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지 않은 곳에서 ‘콰과광’ 굉음이 울려 퍼졌다. “모두 진정하세요!”
19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친러시아 분리주의 반군의 교전이 시작된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지역을 찾은 외신기자들이 탄 차량 주변에 박격포탄 수 발이 떨어졌다.
뉴욕타임스(NYT)의 발레리 홉킨스 특파원은 포탄 소리에 놀란 기자들이 현지 군지휘소로 정신없이 피난했다면서 그 이후에도 6발 이상의 포탄이 추가로 떨어졌다고 전했다. 정부군 당국자는 친러 반군들이 경계선 너머에서 포격을 가했다고 설명하고 “이것은 도발”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로 인해 27세 병사 한 명이 중상을 입어 팔을 잃을 수 있는 처지가 됐다고 말했다.
홉킨스 특파원은 “반군들이 프레스 투어를 겨냥했던 것인지는 불명확하다”면서 “우리가 아는 한 우크라이나 정부군은 응사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당초 친러 반군의 포격에 파손된 농기구 수리 시설을 둘러볼 일정으로 짜였던 이날 기자단 투어는 안전 우려가 커지면서 중도 취소됐다.
NYT는 비슷한 시각 우크라이나 동부 루간스크 지역에서 우크라이나군이 진행한 프레스 투어에 참가한 기자들도 마찬가지로 격렬한 포격에 직면했다면서, 도네츠크와 루간스크 일대의 정부군과 반군의 경계선 전역에서 포격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내무부는 성명을 통해 친러 반군이 쏘아대는 박격포와 야포, 휴대용 로켓 등의 수가 직전 이틀간에 비해 갑절로 늘었다고 밝혔다.
2월 19일 예비 병력이 우크라이나 키예프 수도 영토 방어를 위한 전술 훈련 및 개별 전투에 참여하고 있다. REUTERS/Antonio Bronic
전운이 고조되면서 주민들은 피난길에 오르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끊임없이 포성이 울리는 와중에 NYT 특파원을 만난 루간스크 주민 타냐 티냐코바(31)는 “너무 불안해지면 이곳을 떠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딱히 갈 곳이 없다”면서 “우리는 우리 손으로 이 집을 지었다. 여기가 우리 집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본격적으로 반격에 나서 교전이 격화하거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등으로 상황이 전개된다면 티냐코바를 비롯한 많은 주민은 대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일 것이라고 NYT는 내다봤다. 발전소와 상수도 시설, 화학공장 등 공격목표가 될 수 있는 주요 산업 인프라가 주변에 있어서다.
특히 반군 점령 지역에 있는 한 화학공장의 경우 유럽 최대 비료 생산시설 중 하나로, 포탄이 잘못 맞기라도 하면 유독가스 등이 유출돼 대규모 참사를 초래할 수 있다.
미국 정부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명분을 얻기 위해 해당 시설에서 유독성 화학물질 누출 사고를 일으키는 자작극을 벌일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우크라이나 정부는 해당 공장에 인접한 스비틀로다르스크 지역에 19일 오후 2시까지 박격포탄과 포탄 59발이 떨어졌다고 밝혔다.
현지 주민들은 정부군과 반군이 최근 수일간 포격을 주고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NYT는 “어느 모로 보나 대부분의 포탄은 반군 지역에서 (정부군이 있는) 우크라이나 동부로 날아오고 있었다”고 전했다.
그런데도 도네츠크와 루간스크의 친러 반군 정부는 우크라이나 정부군의 대대적인 공세가 임박했다고 주장하며 주민들을 대거 피난시키고 있다.
세 자녀와 함께 러시아로 피난 중이라는 이나 샬파는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르겠다”면서 “아이들이 가장 걱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미국 CNN 방송은 19일 자사 기자들과 프랑스 AFP 통신 기자들이 돈바스 지역 취재 도중 박격포 공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기자들은 우크라이나 내무장관 데니스 모나스티르스키, 친정부 성향 우크라이나 의회 의원들과 함께 도네츠크 북동쪽 노보루간스코예 지역 전선 상황을 살펴보던 중 공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일행에는 폭스뉴스, 워싱턴포스트, NYT 소속 기자들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시찰단 일행이 포격 직후 긴급히 대피해 사상자는 나오지 않았다고 전했다.
반면 친러 분리주의자들이 선포한 자칭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 측은 이날 돈바스 지역 바실리예프카 마을을 시찰하던 기자들과 DPR 관계자들이 우크라이나 정부군의 포격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돈바스로 불리는 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는 일부 지역은 친러 분리주의 반군이, 일부 지역은 정부군이 통제하고 있으며 양측 사이에 대치 전선이 형성돼 있다. 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황철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