 황금의 작은 마리아 상(Madonnina)
전망대에서 바라 보는 두오모 옥상과 밀라노 시내의 풍경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두오모 옥상과 밀라노 시내의 풍경
이탈리아는 어디를 가나 대리석 투성이인데 대성당 또한 옥상과 벽 등 건축물 전체가 대리석이다. 대리석의 무게는 모두 합하면 325,000톤이나 된다. 전망대에서는 밀라노 시내는 물론 두오모 광장, 에마누엘레 2세 갤러리아 건물 등이 모두 한 눈에 보인다. 대성당 지하에 위치해 있는 박물관에는 5세기부터 17세기에 이르는 대성당의 성물들이 전시돼 있다. 그 중에는 8세기에 만들어진 고토프레도 대주교의 거룩한 물 양동이, 5세기경 라벤나에서 상아로 만든 두폭 성상화, 13세기 베네치아의 공방에서 제작한 키아라발레와 태피스트리 등 굉장한 보물들이 전시돼 있다.
52개의 거대한 기둥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 웅장한 대성당 내부
대성당 예배당은 거대한 52개의 기둥들이 숲을 이루고 있어 입장하면 그 웅장함에 압도당한다. 스테인드글라스는 14세기 후반부터 19세기에 이르기 까지 여러 장인들에 의해 제작된 것이다. 그 중에서도 조반니 바티스타 베르티니와 그의 아들이 만든 스테인드글라스는 더욱 섬세하고 아름답다. 대성당 내부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작품은 마르코 다그라테가 1562년에 제작한 바르톨로메오 조각상이다. 왼손에는 성경책을 들고 어깨에는 ‘스톨’을 두르고 있다.
황금전설에 따르면 그는 귀신들린 왕의 딸을 치료하여 인도의 왕 폴레미우스와 그의 전 가족을 개종시켰다고 한다. 이에 왕의 형 아스티아제가 군대를 보내 그를 체포하고 고문을 한다. 그리고는 칼로 그의 살가죽을 모두 벗겨 버리고 머리를 아래로 하여 십자가에 매달았다. 바르톨로메오는 원래 머리칼이 검고 눈은 컸으며 턱수염이 무성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조각상에는 턱수염과 머리카락은 보이지 않고 해부학적 인체 형상만 표현됐다. 벗겨진 살가죽이 바로 그가 두르고 있는 스톨이다. 바르톨로메오는 요한복음(1장 45절)에 나오는 나타나엘과 동일한 인물이다. 동상은 처음 보면 섬뜩하지만 처절할 만큼 아름다운 조각품이다.
마르코 다그라테가 1562년에 제작한 바르톨로메오 조각상과 관람객들
브레라 미술관은 원래 카톨릭 예수회 소속의 수도원이었다. 그러던 것을 오스트리아 점령시대인 1776년 마리아 테레사가 브레라 미술대학을 설립했다. 미술대학은 현재 브레라 궁의 1층 전체를 사용한다. 유럽에서는 3대 미술대학 중 하나로 꼽히는 명문대학이다.
미술관은 1809년 8월 15일, 자신의 생일에 맞춰 이곳을 점령했던 나폴레옹이 세운 것이다. 그는 이곳에 제2의 루브르를 만들겠다고 하며 압수한 이탈리아 미술품들을 모아 브레라 미술관을 세운 것이다. 그래서 미술관 정원에는 안토니오 카노바가 조각한 나폴레옹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미술관이 위치해 있는 곳은 브레라 궁의 38개 전시관이 갖추어져 있는 2층 건물이다.
브레라 미술관의 명작으로는 라파엘로의 “성모의 결혼”, 안드레아 만테냐의 “죽은 그리스도”, 카라바지오의 “엠마오에서의 저녁식사”, 틴토레토의 “성 마르코의 유해 발견”, 조반니 벨리니의 “피에타”, 젠틸레 벨리니와 조반니 벨리니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설교하는 성 마르코”, 프란체스코 하예즈의 “키스” 등 600여 작품이 있다. 특히 하예즈의 키스는 이탈리아인들이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입맞춤이라고 생각하는 멋진 작품이다.
왼쪽 붉은 벽돌 건물이 브레라 박물관이다
브레라 미술관 광장이 나폴레옹 동상과 브레라 미술관 대학생들
브레라 미술관, 라파엘로의 성모의 결혼 (The Marriage of the Virgin, 1504)
프란체스코 하예즈(Francesco Hayez)의 입맞춤(Il bacio, 1859) = 브레라 미술관
밀라노에서 반드시 방문해야 할 장소로는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이 있다.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전시돼 있는 곳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사전 예약을 하지 않으면 들어 가기 힘들다. 입장하는데 20명만 안내원과 함께 전시관으로 입장하여 단 15분 동안만 작품을 감상하기 때문이다. 물론 사진촬영도 할 수 없다. 예약은 인터넷으로 할 수 있지만 이것 또한 쉽지 않다. 한 두 달 후 티켓은 말할 것도 없고 6개월 또는 8개월 후 티켓을 구입하는 것도 어럽다. 가장 좋은 방법은 전화로 예약하는 방법이다. 가고 싶은 날짜와 입장 시간이 유동적이면 한 두 달 전 티켓도 구할 수 있다. 예약은 이탈리아어나 영어로 해야 하며 인내심을 갖고 한참 기다려야 한다.
최후의 만찬은 높이 15피트, 너비 29피트에 달하는 대형 벽화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 버릴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이때 식탁에서 각각 다르게 반응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그린 것이 바로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이다. 그는 생생한 모습을 그리기 위해 밀라노 시내를 돌아 다니며 인물을 찾고 스케치북에 옮겼다고 한다.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신비롭고 성스러우며 기념비적인 작품이라는 평가는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틴토레토, 기를란다요 등 수많은 화가들도 최후의 만찬을 그렸지만 다빈치의 작품과는 비교하지 않는다. 최후의 만찬은 관람객 모두가 가슴을 떨며 바라 보는 감동의 작품이다.
최후의 만찬을 관람하기 전 사진 앞에서 작품 설명을 하는 가이드.
*여행팁: 최후의 만찬 전화 예약: +39 02 92800360
글, 사진 / 곽노은 여행작가
30년간 수십차례 유럽을 여행하며 유럽의 골목 구석까지 한눈에 꿰고 있는 유럽 여행의 구루. 20년간 워싱턴 중앙일보에 여행 칼럼을 기고했고 유럽 배낭여행 강좌와 원격 화상 강좌를 통해 미주 한인들을 위한 유럽 여행 전도사로 활약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