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극우 집권층 몰아내고 친러 주민 보호”
미국 등은 군사 개입 대신 고강도 제재 나서
러시아가 결국 지난 24일(현지시간) 새벽 우크라이나를 전격 침공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가혹한 제재’ 경고를 비웃기라도 하듯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둘러싸고 미사일 공격에 이어 지상군을 투입, 수도를 포위했다. 러시아의 침공 배경과 향후 전망등을 문답식으로 정리했다.
– 언제 어딜 공격한 것인가= 러시아군은 동부와 북부, 남부 등 3개면을 통해 동시다발 공격을 펼치며 우크라이나로 진격했다. 동부 돈바스 지역에선 러시아군의 지원을 받는 친러 분리주의 반군이 우크라이나 정부군의 방어선을 뚫고 6~8km 진군했다고 러시아 국방부가 밝혔다. 남부에선 러시아가 지난 2014년 합병한 크림반도를 통해 진입한 러시아 공수부대와 기갑부대 등이 우크라이나 남부 도시 헤르손에 입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군은 또 우크라이나 북부 벨라루스 쪽에서 남쪽으로 진군하며 국경에서 멀지 않은 우크라이나 북부의 체르노빌 원전을 점령했다고 밝혔다.
– 그럼 전면전이 벌어진 것인가= 푸틴 대통령은 군사 작전을 시작하면서 “친러시아 반군 점령지인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주민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며 “우크라이나 점령 계획은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러시아 지상군이 우크라이나 동, 남, 북쪽에서 진입한 만큼 사실상 전면전이다. 우크라이나 외무장관도 “러시아가 전면전을 벌였다”고 주장했다.
-피해 상황은= 러시아측은 도시나 군사기지 내 막사, 주택 등 비전투시설은 인명 피해를 막기 위해 공격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미 국방부에 따르면 첫날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에 무려 160발 이상의 미사일을 퍼부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 보건장관은 러시아군 공격 첫날 우크라이나인 57명이 사망하고 169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군도 “루간스크에서 적군 50명을 죽이고 러시아 전투기 6대를 격추했다”고 주장했다.
– 새벽에 전쟁이 터졌는데 시민들 상황은= 놀란 시민들은 폭발음을 들으면서 인근 지하철역으로 대피했다고 한다. 또 피란 인파로 주요 도로가 마비된 상태라고 한다. 차가 없는 시민들은 공항과 버스 정류장 등을 찾았지만 외부로 가는 비행편이 전부 취소됐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대피 전 현금을 챙기려는 이들로 현금인출기 앞은 길게 줄이 늘어섰고 시내 슈퍼마켓과 식료품점에는 식량과 생필품을 사러 온 시민들로 북새통을 이뤘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 우크라이나 정부 대응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유엔과 국제사회에 최대한의 도움을 요청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대국민 연설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모든 안보·국방 요소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라며 “조국을 지키려는 누구에게나 무기를 지급하겠다”라고 말했다.
– 우크라이나 군사력은 어느 정도인가= 러시아는 정규군이 90만 명으로 세계 4위 수준이고 무기체계 등도 푸틴 대통령 취임 후 꾸준히 개량해 왔다. 우크라이나 정규군은 36만명으로 일부 최신무기만 갖췄다. 러시아는 이번 군사작전을 위해 최신 무기와 함께 최대 20만명을 배치했다.
-미국이나 서방은 어떤 태도인가= 바이든 대통령은 24일 러시아를 상대로 고강도 제재의 칼을 꺼내 들었다. 이번 제재는 러시아의 주요 금융기관에 대한 제재와 함께 항공우주를 비롯한 산업 전반에 직접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수출 통제 등이 골자다. 푸틴 대통령 측근을 비롯해 러시아 지도층 인사에 대한 추가 제재도 포함됐다. 러시아 금융 기관들은 전세계적으로 하루 평균 460억달러 규모의 외환 거래를 수행하고 있는데 이중 80%가 미국 달러로 이뤄진다는 게 재무부의 설명이어서 제재에 따른 후폭풍 효과 역시 상당할 전망이다.
– 제재일 뿐이지 적극적인 개입은 아니잖나= 그렇다. 미국, 서방 모두 군사적 개입은 아직 하지 않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군사 옵션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12월 지상군 파병에 관한 질문에도 “그건 테이블에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과 러시아가 서로 총을 쏘기 시작하면 세계대전이 벌어진다”고 우려했다.
– 러시아는 도대체 왜 우크라이나를 공격했나= 푸틴 대통령은 이번 군사작전을 명령하면서 그 목표가 우크라이나의 ‘탈군사화’와 ‘탈나치화’라고 천명했다. 탈군사화란 우크라이나의 주요 전력을 무력화하는 것을 의미하고, 탈나치화는 돈바스 지역 주민 등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인들을 탄압하는 데 앞장선 극우민족주의 성향의 우크라이나 집권층을 척결하는 것을 뜻한다. 러시아의 최종 목표는 결국 우크라이나 주요 군사시설 타격으로 군사력을 무력화시킨 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 정권을 몰아내고 친러 정권을 세우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남의 나라에 러시아가 무슨 자격으로 침공한다는 건가= 러시아와 국경을 접한 돈바스 지역은 친러 성향 분리주의 세력이 2014년부터 장악한 곳이지만 엄연히 우크라이나 영토다. 하지만 지리적으로 러시아 국경에 접해 러시아의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는 이들이 많다.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병합했을 때 자신들도 독립하겠다며 국가 수립을 선언하고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8년째 저강도 내전을 벌이고 있다. 이번 공격에 앞서 푸틴 대통령은 이 돈바스 지역에서 친러시아 성향 분리주의 세력이 선포한 ‘도네츠크인민공화국’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의 독립을 승인했다. 그러면서 이 지역을 우크라이나가 공격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 지역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군사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 외교적 해결 가능성은 없나= 현재로서는 밝지 않다. 원래 24일 미국과 러시아는 외교장관 회담을 예정했으나, 러시아의 침공으로 회담은 취소됐고 양국의 정상회담도 무산됐다. 서방과 대화의 채널은 열려있는 상황이긴 하다. 하지만 이미 공격의 칼을 빼든 푸틴에게 당장 서방과의 대화가 얼마나 의미가 있을지 현재로서는 의문이다. 정구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