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나는 휴스턴 텍사스에다 귀국 선물 쎈타를 차렸다. 동기는 당시 뉴욕, LA등 대 도시에 있는 귀국선물 쎈타들이 대 호황을 누렸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유명 고급명품들이 최고 인기품목 이였고 물건이 없어서 못팔 정도의 품귀현상이었다. 또 몸에 좋다는 비타민 종류와 알부민 주사약과 웅담, 녹용, 해구신, 등도 최고의 인기상품이었다. 특히 남자들은 몸에 좋다거나 정력에 좋다면 무조건 사 먹는 실정이었다. 그 때문에 귀국선물 쎈타가 장사가 잘 되고 한국을 왕래하는 보따리 장사꾼도 많이 생겼다.
고국 방문과 관광객들도 선호하는 최고의 상품들이다. 그 때문에 돈을 많이 빨리 벌고 싶은 욕심 때문에 무리하게 귀국 선물 쎈타를 차리고 비싸고 특별한 상품들을 취급했다가 장사가 안되 문을 닫게 된 후 고생을 많이 했다. 원인은 시장조사를 제대로 못하고 욕심만 앞섰기 때문이다.
그 당시 휴스턴에는 한인 인구도 적고 관광객도 별로 없는데다 한국 가는 직행 비행기도 없었다. 그리고 한인들도 명품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었다.
어쨌든 장사가 안 돼 문을 닫고 남아있는 물건 중 웅담 3개가 집에 있었는데 버리기는 아깝고 누구에게 줄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웅담 인줄 알고 사다 팔았지만 진짜 웅담인지 돼지나 개 쓸개인지 전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선물로 주기도 곤란했다.
그래서 생각 끝에 웅담 3개를 큰 술병에다 넣고 보디카를 채웠다. 그리고 애틀랜타로 이사를 와 웅담주 맛을 보려고 한잔 따랐더니 짙은 밤색으로 변한 술이 냄새가 강하고 술이 독해 한잔 먹고 기절을 한 나는 다시 술병을 봉해버렸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 어느 날 한국 빅토리아 탤런트 축구단이 왔다. 단장 극작가 이철향씨와 탤런트 최길호씨와 후배인 주현씨와 민욱씨 등 여러 사람이 왔는데 우리 집에서 저녁을 함께 하게 됐다.
그 때 주현 후배가 형님 한국에 나와 방송을 다시 하자고 하는 것을 가로막고 “특별한 술 한 잔 할래? 하고 물으니 무슨 술이냐고 해 만든 지 오래된 웅담주라고 하니 놀라면서 달라고 해 데리고 가 웅담주를 따라주니 냄새가 특별하다며 마시고 난 후 기가 막히게 좋다고 기뻐했다. 그리고 후배녀석들 몇 명에게 한잔 씩 따라주어도 되냐고 물어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그리고 다음날 골프시합이 있다고 일찍 호텔로 떠났다.
웅담주가 기막히게 좋다고 신나게 마신 주현 후배에게 왠지 죄를 지은 것만 같았다. 이유는 진짜 웅담인지 아닌지 나도 모른다고 해야 되는데 그냥 웅담주라고 한 때문이다. 하기사 진짜 가짜라는 증거도 없고 나도 모른다. 그런데 다음날 주현 후배가 전화를 했는데 신바람이 났다. 그는 나에게 웅담주를 마신 덕분에 골프 삿 감각이 기가 막혔고 장타를 치면 끝없이 날아갔다며 웅담주를 더 먹을 수 있냐고 해 갖다 주었다.
그날 저녁 주현 후배는 가까운 후배에게만 한잔씩 따라주고 다음날 골프를 치고 돌아와 웅담주 한잔 하려고 하다가 술이 없어져 난리가 났다. 웅담주를 맛도 못 본 후배들이 다 마셔버린 것이다. 혼자만 마시려다 생긴 일이라 후배들을 탓 할 수가 없어 주현 후배는 화가 치밀었지만 참아야 했다.
그렇게 웅담주 (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 쇼가 끝났는데 그 후 한국 KBS-TV 방송국에서 만난 후배 탤런트들이 형님 집에 웅담주 먹으러 가겠다고 야단들을 했다. 원인은 주현 후배가 웅담주에 대한 과장 쇼를 펼쳤기 때문이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단막쇼다. 진짜 곰쓸개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웅담주가 사람들을 희롱한 것 같다.
모든 것은 생각여하에 따라 천차만별의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아는 것이 약도 되고 병도 되고 모르는 것이 약도 되고 병도 될 수 있는 것 같다. 어쨌든 팔다 남은 웅담 3개가 나에게 또 다른 의미와 추억을 남겼다.
– 칼럼니스트, 수필가, 시인
– 애틀랜타 한국학교 이사장, 애틀랜타 연극협회 초대회장 역임
– 권명오 칼럼집 (Q형 1,2집) 발간
– 애틀랜타 문학회 회원
– 미주한인의 날 자랑스런 한인상, 국제문화예술상, 외교통상부 장관상, 신문예 수필 신인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