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라는 게 거창한 것 같지? 아니야. 내가 신나게 글 쓰고 있는데, 신나게 애들이랑 놀고 있는데 불쑥 부르는 소리를 듣는 거야. ‘그만 놀고 들어와 밥 먹어!’ 이쪽으로, 엄마의 세계로 건너오라는 명령이지.”
지난해 10월 출간된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김지수 지음, 열림원) 중 한 대목이다. 지은이와의 대담에서 이어령 선생은 “엄마는 밥이고 품이고 생명”이라며 “죽음이 또 하나의 생명이다. 어머니 곁, 원래 있던 모태로의 귀환이다”라고 했다.
26일 별세한 고(故) 이어령 선생의 마지막 사유는 죽음이었다. 그는 삶과 죽음에 대한 지적이고도 따뜻한 깨달음을 말년에 여럿 남겼다.
그에게 죽음은 구체적이었고 가까이 있었다. 고향 보리밭에서 혼자 굴렁쇠를 굴리던 여섯 살에 그 죽음을 깨닫고 눈물 흘렸다 했다. 무엇보다 2012년 장녀 이민아 목사를 떠나보내야 했다. ‘3개월 시한부’의 암 선고를 받고 치료 없이 생의 마지막을 누리고 떠난 딸이었다. 이어령 선생은 2016년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를 내면서 먼저 보낸 딸을 그리워했다. 언제나 글을 쓰고 책을 읽어 바빴던 아빠의 후회, 딸을 다시 만나 번쩍 안아 올리는 환상이 들어있었다.
여기에서도 이어령 선생은 죽음에 대해 사유했다. “추상명사가 아니라 물건 이름처럼 손으로 잡을 수 있고, 냄새를 맡을 수 있고, 던지면 깨질 수 있는 유리그릇 같은 아주 구상적인 명사로 죽음은 그렇게 내 앞으로 온 거야.” 그는 이 책에서 새로 태어나는 아이의 울음소리에서 딸의 탄생을 기억하며 울음이라는 슬픔이 태어남의 기쁨과 다름없음을 보여줬다. 2019년 개정판 서문에서 고인은 “죽음이 허무요 끝이 아니라는 것을 너는 보여주었다. 선혈이 흐르던 상처가 아물고 그 딱지가 떨어진 아픈 살에서 새살이 돋는다”라고 썼다.
2019년엔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암 선고를 전하며 죽음과 삶을 연결했다. “과일 속에 씨가 있듯이, 생명 속에는 죽음도 함께 있다. 보라. 손바닥과 손등, 둘을 어떻게 떼놓겠나. 뒤집으면 손바닥이고, 뒤집으면 손등이다. 죽음이 없다면 어떻게 생명이 있겠나.”
물론 그에게도 죽음은 본능적으로 두려웠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서 그는 죽음을 ‘철창 나온 호랑이’에 비유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말을 인용했다. 죽음학자인 로스가 “타인의 죽음이 동물원 철창 속 호랑이라면 내 죽음은 철창을 나와 덤벼드는 호랑이”라 한 말이다. 이어령 선생은 “전두엽으로 생각하는 죽음과 척추 신경으로 감각하는 죽음은 이토록 거리가 멀다”고 했다.
생전에 나온 마지막 책도 죽음을 다루고 있다. 지난달 출간된 『메멘토 모리』다. 삼성의 고(故) 이병철 회장이 죽음과 대면해 던진 24개 질문에 대한 이어령 선생의 답이다. 그는 여기에서 코로나 19의 팬데믹으로 인한 죽음을 다루며 죽음의 범위를 개인에서 대중으로 확장했다.
그는 이 책에서 팬데믹 시대의 죽음에 관해 이런 사유를 전했다. “우리 안에 있던 죽음, 지금까지 알던 그 사자가 아니야. 두렵지만 그래도 안심하고 봤던 그놈이 골목 어귀에서, 출근길 만원 버스 안에서, 시장 가다가 딱 마주치게 된 겁니다. ‘존재하는 것은 모두 죽는다’는 철학자나 성직자의 가르침보다 더 강렬하게, 이 죽음이란 무시무시한 사자를, 저 괴물을 코로나 19가 인류에게 보여주고 만 겁니다.”
“이모털(immortal, 죽지 않는)한 존재는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거지. 하나님 이외의 존재는 다 죽어. 그게 원죄야. 이게 모털(mortal,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의)인 거지. 생명이라는 것은 다 죽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통해 메멘토 모리를 다시 깨닫게 된 겁니다.”
오래전 시작된 암으로 육체는 허물어졌지만, 고인에게는 그조차 하나의 탐구 대상이었다. 매주 한 두 차례 고인을 만나온 윤재환 한중일 비교문화연구소의 전 사무국장은 “별세 사흘 전에 만났을 때조차도 죽음을 관찰하셨다”고 했다. “죽음을 겁내지 않았다. 삶과 같은 개념, 다른 세계의 개념으로 깨닫게 되셨다 했다. 불편하고 아프며 입이 마르는 죽음의 증상을 적극 관찰하셨다. 정신은 오히려 더 맑고 똑바랐다. 평생을 호기심으로 사신 이답게 죽음마저 들여다봤다.”
윤재환 전 사무국장은 마지막 만남에서 고인이 “자면서 죽고 싶다”고 했던 말을 기억했다. 병원 대신 집에서, 서재와 연결된 집필실에 병원 침대를 들여놓고 거기에서 세상을 떠나고 싶어 했다. “누군가는 저렇게도 죽을 수 있구나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말도 남겼다. 이어령 선생은 정말로 26일 오후 1시쯤 잠들어있던 중 세상을 떠났다. 김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