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당선인이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확정되기 하루 전인 2021년 11월 4일, 참모들이 윤 당선인의 서초동 자택 부근에 모였다. 회의 뒤 자리를 뜨려는 이들에게 부인 김건희씨가 조용히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우리 남편을 끝까지 지켜주세요.” 옆에 있던 윤 당선인이 “무슨 얘기들이냐”고 궁금해해자 김씨는 낮은 목소리로 “건강에 해로우니까 술은 주지 마시고요”라고 거듭 당부했다고 한다.
당시 동석했던 윤 당선인 측 참모는 8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김씨가 워낙 노출을 꺼리지만 사실 이런 숨은 내조를 많이 했다”며 “당선인이 ‘전두환 공과’ 발언으로 논란에 휩싸였을 때도 김씨가 ‘빨리 사과하는 게 맞다’고 직접 설득했다”고 전했다.
윤 당선인의 정치 입문 이후 김씨는 늘 ‘뜨거운 감자’였다. 긍정적인 장면보다는 부정적인 무대에 서는 일이 잦았고, 혹독한 검증의 대상으로 지목됐다. 실제로 선거 운동 내내 사실상 커튼 뒤의 역할에 만족해야 했다.
김씨는 2012년 3월 11일 윤 당선인과 부부의 연을 맺었다. 이번 대선 이틀 뒤가 결혼 10주년이다. 결혼 당시 대검찰청 중앙수사1과장이던 윤 당선인은 53세, 김씨는 41세였다.
김씨는 2018년 주간지 인터뷰에서 “나이 차도 있고, 오래전부터 그냥 아는 아저씨로 지내다 한 스님이 나서서 연을 맺어줬다”며 “남편이 가진 돈이 2000만원밖에 없어서 망설였는데 내가 아니면 이 사람이 결혼하지 못할 것 같았다”고 회고했다.
이후 두 사람에게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 26일 허위이력 관련 사과기자회견에서 “결혼 후 어렵게 아이를 가졌지만, 남편의 직장 일로 몸과 마음이 지쳐 아이를 잃었다. 예쁜 아이를 낳으면 업고 출근하겠다던 남편의 간절한 소원도 들어줄 수 없게 되었다”고 개인사를 공개했다. 둘은 지금 반려견 4마리와 반려묘 3마리를 키우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서울중앙지검장을 거쳐 검찰총장에 오른 윤 당선인은 ‘조국 수사’를 계기로 정권과 틀어졌다. 윤 당선인 측 한 지인은 익명을 전제로 당시 있었던 일화를 들려줬다. “내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수사하는 게 못마땅해 전화로 윤 총장에게 싫은 소리를 몇 마디 했더니 버럭 화를 내며 끊는 게 아닌가. 나도 부글대던 참이었는데 윤 총장 부인에게서 문자메시지가 오더라. ‘남편이 자기 진심을 몰라 준다고 서운해하는 것 같다. 화가 가라앉으면 전화드리라고 할 테니 이해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김씨의 지인은 “김씨가 ‘남편을 돕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은 데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답답해하더라. 결국 지원 유세 한번 못해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전한다. 김씨는 결혼 전 행적문제에 경력 포장 논란, 논문표절 의혹,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문제 등 여권의 집중 타깃이 돼 대선 내내 칩거하다시피 했다.
김씨는 1972년 경기도 양평에서 공무원 출신 사업가인 김광섭(1987년 작고)씨와 최은순씨의 2남 2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학창시절 집안은 부유한 편이었다. 명일여고, 경기대 회화과를 졸업한 김씨는 숙명여대에서 미술교육으로 석사를, 국민대에서 디자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7년 전시기획사인 코바나컨텐츠를 설립해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이제 관심은 김씨의 ‘퍼스트레이디’ 행보로 모아진다. 윤 당선인이 청와대 개편을 공약하면서 영부인을 보좌하는 조직(청와대 제2부속실)도 없애겠다고 약속한 만큼 소위 ‘영부인의 활동범위’에도 기존 사례와는 큰 변화의 가능성이 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 회견에서 “남편이 대통령이 되는 경우라도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말했다.
현일훈(hyun.ilho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