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선한 세상이 내 집안에 들어왔다. 잔잔한 호수에 던져진 돌이 일으키는 파문처럼 남편이 당한 사이버 사기의 영향이 천파만파로 번지면서 뒤처리 하느라 정신없이 바쁘다. 사이버 사기나 인터넷 범죄에 대한 기사를 볼 적마다 그것은 산너머 동네의 일로 봤다가 막상 우리가 당하며 코믹한 쇼를 벌리니 화도 나지만 마음이 아프다.
믿을 만한 기업이 보낸 이메일에 질문을 가진 남편이 메시지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했다. 그리고 피싱의 표적이 됐다. 여러 경고 사인이 붉은 불로 반짝였지만 남편은 인지하지 못하고 사기꾼에게 훔쳐가라고 문을 활짝 열어줬다. 나중에 남편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은 사기이니 당장 연락을 끊어라” 해도 남편은 내 말을 믿지 않고 사기꾼에게 컴퓨터를 열어놓고 전화를 계속했다.
나 혼자서 고집스런 남편을 막을 수가 없어서 딸들에게 바로 SOS 보냈다. 딸들과 사위들이 뛰어들어 남편에게 전화한 것을 남편은 묵살했다. 특히 큰사위는 사이버 보안 분야를 공부해서 박사학위까지 받은 전문가인데 단번에 사기를 막으라고 했다. 남편이 컴퓨터를 열어놓고 사기꾼과 대화하는 것을 스톱시키려고 큰사위가 일러준대로 나는 집 밖에 있는 전원을 껐다. 그리고 사위가 연락해서 보내준 경찰과 함께 집안으로 들어가니 정전의 이유를 찾던 남편은 마침내 사기꾼과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내 설명을 들은 경찰이 “당신 명백히 사기당했소” 하니 남편은 당황했다.
그때부터 남편의 컴퓨터는 동면에 들어갔고 와이파이도 불통이 됐다. 남편의 컴퓨터에 있던 모든 개인정보와 은행계좌들이 노출됐고 빠르게 여러 은행에서 많은 돈이 인출됐다. 빠져나간 돈의 전자송금을 스톱 시키고 사기로 신고했다. 애틀란타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둘째 사위가 달려와서 사고 수습에 들어갔다. 재빨리 보안 안전 장치를 이것저것 설치하고 우리가 계좌를 가지고 있는 은행마다 전화해서 사기신고와 동시에 개인정보와 계좌를 보호하는 대처를 해줬다. 사위는 이틀 동안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한 분야까지 세밀하게 챙겨주고 마치 숙제를 내어주듯이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일일이 지적해서 적어주고 갔다. 전혀 예기치 못한 일로 사위들 덕을 보면서 민망했지만 발벗고 나서서 도와준 것에 고마웠다.
큰딸의 제의로 두 딸네 부부와 화상으로 가족회의를 열었다. 사위들이 보안 개념이 약한 남편에게 전반적인 주의 교육을 시켰고 이어서 딸들이 엄격한 훈계를 했다. 놀라서 입을 꽉 닫은 내 옆에서 귀를 의심한 남편이 뭐라 했는지 되물었다가 똑 같은 설교를 듣자 얼굴이 붉어졌다. 나이 탓으로 판단력이 흐려졌지만 아직 자신의 능력을 믿는 그는 치명타를 받았다. 그 순간 남편을 보면서 어떤 비애가 느껴졌다. 그리고 나이든 부모의 허약한 마음을 다독여 주는 기술이 없는 딸들에게 섭섭했다.
여러 은행의 계좌는 사기 조사가 끝날 때까지 동결시켰고 새로운 계좌를 열고 모든 자동 입금이나 요금 자동 납부도 일일이 다 챙겼다. 다중인증 설정도 강화시키고 비밀번호도 모두 바꿨다. IP주소나 와이파이 아이디도 바꾸고 해킹당한 컴퓨터는 IT숍에 가서 사기꾼이 몰래 집어넣은 멀웨어를 다 청소했지만 기분이 깔끔하지 않아서 남편은 새 컴퓨터를 샀다. 위기를 관리하는 절차는 시간이 걸리지만 차근차근 정리가 된다. 하지만 앞으로 계속 뒤를 돌아 보아야 하니 신경이 쓰인다.
슬프고 불편한 진실은 사기꾼의 간교한 술수보다 그것을 알아채지 못한 순진한 남편이다. 여러 은행에서 돈이 인출되었어도 남편은 자신이 바보처럼 사기 당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잘못은 그저 “사람을 믿은 죄밖에 없다”고 큰소리 친다. 나이 드는 것도 서러운데 불안하게 살아야하고 또한 앞으로 자식들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니 나는 슬그머니 남편의 손을 잡는다.
어디선가 본 사인이 내 마음에 있다. “사람들에게서 가장 좋은 점을 보는 눈을 가지고, 최악의 점을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쁜 점을 잊는 마음을 가지고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는 영혼을 가지길 항상 기도하세요.” 작자미상의 이 문구가 휘청거리는 나를 잡아준다. 그리고 남편이 당한 사기를 널리 알리는 것은 창피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피해자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