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화강암 바위 유명
호수 낀 둘레길은 ‘숨은 보석’
암벽 부조상 철거 시비 계속
#. 조지아 사니까 타주서 방문하는 지인들이 종종 있다. 그럴 때마다 제일 먼저 데려가는 곳이 스톤마운틴이다. 세어보니 2021년 한 해 동안 일곱 번을 갔다. 두 번은 혼자 둘레를 걸었고 다섯 번은 지인과 함께 갔다. 바위산 정상은 네 번 올랐다. 세 번은 걸어서, 한 번은 케이블카를 탔다. 자주 갔지만, 조금도 지겹다거나 싫증 나지 않았다. 오히려 갈 때마다 몰랐던 매력을 발견한 곳이 스톤마운틴이었다.
지난해 여름 캘리포니아서 은퇴 후 캠핑카(RV)로 전국을 유람하던 선배 부부가 와서 스톤마운틴 둘레길을 함께 걸었다. 선배가 말했다.
“자넨 복 받았어. 이렇게 좋은 곳에 매일 올 수 있다니.”
“저도 좋지만 애틀랜타 사람들이 다 복 받은 거죠.”
“내가 미국 도시 웬만한 곳은 다 다녀봤잖아. 이런 데 없어. 실컷 즐기라고”
부러움 섞인 칭찬이었다. 듣는 나로서는 우쭐해지는 기쁨이었다.
정상에 오르는 마지막 난코스. 가파른 암벽을 지지대를 잡고 올라야 한다.
스톤마운틴은 이름 그대로 돌산이다. 단일 암석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화강암이라고 한다. 정상 높이는 해발 1686피트(513m). 해발은 높지만 실제 걸어 올라가는 거리 (elevation gain)는 700피트(210m)로 서울의 남산보다 조금 낮다.
정상에 이르는 길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사우스우드 게이트 쪽 주차장에서 출발하면 직선 편도 1마일이다. 씩씩하게 걸으면 30분, 느릿느릿 가도 40~50분이면 올라갈 수 있다. 그렇다고 만만히 볼 것은 아니다. 해발 높이가 애틀랜타 일대에선 1808피트의 케네소마운틴 다음으로 높다. 난이도로 치면 케네소마운틴보다 오히려 가파르다. 특히 마지막 10분은 거의 깔딱 고개 암벽타기 수준이다.
그 고비를 넘기고 정상에서 이르는 순간 감동은 몇 배로 치솟는다. 아~ 저절로 탄성이 나온다. 사방팔방 시야에 걸리는 게 없다. 모든 게 발아래이고 내려다보이는 것은 온통 숲이다. 애틀랜타가 미국의 허파라더니 정말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한다. 아마존 열대우림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이런 풍경이 아닐까 싶다.
스톤마운틴의 봄. 바위틈에 노란 꽃이 피어 있다.
매년 1월 1일 새벽이면 부지런한 한인들은 이곳에 올라 새해 첫해를 맞는다고 들었다. 조지아 생활 2년 차인 나는 아직 해맞이 감격은 누리지 못했다. 대신 해넘이는 보았다. 타주에서 출장 온 후배와 늦은 등산을 했을 때였다. 마침 서쪽 하늘 멀리 애틀랜타 다운타운 스카이라인 너머로 해가 지고 있었다. 하늘은 온통 황금빛이었고 1초 1초 단위로 떨어지는 태양은 눈물겹도록 황홀했다. 그 장엄하고 숙연한 광경 앞에 모두가 숨을 죽였다. 우리 옛 선조들, 산천경개 빼어난 곳이면 어디든 무슨 무슨 팔경(八景)이라 이름 붙여 노래하고 칭송했다. 누가 나에게 애틀랜타 팔경을 꼽으라 한다면 단연 이곳 ‘스톤마운틴 일몰’을 제 1경(第一景)으로 꼽을 것 같다.
#. 스톤마운틴 하면 거대한 바위만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진짜 매력은 둘레길에 있다. 우뚝 솟은 바위산을 가운데 두고 숲속을 삥 둘러가며 트레일이 뻗어 있다. 걷기의 기본은 체로키 트레일, 5.5마일 코스다. 주변 갈래 길을 다 합쳐 산 둘레를 한 바퀴 돌면 7마일이다. 2시간 반 정도면 걸을 수 있다. 그중 거의 3분의 1은 호수를 끼고 돈다. 호수에 비친 스톤마운틴은 한 폭의 한 폭의 그림이다. 정겨운 물레방아나 호수 안의 섬으로 연결되는 목조 지붕 다리도 놓치지 말아야 할 사진 촬영 포인트다.
스톤마운틴 둘레에 크고 작은 호수들이 있다.
스톤마운틴 둘레길에 있는 물레방아. 방문객들이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스톤마운틴은 세계 최대 화강암 타이틀 외에 또 하나의 세계 1등이 있다. 북쪽 암벽 중간쯤에 새겨진 거대한 승마 인물 부조상이 그것이다. 남북전쟁 당시 남부연합 대통령이었던 제퍼슨 데이비스, 총사령관 로버트 리 장군, 그리고 남부군 전설의 명장 스톤월 잭슨 장군 세 사람이 말을 타고 가는 모습이다. 사우스다코다 주 러시모어 산에는 큰 바위 얼굴로 불리는 바위에 새긴 거대한 조각이 있다.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에이브러햄 링컨,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얼굴 조각인데 북부 미국인들의 성지처럼 여겨지는 곳이다. 남부 스톤마운틴 부조상은 그것보다 더 넓고 크다.
이 부조상이 스톤마운틴에 새겨진 이유가 있다. 원래 이곳은 KKK 등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본거지였다. 그들은 남부연합의 패배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어떤 식으로든 흔적을 남기고 싶어 했다. 버지니아, 캐롤라이나, 조지아 등 남부연합에 가담했던 주 곳곳에 남부연합 지도자들의 동상이 세워지고 기념공원이 세워진 이유다. 스톤마운틴 부조상도 그렇게 기획됐다.
스톤마운틴의 승마인물 부조상. 세계 최대 화강암 벽면에 새겨진 세계 최대 크기의 부조상이다.
1914년부터 모금이 시작됐고 이듬해부터 바로 작업이 개시됐다. 순조롭지는 않았다. 58년이나 흐른 뒤인 1972년에야 최종 완성을 보았다.
그로부터 또 50년이 지났다. 세상은 더 달라졌다. 지금 스톤마운틴 부조상은 끊임없는 철거 시비에 부딪히고 있다. 주인공들이 흑인 노예제도를 지지한 인종차별주의자들이었다는 것이 이유다.
리치먼드에 100년 이상 서 있던 스톤월 잭슨 장군 동상은 이미 2020년 여름에 철거됐다.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여파로 반인종차별 운동이 들불처럼 확산하면서다.
남부 주요 도시마다 세워져 있던 로버트 리 장군, 데이비스 대통령의 동상이나 기념물 역시 같은 이유로 철거되거나 박물관으로 옮겨지고 있다.
스톤마운틴 부조상은 아직은 보존 쪽에 무게가 실려 있다. 하지만 못 믿을 게 사람 마음이다. 지금 옳다고 믿는 것들이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른다. 오늘 틀렸다며 손가락질하는 것도 계속 그러리라는 보장이 없다. 무서운 게 민심이고 무상한 게 세월이다.
여담이지만 남북전쟁 초기인 1861년 7월 남부 수도 버지니아주 리치먼드는 북군에게 함락 직전이었다. 그때 등장한 인물이 토머스 조너선 잭슨(1824~1863)이다. 그는 파죽지세로 진군해 온 북군을 격퇴해 리치먼드를 지켜냈다.
잭슨 장군이 버티고 있는 한 북군의 승리는 없었다. 넘을 수 없는 요새 같은바위벽, 스톤월(Stonewall)이라는 별명은 그래서 붙여졌다.
잭슨은 일요일에는 전투하는 것도 꺼렸을 정도로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면서 흑인 노예도 똑같이 교실에 들어와 수업을 받게 한 사람 역시 그였다.
하지만 그는 1863년 39세로 요절했다. 같은 남군의 오인 사격에 왼팔을 잃고 얻은 합병증 때문이었다. 그가 조금만 더 살았다면 남북전쟁의 승패는 달라졌을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총사령관 로버트 리 장군은 그의 사망 소식에 “잭슨은 왼팔을 잃었지만 나는 오른팔을 잃었다”며 탄식했다는 얘기가 전한다.
#. 메모
스톤마운틴은 둘루스 한인타운에서 차로 30분 정도 거리에 있다. 공원 하루 입장료는 차량 1대당 20달러. 1년 내내 무제한 드나들 수 있는 1년 입장권은 40달러다. 정상을 오르내리는 케이블카도 있다.
1인당 왕복 19달러. 캠핑, 낚시, 바비큐 가능하고 골프코스도 2개가 있다. 주말 공원을 한 바퀴 도는 순환 열차도 인기다. ▶주소 : 1000 Robert E. Lee Blvd, Stone Mountain, GA 30083
이종호 기자 lee.jongho@koreadaily.com
스톤마운틴 공원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