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싸우겠다’ 해군 입대…교사·배우로도 활동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막내아들 안필영(미국 이름 랠프 안) 옹이 3·1절을 앞두고 별세했다. 향년 95세.
안 옹은 26일 오후 11시 11분께 로스앤젤레스에서 눈을 감았다. 그는 숙환으로 최근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안창호 선생의 셋째 아들로, 도산의 3남 2녀 가운데 현재까지 유일하게 생존해있던 핏줄이다.
안 옹은 1926년 LA에서 태어났다. 당시 도산은 미국에 체류하며 해외 독립운동의 기틀을 닦았고 막내아들이 태어났을 때 활동 무대를 중국 상하이로 옮겼기 때문에 안 옹은 부친의 얼굴을 직접 보지 못했다.
한인역사박물관에 따르면 고인은 LA 캘리포니아주립대학을 졸업했고, 진주만 공습을 감행한 일본군에 맞서 싸우기 위해 미 해군에 입대해 복무했다.
2차 대전 종전 이후에는 독립유공자이자 한국계 미국인 배우로 활약했던 큰 형 안필립 선생의 영향을 받아 배우로 활동했다.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1950년대 영화 ‘배틀서커스’, ‘미션 오버 코리아’ 등에 출연했고 2000년대 중반까지 다양한 영화와 TV 드라마에서 한국계 배우로서 연기를 펼쳤다.
배우 생활을 중단했던 시기에는 교육학 전공을 살려 캘리포니아주 고등학교 체육 교사로 재직하며 학생을 가르쳤다.
고인은 특히 평생 안창호 선생과 가족의 뜻을 받들어 LA 한인사회에서 독립운동의 역사를 증언한 정신적 지도자이기도 했다.
도산의 장남 안필립 선생은 미국에서 일본의 한국 침략을 비판하는 연설을 했고 1940년 10월 광복군 창설 축하식을 지원하기 위해 조직된 한미친우회를 관리했다.
도산의 장녀 안수산(미국명 수전 안 커디) 여사는 신한민보와 흥사단, 3·1 여성 동지회 등에서 활동했고 2차 대전 당시 미 해군에 입대한 최초의 아시아계 여성이었다.
로스앤젤레스 한인회의 부고. 로스앤젤레스 한인회 홈페이지
안 옹은 형과 누나가 먼저 세상을 뜬 뒤 도산의 직계 자손으로서 최근까지도 3·1절과 광복절 기념행사 등에 빠짐없이 참석해 부친의 독립운동 정신을 기렸다.
또 차세대 한인을 대상으로 역사를 가르치고 노인 건강을 관리하는 강사로도 활동하는 등 각종 봉사 활동을 펼쳐 한인 사회의 큰 존경을 받았다.
윤효신 대한인국민회기념재단 이사장은 “고인은 도산이 설립한 대한인국민회의 취지를 기려 각종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석했고 독립운동 사적지 보호에도 앞장섰다”며 “우리의 기둥이었다”고 애도했다.
제임스 안 LA 한인회장은 “3.1절을 앞두고 돌아가셔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며 “도산의 정신을 한인사회에 널리 퍼트린 지도자였다”고 말했다.
고인의 유족으로는 부인과 두 딸이 있다. 연합뉴스.
[삶과 추억] 한인사회 정신적 지주 역할 앞장
도산 막내아들 ‘랄프 안’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막내아들이자 한인사회 원로인 랄프 안(한국명 안필영) 선생이 26일 오후 11시11분 노환으로 별세했다. 95세.
랄프 안 선생은 안창호 선생이 미국을 떠난 이후 태어난 막내아들로 평생 아버지를 직접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고인은 어머니 이혜련 여사, 형 필립, 누나 안수산 여사와 함께 한인사회 발전을 위해 헌신했다.
랄프 안 선생은 1926년 태어나 LA에서 성장했다. LA 시티칼리지와 캘스테이트 LA를 졸업했고 2차 세계대전 당시 미 해군에 복무했다. 이후 초중등학교 교사, 식당 경영자, 광고모델로 활동했다.
랄프 안 선생은 독립운동가 후손 모임인 ‘파이오니어 소사이어티’ 모임을 주관하는 등 한인사회 정체성을 되새기는 대부분 행사에도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지난 2019년 4월에는 한국 보훈처가 한국에서 주관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다. 2021년 LA한인사회 8·15 광복절 기념행사 때도 축사에 나섰다.
2021년 12월 15일 박경재 LA총영사(오른쪽)로부터 대통령 표창장을 전달받았다. [사진 LA총영사관 제공]
고인은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막내아들이란 명예를 자랑스럽게 여겼다. 고인은 생전 인터뷰에서 “1963년 36세 때 어머니와 함께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며 “아버지를 추모하는 행사에서 나도 모르게 크게 울었고 머리로만 알던 아버지의 존재를 마음속 깊이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고인은 사람을 대할 때 항상 온화한 웃음을 잃지 않고 예의와 기품을 내보였다. 한인 정체성 교육에 앞장설 때면 한인 청소년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고인은 “한인 청소년의 미래는 (우리 때와 달리) 여러 제약이 사라졌다. 그들의 앞날이 무궁무진하다. 한인 청소년은 얌전하지만 기품이 있고 도전정신으로 가득 차 있다”며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고인은 한인사회 성장과 발전을 누구보다 기뻐했다. 그는 흥사단 LA지부와 생전 인터뷰에서 “한인사회는 훌륭한 커뮤니티로 여러 교회, 단체, 청소년 단체가 활동한다. 충분히 잘하고 있고 진정 훌륭한 커뮤니티”라고 평가했다.
고인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나눈 편지 내용을 인용해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는 사랑의 뜻을 강조했다. 가족을 위한 사랑, 친구를 위한 사랑, 한인사회와 커뮤니티를 위한 사랑, 조국사랑 등을 통해 우리 모두 인내와 용기를 지켜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고 랄프 안 선생의 유가족은 고인의 유지에 따라 장례식을 치르지 않기로 했다. 흥사단 LA지부(대표 이준학)는 유가족 뜻을 받들어 추모행사를 준비 중이다. LA한인회(회장 제임스 안)도 유가족 및 한인사회 단체와 협의해 추모행사를 준비하기로 했다.
김형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