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대통령선거를 위한 재외 거주자 투표가 막을 내렸다. 한국에서는 아직 막판 힘겨루기가 한창이지만 해외 거주자들은 참여자에서 관객으로 신분이 바뀐 것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에 따르면 재외유권자 23만 가운데 16만여 명이 투표에 참여했다(최종 투표율 71.6%). 투표율로 보면 재외 거주자의 선거 참여율은 결코 나쁘지 않다. 과연 그럴까? 착각이다. 이 수치는 선거권자 대비가 아니라 사전등록자 대비 투표율이기 때문이다.
통계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 실제 선관위도 재외선거 법규-자료집 등에는 선거권자 수 대비 투표율을 사용한다. 다시 말해 재외부재자 투표율은 여전히 저조하다. 선관위는 이번 재외 선거인을 214만 명 정도로 추산한다. 따라서 20대 대선 재외 선거인 유권자 등록율은 대략10.7%로 볼 수 있다. 이 가운데 71.6%가 투표를 한 것이다. 따라서 실제 투표한 인원은1백 명 가운데 8명 정도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왜 절대다수인 나머지 92명은 투표를 포기했는가? 일부에선 투표율이 저조한 이유로 막장선거에다 20대 대선 후보들에게 느끼는 국민들의 역대급 비호감 정서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또 지난 2020년 지난 19대 총선에서 불어 닥친 ‘사전투표 음모론’도 한 몫을 했다고 한다. 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
보다 큰 이유는 무엇보다 해외에서 투표를 하기엔 제약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이나 캐나다처럼 국토 면적이 큰 나라에서는 투표소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다. 이번 선거에서 미주지역의 경우 노스 캐롤라이나, 콜로라도 등 몇몇 곳에 투표소가 신설되긴 했으나, 언 발에 오줌 누기다. 미 전역 한인 유권자 가운데 겨우 한자리 수 만이 등록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실례로 테네시 낙스빌에 거주하는 K씨(유학생)는 애틀랜타 투표소까지 3시간 반이나 운전해서 한 표를 행사하기에는 너무 힘들어 결국 투표를 포기했다. 비용과 투자대비 효율성이 관건이지만 적어도 한 주당 1투표소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희망한다.
이 같은 재외국민 선거의 문제점은 이미 많은 언론과 학자들이 지적했다. 우편투표 도입 등 대안을 내놓았지만 정치권과 선관위의 반응은 신통치 않다. 해외거주자들의 낮은 선거 관심도도 문제다. 필자의 취재 결과 주변의 상당수가 사전선거 등록일을 몰랐다는 충격적인 답변을 했다. 애써 변명하자면 민생고에 바쁜 재외거주자들은 그리 마음의 여유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의 한 표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자유와 권리에는 반드시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 재외국민들의 표가 많아질수록 위상도 올라가고 권익도 향상될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에다 선관위의 다소 세심하지 못한 서비스정신도 발목을 잡는다. 이미 언론에 보도되었 듯이 한 유권자가 어거스타에서 2시간여 자동차를 몰고 애틀랜타 투표소까지 왔다가 그냥 돌아가는 해프닝이 발생했다. 영주권을 지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론이 이를 이슈화 하자 총영사관측은 재외국민의 경우 영주권을 지참하라고 수차례 공지했다고 항변했다. 맞는 말이다. 그동안 지역 한인 언론을 통해 열심히 홍보한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그 노력만큼 유권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데 있다.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선관위가 사전등록당시 영주권 유무를 확인하는 시스템을 가동했으면 어땠을까? 유권자들이 훨씬 편하고 쉽게 투표할 수 있을 것이다. 어려운 작업도 아니다. 현재 한국의 인터넷 시스템이면 충분히 가능하다. 이미 코로나 방역에서 증명됐다.
선관위나 외교공관은 유권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국민들도 그에 걸 맞는 의식수준을 갖추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재외 부재자 투표 문제점도 이 관점에서 접근하면 점차 개선될 것임을 확신한다. 투표제약-투표율 저조로 악순환 되는 고리는 이제는 끊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