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정계와 법조계의 화제는 연방대법원에서 벌어지는 낙태권 전쟁이다. 한인사회에는 관심이 덜하지만 미국 사회에서 볼 때는 나라의 뿌리를 뒤흔드는 보수, 진보 대립 전쟁이다.
소송의 경과는 이러하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1973년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례를 통해 여성들에게 임신 중기까지 낙태권을 보장하게 되었다. 즉 태아가 자궁 밖에서 생존할 수 있는 임신 22∼24주 이전에는 낙태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가톨릭, 기독교, 보수 단체 등은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며 낙태를 허용해서는 안된다는 법정투쟁을 계속해왔다. 진보 단체는 여성에게 낙태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줘야 하며, 낙태를 불법화하면 불법낙태시술 등이 오히려 성행하여 여성의 목숨이 위태로와진다고 주장해왔다. 따라서 미국 정치권에서는 낙태에 대한 입장이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중대 기준으로 작용해왔다.
연방대법원은 거의 50여년간 ‘로 대 웨이드’ 판례를 뒤집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취향에 맞는 대법관을 대거 지명하면서 보수성향 대법관이 3분의 2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지난해 그리고 미시시피 주의회가 ‘로 대 웨이드’의 제한을 피해 낙태 허용 기간을 임신 15주로 좁히는 법을 통과시켰고, 이 법의 위헌 심판이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가서 심리중이다.
여기에 연방대법원이 지난해 텍사스주의 낙태 제한법을 막을수 없다는 결정을 내려 논쟁은 커졌다. 텍사스주는 지난해 9월부터 성폭행 피해로 인한 임신까지 포함해 임신 6주가 지나면 낙태를 할 수 없도록 하는 낙태 제한법(SB8)을 시행하고 있다. 반대파는 연방법원에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했으나, 연방대법원은 지난해 12월 8대 1로 이 신청을 기각했다. 이에 따라 보수 우위의 연방 대법원이 오는 6월로 예고된 미시시피 법 재판에서도 ‘로 대 웨이드’를 뒤집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미 텍사스 판례에 따른 파장은 커지고 있다. 낙태권 보장단체 플랜드 페어런트후드 캘리포니아(Planned Parenthood) 리사 마츠바라 법률고문은 텍사스 거주 1만명 이상의 산모가 캘리포니아주로 가서 낙태수술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낙태권 보장 단체인 액세스 리프로덕티브 저스티스(Access Reproductive Justice) 제시카 핀크니 소장은 “낙태를 원하는 산모의 상당수는 20대이며 흑인, 아메리카 원주민, 아시안 등 유색인종”이라면서 “’로 대 웨이드’ 판례가 뒤집어질 경우 흑인 500만명, 라티노 570만명, 아시안 110만명, 아메리카 원주민 34만명에 달하는 20대 가임이 여성이 임신을 중단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플랜드 페어런트후드 캘리포니아의 조디 힉스 CEO는 “로 대 웨이드 판례가 뒤집어지면 주정부에서 임산부의 신상을 수집하고 낙태를 시도하면 처벌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20대 가임기 여성 뿐만 아니라 미국 전체 세대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는 6월 미시시피 법 판결이 나오면 미국 정치권과 법조계는 물론이고 11월 선거에까지 파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낙태 문제에 대한 종교적, 신념적 찬반문제는 제쳐놓고라도, 이 문제에 대한 한인사회의 이해와 관심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