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불시착 촬영지는 라우터브루넨에서 아주 가깝다. 그 중 이젤발트는 불과 23분만 운전하면 도착한다. 또 다른 촬영지인 시그리스빌 다리와 룽게른 호수도 그리 멀지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우리는 융프라우를 다녀 온 다음날 드라마 촬영지를 모두 돌아 보기로 했다.
사랑의 불시착은 2019년 12월 부터 2020년 2월까지 방영된 한국 드라마다. 시청률은 1회에서 6%를 시작으로 8회에 10%, 14회에 17%를 상회하더니 마지막 회에서는 21%를 돌파했다. 역대 tvN 드라마 중 시청률 제1위를 차지한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드라마는 넷플릭스를 통해 전세계로 퍼져 나간다. 한국드라마가 전세계에 불시착하며 대히트를 기록한 것이다.
이후 리정혁(현빈 분)이 자작곡을 연주했던 브리엔츠 호수의 이젤발트, 윤세리(손예진 분)가 뛰어 내리려 했던 시그리스빌 다리, 세리가 페러글라이딩 자격증을 따기로 마음 먹었던 클라이네샤이덱, 드라마의 마지막을 장식한 룽게른 호수 등 드라마 촬영지는 수많은 관광객들로 붐비게 됐다. 이전에는 평범했던 장소가 지금은 전세계인이 찾는 유명 여행지가 된 것이다.
알프스 산을 오가는 곤돌라와 빨간 벤치가 있는 풍경
내가 촬영지에서 놀란 것은 여행객이 한국인 뿐만 아니라 태국, 인도, 이탈리아, 영국, 미국 등 전세계 여러 인종이 찾아 온다는 것이다. 실제로 영국의 BBC, 미국의 워싱톤 포스트, 이탈리아의 ‘일 꼬리에르 델라 세라’와 ‘레푸블리카’ 등 전 세계 주요 언론 매체에서 사랑의 불시착을 헤드라인으로 장식했다.
나는 16편에 이르는 드라마를 모두 보지는 못했다. 다만 유튜브에서 간략하게 요약된 1시간 짜리 동영상을 감상했다. 그런데 드라마에서 손예진과 현빈의 캐미가 대단했다. 1시간씩 16번을 내리 봐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만큼 드라마는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다.
대본을 쓴 박지은 작가는 1976년 생으로 전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나와 세종대학교 대학원에서 영화예술학을 공부했으며 1997년 부터 방송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그녀의 대박 작품으로는 내조의 여왕, 역전의 여왕, 넝쿨째 굴러온 당신, 별에서 온 그대, 푸른 바다의 전설 등이 있다. 그런데 박지은 작가에게는 실패작 또는 망작이 없다. 한마디로 현존하는 한국 최고의 드라마 작가인 것이다.
사랑의 불시착 드라마의 스위스 촬영지는 취리히와 인터라켄 부근 지역이다. 취리히에서는 정혁과 세리가 교차로 걷는 장면의 그로스뮌스터 대성당, 초콜릿 가게 장면, 세리가 광장에서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를 정혁으로 착각하는 장면 등을 촬영했다.
인터라켄 지역의 한 시골길 풍경
취리히는 스위스 제1의 도시로 취리히 호수와 리마트 강을 끼고 있다. 리마트 강 연안에는 유럽 최대의 큰 시계가 있는 성 피터 교회, 길쭉한 청록색 첨탑의 프라우뮌스터 성당 그리고 드라마에 등장하는 그로스뮌스터 대성당이 있다. 특히 프라우뮌스터 성당 내부로 들어 가면 샤갈이 그린 몽환적인 스테인드글라스를 볼 수 있다. 후에 알고 보니 그로스뮌스터 대성당은 17년 전 나와 아내가 취리히에 왔을 때 대성당을 배경으로 사진촬영까지 했던 곳이다. 정혁과 세리가 만나기 이전에 벌써 나와 아내는 스위스를 여행하며 추억을 쌓았던 것이다.
리마트 강에서 바라 본 취리히, 오른쪽이 그로스뮌스터 대성당
취리히에서 가장 번화한 곳은 고급상점들이 줄지어 서있는 반 호프 거리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초콜릿도 이곳에 있는 초콜릿 상점에서 촬영했다. 이 도시에는 1845년 부터 시작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린트 초콜릿 회사가 있다. 초콜릿의 종류에는 오렌지 초콜릿, 바다 소금 초콜릿, 고추 초콜릿, 린도 볼 초콜릿 등 다양하다. 그러나 최고로 맛있는 초콜릿은 슈프륑리 초콜릿이다. 드라마에서 윤세리는 서단에게 초콜릿을 추천한다. ‘이거 맛있어요, 막 열 받고 우울할 때 먹으면 기분도 좋아져요’ ‘아! 한국분 아니시구나, 쏘리’. 서단은 세리가 가자마자 추천받은 초콜릿을 장바구니에 쓸어담는다.
인터라켄은 오른쪽으로 튠 호수 왼쪽으로는 브리엔츠 호수가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브레엔츠 호수 북서쪽으로 룽게른 호수가 위치해 있다. 우리는 시그리스빌 다리가 있는 튠 호수로 먼저 향했다. 드라마에서 가족에게 버림 받았다 생각한 세리는 생을 마감하려 한다. ‘여기는 시그리스빌 다리 위, 후회는 없어요’ 아버지, 큰오빠, 작은오빠 그리고 엄마 나 진짜 멀리 떠나요’. 그 순간 운명의 남자가 등장한다. 리정혁이 다가와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이렇게 정혁은 세리의 목숨을 구하고 세리는 단이와 정혁의 사진을 찍어준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남자가 너무 멋있어 보이는 세리의 마음. 세리는 속으로 한탄하며 말한다. ‘남자가 아깝다’,
정혁도 약혼녀 보다는 세리에게 더 마음이 가는 듯 그녀를 보는 내내 미소 짓는다. 단이는 초콜릿을 먹으며 취리히 초콜릿 가게에서 그녀를 만난 것을 기억해 낸다. 다리 위에서 바라 보는 시그리스빌은 평화스럽다. 알프스 산과 마을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기 때문이다. 산기슭과 산 위로는 스위스의 샬레풍 집들이 호수를 향해 지어져 있다. 모두 목조로 만든 예쁜 집들이다. 아내는 두 손을 번쩍 들더니 다리를 걷기 시작했다. 시그리스빌의 아름다운 풍경에 홀딱 반한 것이다.
시그리스빌 다리 위에서 환호하는 나의 아내
시그리스빌 다리 위에서 바라본 시그리스빌 마을의 풍경
시그리스빌 마을 교회와 묘지
이젤발트는 사랑의 불시착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촬영한 곳이다. 정혁이 ‘형을 위한 노래’란 작품을 선착장에 있는 피아노로 연주한 것이다. 이 곡은 정혁이 형을 위해 작곡한 아름다운 선율의 작품이다. 피아노는 촬영을 위해 잠시 설치한 것이어서 현재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 강렬하고 몽환적인 장면이라 사람들은 정혁의 피아노 치는 모습을 상상한다. 그리고는 서로 돌아 가며 인증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사람이 많이 모일 때는 한참을 기다려야 겨우 차례가 온다고 한다. 임종범 변호사가 사랑하는 아내를 셀폰으로 촬영하기 시작했다. 나도 두 사람의 예쁜 모습을 카메라로 촬영했다.
리정혁(현빈 분)이 피아노를 연주했던 이젤발트 선착장과 유람선
브리엔츠 호수를 오가는 이젤발트 선착장의 유람선
이젤발트는 브리엔츠에 있는 마을 중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라 할 수 있다. 마을로 내려 가는 길도 고즈넉하다. 자전거 타고 시골길을 달리는 아이들도 있고 빨간 닭 모형과 푸른 채소의 조화도 아름답다. 선착장에는 스위스 국기가 펄럭이고 있었고 보트가 있는 선착장으로 두 마리의 백조가 유유히 들어 오고 있었다.
이젤발트 선착장으로 내려가는 자전거 탄 아이들
스위스 국기가 펄럭이는 이젤발트 선착장
브리엔츠 호수와 시골길
브리엔츠 호수와 두 마리의 다정한 백조
이젤발트는 총인구 438명으로 아주 작은 호숫가 마을이다. 2021년 이전에는 관광객이 거의 없었던 마을이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다르다. 사랑의 불시착이 전세계에서 방영된 후 상황이 급변한 것이다. 지금은 브리엔츠 호수 지역에서는 가장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명소가 됐다. 인터라켄 부근에는 튠 호수와 브리엔츠 호수 외에도 수스텐 패스, 그림젤 패스 등 유명한 드라이브 코스도 있다.
그림젤 패스를 달리는 빨간색 승용차와 자전거 타는 사람
드라마 마지막 장면에서 송환이 결정된 정혁은 금단선을 넘는다. 이때 세리가 뛰어 오며 외친다. ‘그렇게 가 버리면 난 어떡해, 나 어떻게 살어’. 그러자 정혁은 북한군들을 제치고 달려와 세리와 포옹한다. 세리가 울며 평생 못 볼 거냐고 말하자, 정혁은 간절히 기다리고 기도하면 만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사랑한다고 마지막 말을 한다. 세리도 사랑한다고 말할 때 북한군들이 리정혁을 붙잡아 북으로 올라간다.
이렇게 두 사람은 헤어지고 세월은 흐른다. 세리는 정혁을 보고 싶을 때면 스위스를 여행하지만 그는 없다. 어느날 세리는 스위스에서 또 다시 페러글라이딩을 한다. 그리고 불시착한 그 곳에 기적처럼 정혁이 서있다. 정혁이 보고 싶었다고 말하자 세리가 뛰어가 포옹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달콤한 키스를 하며 사랑의 불시착 드라마는 끝난다.
세리가 페러글라이딩 자격증을 따기로 마음 먹었던 클라이네샤이덱
알프스 상공에서 하늘을 활공하는 패러글라이더
두 사람이 키스한 곳이 바로 룽게른 호수다. 룽게른 호수는 아주 전원적인 곳이다. 에메랄드 색의 맑은 호수와 푸른 초원 그리고 예쁜 집들이 산 아래로 펼쳐져 있다. 우리는 호수를 둘러 싼 도로를 드라이브하며 호수를 한바퀴 돌았다. 그리고 언덕에서 바라 본 호수와 마을 풍경은 그림처럼 아름답다. 정혁과 세리는 한국과 스위스를 오가며 행복하게 살았다.
마지막회에서 정혁과 세리가 달콤한 키스를 하던 룽게른 호수
글, 사진 / 곽노은 여행작가
30년간 수십차례 유럽을 여행하며 유럽의 골목 구석까지 한눈에 꿰고 있는 유럽 여행의 구루. 20년간 워싱턴 중앙일보에 여행 칼럼을 기고했고 유럽 배낭여행 강좌와 원격 화상 강좌를 통해 미주 한인들을 위한 유럽 여행 전도사로 활약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