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제재에 나선 서방과 러시아의 관계가 악화하면서 이달 말 러시아 우주비행사 사이에 끼어 소유스 캡슐을 타고 지구로 귀환해야 하는 미국 우주비행사가 난감한 입장에 처했다.
주인공은 지난 2017년 말에 이어 두 번째 국제우주정거장(ISS) 임무를 수행 중인 베테랑 우주비행사 마크 반데 하이(56).
‘스페이스 플라이트 나우'(SpaceFlight Now) 등 우주전문 매체에 따르면 반데 하이는 이달 30일 355일간의 ISS 임무를 마치고 지난해 4월 초 도착할 때와 마찬가지로 러시아의 소유스 캡슐을 타고 지구로 귀환할 예정이다.
이 캡슐은 이전처럼 바이코누르 우주기지가 있는 카자흐스탄에 착륙할 예정이며, 인근에서 대기할 러시아 지원팀의 관리를 받는다. 캡슐에 함께 탑승해 귀환하는 다른 우주비행사 두 명도 모두 러시아인이다.
미육군 대령 출신인 반데 하이는 미국 우주비행사로는 ISS 최장 체류 기록을 세우고 귀환하는 것이라 개인적으로 축하받을 일만 남은 영광스러운 자리지만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형성된 어색한 분위기를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미국과 러시아 간 우주 협력의 상징이 돼온 ISS에선 양국 실무진 간에 대화가 오가고 업무 공조도 이뤄지는 등 우크라이나 사태 이전처럼 우주인들이 한 팀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반데 하이가 예정대로 소유스 캡슐을 타고 귀환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지상 분위기는 지구 400㎞ 상공의 우주정거장처럼 녹록지 않은 실정이다.
러시아 우주 당국인 연방우주공사(로스코스모스)는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제재에 대응해 영국 통신기업 원웹 위성을 탑재한 채 발사대에 세워졌던 로켓을 다시 내리고, 미국 기업에 대한 로켓엔진 판매도 잠정 중단했다.
로스코스모스를 이끄는 드미트리 로고진 사장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에 영광을’이란 트윗을 올리는가 하면 “우리와의 협력을 막는다면 ISS가 궤도에서 이탈해 미국이나 유럽에 떨어지는 건 누가 막느냐”, “(마녀) 빗자루 타고 우주로 가보라” 등으로 발언 수위를 높이고 있다.’
현재 ISS에선 반데 하이를 비롯한 미국 우주비행사 4명, 러시아 우주비행사 2명, 유럽우주국(ESA) 우주비행사 1명 등 총 7명이 임무를 수행 중이다.
반데 하이와 러시아 우주비행사 2명은 18일 발사되는 소유스 MS-21을 타고 ISS로 향하는 러시아 우주비행사 3명과 임무를 교대한다.
이들이 소유스 MS-19를 타고 지구로 출발하는 30일에는 민간 우주정거장 건설을 추진 중인 미국 기업 ‘액시엄 스페이스'(Axiom Space)가 스페이스X의 ‘크루 드래건’ 캡슐을 이용해 4명을 태우고 우주정거장으로 향한다. ‘Ax-1’으로 명명된 이 미션은 ISS 최초로 민간인만으로 이뤄진 비행으로 열흘간 체류하게 된다.
이후 내달 15일에는 NASA 우주비행사 3명과 ESA 우주비행사 1명을 태운 ‘크루-4’ 미션 캡슐이 발사되지만 기존 인원과 임무 교대를 하는 것이어서 반데 하이가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없다.
반데 하이가 러시아 우주비행사와 함께 소유스 캡슐을 타고 지구로 귀환하고 이후 러시아팀의 관리를 받으면서 적대적 행위에 노출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분위기가 이전과는 사뭇 다를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이 때문에 소유스 캡슐을 이용하는 미국 우주비행사가 반데 하이가 마지막이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