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주 자연 즐기면서
로스호수 비경에 넋 잃고
셜랜호수 절경에 숨죽여
# 로스 레이크(Ross Lake)
워싱턴주에는 올림픽국립공원, 마운트 레이니어, 노스캐스케이즈 등 3개의 국립공원이 있다. 이 중 경관이 좋기로는 노스캐스케이즈가 제일이다.
로스 레이크는 노스캐스케이즈 국립공원 안에 있다. 아래로는 디아블로 레이크(Diablo Lake)가 있고 그 아래에 또 다른 호수들이 줄줄이 있다.
로스 호수는 약 24마일의 길이가 남북으로 길게 늘어서 있는데 수력 발전까지 하는 다목적 댐으로 생긴 기다란 호수다. 필자는 미국의 여러 유명 호수들을 많이 다녀보았지만, 이 호수만큼 감동과 흥분을 자아내게 하는 호수는 없었다. 캐나다 국경까지 맞닿아 있는 이 호수는 한여름 복중에 가도 건너편으로 빙하로 덮인 하얀 산을 볼 수 있고 발아래로도 굽이굽이 뻗어있는 여러 호수들이 혼을 빼놓을 만큼 절경을 만들어낸다. 물 빛깔은 옥 물감을 풀어 놓은 듯 비췻빛이다. 맑은 물 위로는 1만 피트에 육박하는 만년설로 덮인 산맥들이 장엄하게 서 있고 그 위로 드러나는 파란 하늘 솜털구름까지그림 같다.
20번 고속도로 선상에 로즈레이크 전망대가 있다. 이곳에 서서 보는 경치도 일품이며 그 아래에 있는 디아블로 호수 전망대에서 보는 풍광 역시 환상 비경이다. 조선 팔도 구석구석을 풍류 방랑하던 김삿갓도 이곳에 왔다면 멋들어진 시 한 수 읊지 않고는 발길을 돌리지 못했으리라.
호수 건너편엔 리조트가 있는데 이곳에서 호수 북쪽으로 뻗어있는 빅 비버 트레일(Big Beaver Trail)이나 호수 동쪽에서 캐나다까지 이어지는 이스트뱅크 트레일(East Bank Trail)은 천상의 등산로다. 호수를 건너가지 않더라도 주차장에서 시작하는 반 마일 정도의 절벽 루프 트레일도 훌륭하다. 협곡 댐 옆으로는 땅이 울릴 정도로 많은 물을 쏟아내는 폭포도 볼 수 있다.
워싱턴주는 사철 푸르다 해서 얻은 별명이 에버그린 스테이트(Evergreen State)다. 필자가 LA에 창립했던 등산클럽 이름도 바로 이 에버그린이었다. 그러니 워싱턴주에 올 때마다 어찌 남다른 정감이 들지 않겠는가.
# 레이크 셜랜(Lake Chelan)
노스캐스케이즈 국립공원 안에는 스트히킨(Stehekin)이란 미국의 전형적인 산골 마을이 있다. 자동차가 발인 미국에서 차조차 들어갈 수 없는 벽촌 중의 벽촌이다. 이 마을의 상주 인구는 80명뿐이다.
마을 뒤쪽으로는 하늘이 낮은 정도로 높은 거봉들이 병풍처럼 둘러있고 앞으로만 산과 산 사이로 빼꼼히 호수의 물길만 살짝 튀어있다. 앞에 보이는 이 물길만이 유일하게 이 마을로 들어오는 통로다.
이 마을은 청정마을이다. 범죄도 없고 경찰서도 없다. 범죄를 저질러도 도망갈 길이 없다. 보이는 호수 역시 청정이다. 이 호수가 바로 셜랜 호수다. 셸란이란 이곳 원주민 말로 깊은 호수라는 뜻이다.
이 호수 역시 국립공원 안에 속해 있기 때문에 자연 풍수림이 빼어나다. 호수가 있는 셜랜카운티는 그 유명한 워싱턴 사과의 주산지이기도 하다.
호수 폭이 제일 넓은 곳은 2마일 정도인데 길이는 무려 55마일이나 되고 깊이는 2000피트나 된다. 호수 양쪽 산비탈에는 사과나무 단지가 들어서 있다. 호숫물은콜롬비아 강으로 합쳐진다.
스트히킨 마을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레인보 폭포다. 이곳을 방문하는 여행객도 거의 다 이 폭포를 보기 위해서인 것 같다. 레인보 폭포는 이 폭포 하나로 준 국립공원(National Monument)이다. 깊은 산속에서 쏟아지는 수량이 너무도 대단하여 쏟아지는 물소리와 땅이 울리는 장관에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방문객들이 많기 때문에 호텔과 식당도 있어 둘러 보기에 편하다.
외딴 섬도 아닌 미국 속 벽촌을 둘러보고 나오면서 갑판 위에 앉아 맥주 캔을 뜯는다. 산도 푸르고 물도 푸르고 하늘마저 푸른 것을 보니 나는 왜 이렇게 행복한가 싶다. 행복이란 스스로 행복하다고 자화자찬해야행복하지 나는 왜 이렇게 불행하냐고 자조 섞인 불평만 하고 있으면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지 않은가.
# 여행 메모 : 노스캐스케이즈 국립공원은 미국의 알프스라 불리는 산악지대로 보통 6월에서 9월까지만 오픈한다. 방문하기 좋은 때는 7~8월이다.
글, 사진 / 김평식 여행 등산 전문가
미주 중앙일보를 비롯한 다수의 미디어에 여행 칼럼을 집필했으며 ‘미국 50개주 최고봉에 서다’ ‘여기가 진짜 미국이다’ 등의 저서가 있다. 연락처 (213)736-90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