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 경험 바탕 작가의 길로
이민·이방인, 작품 속에 녹여
“제 꿈의 편집자가 제 동화책 판권을 사는 꿈 같은 일이 이뤄졌어요.”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활동하는 동화작가 임양희(미국이름 Hope Lim·사진)씨는 2017년 여름 저명한 미 아동문학 출판사 홀리데이하우스 산하 닐포터북스와 자신의 동화책 ‘마이 트리'(My Tree·나의 나무)를 출판하기로 계약한 일을 이렇게 회고했다.
닐포터북스는 아동문학계의 영향력 있는 편집인인 닐 포터의 이름을 딴 아동출판물 브랜드로, 포터가 발행한 책들은 그림책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칼데콧’상을 포함해 여러 상을 탔다.
포터는 ‘마이 트리’를 두고 “읽을 때마다 메시지의 힘이 점점 더 강력해진다”고 했다고 한다.
이 작품은 미국에 이민 온 한 아이가 집 뒷마당의 거대한 자두나무와 교감하며 낯선 세상에 적응해가는 이야기다. 그런데 어느 봄밤 몰아친 폭풍우에 이 나무는 뿌리째 뽑히고 만다. 책은 정서적 둥지를 빼앗긴 이 아이가 어떻게 다시 적응할 수 있을까를 묻는다.
동화작가로 데뷔한 한인 임양희씨. [임양희씨 제공]
임 작가는 한국에서 태어나 대학 교육까지 마친 뒤 미국에 이민한 이민 1세대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데도 영어로 동화책을 쓰는 작가가 됐다.
처음부터 동화작가를 꿈꾼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들과 딸 두 자녀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면서 아이들의 눈이 포착한 새로운 관점, 새로운 생각, 상상력 등이 영감이 됐고 이를 일기 형식으로 기록하는 습관을 갖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과 함께 간 해변의 모래밭에서 노는 아이들 모습을 에세이처럼 쓴 뒤 ‘이걸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고 생각한 순간이 그를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인도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미국으로 건너온 뒤엔 미들베리 국제통번역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아 국무부에서 통역사로 일한 경력이 자양분이 됐지만 외국어로 글을 쓰는 작가가 되기 위해선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임 작가는 영어 동화작가가 된 비결을 묻자 갑자기 “주변에 영어로 책을 쓴다고 말하면 더 이상 질문이 없었다”는 얘기를 꺼냈다. 그만큼 주변에서도 외국인인 임 작가가 영어로 글 쓰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그냥 열심히 하는 것”이라며 “한 편집자가 ‘책을 쓰고 싶다면 쓰고 싶은 장르의 책을 100권 읽어라’라고 했다. 많이 읽고, 쓰는 것 말고는 방법이 별로 없는 듯하다. 원고를 붙잡고 앉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송나라 때 문인 구양수(1007∼1072)가 꼽은 좋은 글쓰기의 원칙이라는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은 1000년의 세월을 건너뛰고 동양에서 서양으로 문화권을 가로질러도 여전히 유효한 진리인 모양이다.
‘마이 트리’는 임 작가의 데뷔작이 될 예정이었지만 삽화가의 그림 작업이 지연되면서 이보다 늦게 판권 계약이 체결된 ‘아이 엠 어 버드'(I Am A Bird·나는 새다)가 작년 2월 먼저 출판됐다. 이 작품은 낯선 이방인과의 화해를 그렸다. ‘마이 트리’ 역시 작년 5월 독자들과 만났다.
두 책의 삽화가로는 모두 한국계인 나일성(마이 트리)·염혜원(아이 엠 어 버드) 작가가 참여해 책장을 펼치면 한국적 정취가 가득한 그림이 나온다. ‘아이 엠 어 버드’에서는 ‘개조심’, ‘주차금지’ 같은 한국어 벽보가 나붙은 낯익은 한국 바닷가 마을의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마이 트리’는 비영리 교육단체 ‘컬래버러티브 클래스룸’에서 만든 유치원·초등학생용 글쓰기 커리큘럼에도 들어가 이를 채택한 학교에서는 교재로도 쓰이게 됐다고 임 작가는 전했다.
미국의 저명한 출판 비평잡지 ‘커커스 리뷰'(Kirkus Reviews)도 임 작가의 책 두 권에 모두 별을 수여했다. 이 잡지에서 별을 받는 것은 최고 평점에 해당한다.
이 매체는 ‘마이 트리’에 대해 “이 조용한 책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많은 사람의 가슴에 뿌리를 내릴 것”이라고 평했고, ‘아이 엠 어 버드’에 대해선 “모든 연령대의 독자들과 이어줄 연결에 관한 다정한 이야기”라고 촌평했다. ‘아이 엠 어 버드’는 뉴욕타임스 책 리뷰에도 소개됐다.
임 작가는 “동화책은 시처럼 써야 하는 측면이 있는데 제가 글을 다듬는 것을 참 좋아한다. 마치 조각을 다듬어 완성해 나가는 듯하면서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 출판계는 작가의 개성적인 목소리를 중시한다고 임 작가는 전했다.
그는 “닐 포터도 ‘남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마음에서 우러나온 글을 써라. 그러면 나머지는 다 저절로 해결된다’고 조언했다”며 “(내 책에 담긴) 이민자, 향수, 섬세함 등이 저 자신을 대변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임 작가는 올해 4월 신작 ‘마미스 홈타운'(Mommy’s Hometown·엄마의 고향)도 출간할 예정이다. ‘마이 트리’는 한국어판으로 곧 한국에서도 출간될 예정이다.
임 작가는 “작품마다 메시지는 조금씩 다르지만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제 작품에 공감해서 더 아름다운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