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정부 권한 제한 목적
‘권리장전’ 10개 조항 추가
강력한 연방정부 권한에
13개주 자치도 보장해줘
헌법 초안이 확정됐지만 최종 공표된 것은 아니었다. 제각기 독립국처럼 행세하고 있던 13개 주의 비준을 받아야 했다. 연방헌법을 제정한다는 것은 각기 다른 13개 주(나라)가 하나의 더 큰 나라를 이루는 일이었다. 나라가 커지면 당연히 이점도 많아지지만 13개 주는 저마다 득실을 계산했다.
가장 큰 우려는 어느 강력한 한 주가 전체 연방을 좌지우지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피 흘려 쟁취한 새 나라의 대통령이 유럽의 다른 나라 군주처럼 되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여론 전환이 필요했다. 당대의 지식인들이 나섰다. 알렉산더 해밀턴(1755~1804, 초대 재무장관), 제임스 매디슨(1751~1836, 제4대 대통령), 존 제이(1745~1829, 초대 연방대법원장) 같은 이들이었다. 훗날 건국의 아버지들로 불리게 된 이들은 ‘푸블리우스(Publius)’라는 필명으로 잇따라 논설을 발표하며 연방헌법 제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들이 진정 희망한 것은 신생 독립국 미합중국이 유럽의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대국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강력한 중앙정부로 국방과 경제를 통제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그들은 연방헌법이 제정되면 각 주 대표들이 모여 심사숙고하여 정책 결정을 하기 때문에 어느 특정한 주의 일방적 독주는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삼권 분립이라는 제도와 각 주 정부, 일반 시민이라는 견제 장치가 철저히 작동하기 때문에 연방정부의 독재화 가능성이 없다는 것도 강조했다. 이런 내용은 나중에 ‘연방주의자 논설집(The Federalist Papers)’이란 책으로 발간되었다. 이 책은 미국 초기 역사상 중요한 문건 중의 하나가 되었다.
연방헌법이 확정되기 위해서는 13개 주 중 3분의 2인 9개 주 이상의 비준이 필요했지만, 만장일치가 절실했다. 영역이 작은 델라웨어는 다른 주와 동등하게 대표를 둘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해 제일 먼저 찬성표를 던졌다. 펜실베이니아, 뉴저지가 뒤를 이었다.
해를 넘겨 1788년 1월 조지아, 코네티컷이 찬성했고, 잇따라 매사추세츠, 사우스캐롤라이나, 뉴햄프셔가 동의함으로써 9개 주가 비준을 마쳤다. 이로써 연방헌법은 확정됐다. 하지만 13개 주 중 가장 강력하고 부유한 주였던 버지니아와 뉴욕이 남아 있었다.
이들은 1788년 6월과 7월 한 달 간격으로 뒤늦게 찬성 대열에 합류했다. 조건을 달았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는 연방 정부에 의해 침해받을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 권리장전(Bill of Rights)을 채택해 헌법에 추가, 보충한다는 확답을 받은 다음에야 비준에 동의한 것이다. 이제 2개 주만 남았다. 1년 반 뒤 노스캐롤라이나가 찬성했고 1790년 5월 로드아일랜드가 마지막으로 비준에 동의함으로써 연방헌법은 13개 주 모든 지역에 효력이 미치게 됐다.
1787년 헌법제정회의 모습을 답은 기념우표.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던 쟁쟁한 사람들이 치열하게 토론하는 장면이 묘사된 기록화다. 1937년 연방헌법 제정 150주년을 맞아 발행됐다.
13개 주가 빠짐없이 동의한 연방헌법의 탄생은 ‘위대한 미국’을 향한 첫걸음이었다. 해석상 논란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저마다 이해관계가 달랐던 각 주 대표들이 대화와 타협으로 이룬 결실이었기 때문이다. 연방헌법은 절묘했다. 연방정부에 강력한 권한을 부여하면서 동시에 주 정부의 독립성까지 보장했다. 연방헌법에 적용된 견제와 균형은 입법, 사법 등 정부 영역뿐 아니라 향후 미국의 모든 법률과 제도에 두루 적용되는 중요한 정신이 되었다.
연방헌법 제정으로 구체화된 미국의 정치제도는 민주주의 역사의 신기원이 되었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특별했다. 1787년 제정된 헌법으로 시작된 미국 헌정사는 230년 이상 한 번도 중단되지 않고 지속되었다. 프랑스의 정치철학자 토크빌(1805~1859)은 신생 미국을 부러워하며 그의 불후의 저작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책에서 미국 민주주의가 왜 특별한지를 이렇게 정리했다.
“미국은 자유와 평등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다. 작은 공화국의 장점과 큰 연방제의 장점을 조화롭게 수렴한다. 13개 주는 저마다 끈끈한 애향심을 바탕으로 주민들의 세세한 관심사와 이익을 대변하고 연방정부는 주를 초월해 미국 전체 시민 공통의 이익 추구에 집중한다, 이것이 미국 민주주의의 최대 장점이다.”
다시 말해 토크빌에게는 신생 미국은 식민지 시대부터 내려온 13개주 각각의 뿌리 깊은 자치 정신과 애향심이 아메리카라는 하나의 국가에 대한 애국심으로 자연스럽게 옮아간 이상국가였던 것이다.
이종호 애틀랜타 중앙일보 대표
#. 권리장전과 수정헌법
1787년 제정된 미국 연방헌법은 오늘날까지도 전혀 수정 없이 보존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헌법이다. 그러나 최초 연방헌법에는 언론, 집회의 자유 같은 기본권이 빠져 있었다. 이런 이유로 일부 주들은 연방정부의 권한을 제한하여 시민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연방헌법 비준을 미루고 있었다.
결국 버지니아 출신 제임스 매디슨의 주도로 1789년 발의되고 1791년 발효한 10개의 수정조항(Amendment)이 최초 헌법에 추가 되었다. 이것이 ‘권리장전(The Bill of Rights)’이다. 대표적인 조항은 제1조 종교, 언론, 출판, 집회의 자유와 제2조 무기 소지의 권리, 제4조 영장 없는 수색 체포 압수 금지 등이다.
연방 헌법은 시대 변천에 따라 계속 새로운 조항이 추가되었으며 현재는 모두 27개의 수정조항이 있다. 수정조항을 수정 헌법(Amendment)이라고도 한다.
#. 미국 양당 정치의 뿌리
연방헌법 제정 회의 때부터 연방파와 반연방파의 대립은 극심했다. 강력한 중앙정부를 지지한 연방파는 상공업 위주의 경제 체제를 구축한 북부가 중심이었다. 노예제에 기반을 둔 농업 중심의 남부 주들은 각 주의 자치권이 연방정부에 우선되어야 한다는 반연방주의 입장이었다.
연방파는 뉴욕 출신 알렉산더 해밀턴이 이끌었다. 반연방파는 버지니아 출신의 토머스 제퍼슨이 대표했다. 이들은 워싱턴 대통령 취임 후 각각 초대 재무장관과 국무장관을 맡았지만, 주요 정책마다 대립했다. 사실상 양당 대립 정치의 시작이었다. 이들의 싸움은 표면적으로는 정치 철학과 이념 싸움이었지만 실제로는 신생 미국의 주도권을 놓고 벌인 북부와 남부의 힘겨루기 성격이 강했다.
지금 미국 정치의 두 축인 민주-공화 양당의 먼 뿌리는 모두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의 민주공화당(Democratic Republic)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6대 대통령 존 퀸시 애덤스(2대 존 애덤스 대통령 아들)와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최초의 비주류 출신 대통령)의 갈등 대립으로부터 시작됐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4대 제임스 매디슨, 5대 제임스 먼로 대통령까지 집권당으로 잘 내려오던 민주공화당은 각 후보가 혈투를 벌인 6대 대통령 선거 때부터 분열되기 시작했다. 결국 민주공화당은 존 퀸시 애덤스의 국민공화당(→휘그당)과 앤드루 잭슨의 민주당으로 양분되었다. 이후 휘그당은 지금의 공화당으로 발전했고 민주당은 그대로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노예해방을 선언한 링컨 대통령은 최초의 공화당 출신 대통령이다.
#. 워싱턴 DC가 새 수도가 되기까지
독립전쟁 이후 헌법제정 때까지 미국 정치의 중심은 필라델피아였고 경제적 중심은 뉴욕이었다. 미국 건국 이후엔 새 수도를 건설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다. 초대 재무장관 해밀턴의 잇단 금융개혁 조치에 반발하는 남부를 달래기 위해 남쪽으로 수도를 옮겨야 한다는 현실적 필요성도 제기됐다.
결국 워싱턴 대통령의 고향인 버지니아와 메릴랜드 접경 포토맥 강변에 새 수도를 세우기로 하고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과 미 대륙 발견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이름을 함께 따서 ‘워싱턴 DC(District of Columbia)’이라고 명명했다.
새 수도 워싱턴 DC 대통령 관저는 1800년에야 완공됐다. 따라서 새 수도, 새 관저에서 정식 업무를 보기 시작한 것은 3대 제퍼슨 대통령 때부터였다. 백악관(White House)이라는 이름은 1812년 미-영 전쟁 때 영국군에 의해 불탄 관저를 복구하면서 불에 탄 자국을 지우기 위해 관저 외벽을 모두 흰 페인트로 칠한 데서 유래했다.
시민권 시험 관련 문제 풀이
Q연방주의자 논문집은 미국 헌법의 가결을 지지했다. 저자 중 한 사람만 말해 보라. (The Federalist Papers supported the passage of the US Constitution. Name one of the writers.)
A 제임스 매디슨(James Madison) /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 / 존 제이(John Jay / 푸블리우스(Publius)
Q 초대 대통령은 누구인가? (Who is the first President?)
A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