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인디언 삶의 자취 뚜렷
농사·천체 관측 흔적도 신기
소노라 사막박물관 가볼 만
카사그란데 유적지
# 애리조나에는 아메리칸 원주민, 즉 인디언 유적이 많다. 필자는 한때 인디언 문화에 심취하여 애리조나를 비롯해 콜로라도, 유타주 등 인디언 유적 있는 곳이면 아무리 멀어도 수없이 드나들던 때가 있었다. 인디언들이 살았던 당시에는 네 땅 내 땅이 구분이 없었으니 아무나 먼저 차지하면 내 집이요 내 영역이었다. 반면 법도 없고 규칙도 없고 힘만 있으면 싸워서 몰아내면 또 내 것이 되니 부족 간 분쟁도 끊일 날이 없었던 모양이다.
애리조나 사막 계곡 바위틈 곳곳엔 인디언들이 살았던 흔적들이 남아 있다. 사람이나 짐승이 접근하기조차 어려운 벼랑 위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50개 주 가운데 4개 주 모서리 귀가 맞닿아 있는 포 코너스(4 coners)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을 중심으로 인디언 유적이 집중적으로 몰려 있다. 메사 버디(Mesa Verde), 월넛캐년(Walnut Canyon), 몬테주마(Montezuma), 톤토(Tonto), 엘모로(El Moro) 등이 모두 이 지역의 유명한 인디언 유적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곳이 카사그란데(Casa Grande National Monument)이다. 카사그란데라는 말은 스페인어로 큰 집이라는 뜻이다.
애리조나 사막에 있는 인디언 원주민 유적지 중의 하나인 카사그란데. 이 집터 발굴로 아메리칸 원주민들이 기원전 벌써 천체를 연구하고 농사까지 지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애리조나주 피닉스와 투산 사이에 있는 이곳은 사막 속 평지에 2층 구조로 된 주거지라는 점에서 벼랑이나 바위틈에 남아 있는 유적지와 차이가 있다. 그것도 기원전 AD 300년경에 만들어졌다고 하니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다. 이곳 인디언들이 농사를 지은 흔적이 남아있는 것도 놀랍다. 그들은 메마른 사막에 수로를 만들어 멀리서 물을 끌어와 옥수수, 콩을 재배했을 뿐 아니라 조림사업까지 했다. 또한 정교한 무늬의 토기와 방석 및 생활 용기들을 만들어 인근에 사는 다른 부족들과 물물교환으로 통상까지 했다고 한다.
카사그란데 건물 벽은 모두 찰흙을 짓이겨 지었는데 밑 부분 벽 두께는 무려 5피트, 맨 윗부분은 3피트 정도다. 중앙에는 굵은 원목 위에 팔뚝 굵기의 원목들을 철근 대용으로 일렬로 판판하게 깔아 놓고 그 위에 찰흙을 발랐다. 2층 바닥 중앙에는 사방 2자 정도 되는 4각 구멍을 내고 사다리를 통해 사람들이 오르내리게 하였다.
더 신기한 것은 남쪽 벽면에 주먹 크기의 동그란 구멍인데 이 구멍 속으로 들어오는 햇살로 시간을 측정했다고 한다. 또 다른 구멍으로는 해와 달의 움직임을 살펴 낮과 밤 또는 계절을 알아냈다고 한다. 신라 시대 경주 첨성대나 조선 시대 해시계에 비하면 이들은 훨씬 더 오래전인 기원전에 이미 해와 달 또는 천체를 관찰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아직 카사그란데의 주인공이 어떤 부족이었는지 여전히 알 수 없다는 점은 아쉽다.
평지에 우뚝 세워진 카사그란데는 상부는 무구한 세월에 훼손이 많이 되었지만 그나마 아직 원형을 볼 수 있어 참으로 다행이다. 지금은 네 귀에 굵은 쇠파이프로 기둥을 세워 지붕을 설치하고 비바람을 막아 더 이상의 풍화침식을 막고 있다. ▶주소: 1100 W. Ruins Dr. Coolidge, AZ 85128
소노라 사막 박물관
# 애리조나 남부 투산에 있는 애리조나-소노라 사막 박물관(Arizona-Sonora Desert Museum)에서도 옛날 인디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1952년에 개관한 이곳은 카사그란데에서는 약 70마일 남쪽에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의식주 세 가지는 꼭 필요하다. 그런데 더위와 추위가 극심한 사막에서 인디언들이 어떻게 의식주를 해결하며 살았는지 참으로 궁금했는데 이곳에 가면 그 궁금증이 다소 풀린다.
이곳은 또 사막의 자연과 역사뿐 아니라 동물원과 식물원까지 있어 애리조나의 야생을 경험하기에도 좋다. 300여종의 동물들이 있는 동물원은 물론 98에이커의 방대한 면적의 식물원도 신기하다. 약 2마일의 트레일을 걸으며 인디언들의 암각화 및 각종 신기한 동식물들을 감상하노라면 사막의 뜨거운 태양열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규모가 작지만, 동굴도 있다. 석순과 종유석들이 그런대로 볼만하고 동굴 속에 살았던 인디언들의 흔적도 남아있다. 연 50만명이 찾는다는 이곳은 사막 한복판이라 여름에는 기온이 상당히 높다. 그늘도 없기 때문에 선크림을 꼭 바르고 음료수도 필히 준비해야 한다.
필자가 방문했을 때도 여름이었는데 선인장 사이 산책로를 따라 나이 지긋한 미국인 노부부가 손을 잡고 정담을 나누는 모습이 참으로 좋아 보였다. 여름 날씨와 나이 먹은 노인의 건강은 믿을 수가 없다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인생 말년에 저렇게만 살아도 얼마나 좋을까 싶다.
▶주소 : 2021 N. Kinney Rd. Tucson, AZ 85743
글, 사진 / 김평식 여행 등산 전문가
미주 중앙일보를 비롯한 다수의 미디어에 여행 칼럼을 집필했으며 ‘미국 50개주 최고봉에 서다’ ‘여기가 진짜 미국이다’ 등의 저서가 있다. 연락처 (213)736-90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