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물줄기 만나는 숲속 장관
헬렌 인근 최고 명소로 각광
짧은 코스 가볍게 걷기 좋아
어쨌거나 한국 대선이 끝났다. 이제는 마음을 가라앉힐 때다. 내가 성원하던 사람이 됐든 혹은 그 반대이든, 다수의 선택을 받은 사람이 대한민국을 더 잘 이끌 수 있도록 응원하는 것이 도리이자 모두의 바람일 것이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 들뜬 기분이 도무지 가라앉지 않는다면 어디 괜찮은 산이라도 찾아 기분전환을 해보는 것도 좋겠다. 그럴 때 두 시간쯤 달려 훌쩍 가볼 만한 곳이 애나루비 폭포(Anna Ruby Falls)다.
애나루비 폭포는 조지아 최대 명소다. 폭포를 배경으로 미국인 가족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 폭포는 조지아 최대 관광지로 꼽히는 헬렌(Helen) 조지아 바로 인근에 있다. 차로 15~20분이면 닿는다. 둘루스 한인타운에선 75마일, 1시간 30분 정도 거리다. 헬렌은 유니코이 주립공원(Unicoi State Park)을 끼고 있는 유럽풍의 산간 마을로 캘리포니아의 덴마크 마을 ‘솔뱅’ 비슷한 분위기다. 독일, 네덜란드를 연상시키는 이색 건물과 이국적 풍물들이 가득하고 여름엔 레저 물놀이 시설도 많다. 한인들도 많이 찾아가는 곳이라 폭포 보러 간 김에 헬렌까지 둘러본다면 일석이조, 일타쌍피가 되겠다.
헬렌 시가지 가운데로 채터후치강이 흐른다. 강 주변으로는 다양한 음식점과 선물 가게가 즐비하다.
조지아 살면서 의외였던 게 전문 안내 책자까지 있을 정도로 크고 작은 폭포가 많다는 것이었다. 특히 애팔래치안 산맥 끝자락 북부 산악지대에 수십 개가 집중돼 있다. 그중 단골로 추천되는 곳이 애나루비 폭포다. 위대한(great), 경이로운(amazing), 경탄할 만한(admiring), 빼어난(striking), 숨을 멎게 하는(breathtaking), 장관을 이루는(spectacular), 천둥 치는 듯한(thundering) 등의 다양한 수식어만 봐도 이 폭포가 어떤 곳인지 알 수 있다. 영어 표현의 과장을 감안하더라도 이런 정도라면 한 번 가보지 않을 수 없겠다. 나는 지난해에만 세 번을 갔다. 혼자서 한 번, 나중에 가족과 한 번, 그리고 캘리포니아에서 손님이 왔을 때도 조지아 좋은 곳 자랑하고 싶어 데리고 갔다.
애나루비 폭포 초입에 있는 유니코이 호수. 한 청년이 어기여차 뱃놀이를 즐기고 있다.
애나루비 폭포로 가려면 헬렌에서 유니코이 주립공원을 거쳐 들어가야 한다. 폭포는 주립공원이 아닌 연방삼림청 관할 채터후치 국유림(Chattahoochee National Forest)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트레일은 방문자센터가 있는 주차장에서 바로 시작된다. 폭포까지 왕복 거리는 1마일이 채 안 된다.
헬렌에서 유니코이 주립공원&랏지로 가는 길목에 있는 유명한 땅콩 전문점. 한겨울에는 문을 닫는다.
유니코이 주립공원&랏지 전경. 숙박 뿐 아니라 다양한 레저도 즐길 수 있다
올라가는 길은 약간의 경사가 있지만, 포장이 되어 있어 하이힐 신은 아가씨도, 슬리퍼 질질 끄는 청년도 어슬렁어슬렁 갈 수 있다. 80대 할머니도, 서너 살 꼬마도 보이고 유모차 미는 새댁, 강아지 안고 오는 아주머니도 있었다. 말 그대로 ‘키드 프렌들리, 스트롤러 프렌들리, 도그 프렌들리(kid-friendly, stroller-friendly and dog-friendly)’ 길이다.
트레일은 붐비고 짧지만 훌륭하다. 몇 걸음만 내디뎌도 울창한 숲과 세찬 계곡 물소리에 금세 기분이 상쾌해진다. 바위틈을 휘감아 돌며 가파른 경사지를 따라 흘러내리는 물은 소리만 들어도 삿되고 헛된 마음이 씻기는 것 같다. 시원한 계곡물에 발이라도 담그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인다. 하지만 바위가 거칠고 이끼가 많아 미끄럽기 때문에 웬만하면 참는 게 좋겠다. 가끔씩 물에 쓸려 내려가거나 다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인지 조심하라는 안내표지가 곳곳에 보인다.
그렇게 쉬엄쉬엄 15분쯤 올라가면 물소리는 천둥이라도 치는 듯 더욱 거세지고 마침내 웅장한 폭포가 눈앞에 펼쳐진다. 겨울에는 한참 떨어진 곳에서도 잘 보이지만 여름에는 숲에 가려 전모를 보려면 폭포 바로 밑에까지 가야 한다.
애나루비 폭포의 장관. 양쪽에서 떨어진 물이 하나로 합쳐져 계곡 아래로 시원하게 흘러가고 있다.
애나루비 폭포는 두 개의 물줄기가 합쳐지는 곳에 만들어진 쌍폭포다. 왼쪽은 커티스 크리크(Curtis Creek)에서 떨어지는 153피트(47m)짜리, 오른쪽은 요크 크리크(York Creek)에서 내려오는 50피트(15m) 높이의 폭포다. 이곳에서 합쳐진 물은 스미스 크리크(Smith Creek)로 이름을 바꿔 유니코이 호수에서 모였다가 다시 채터후치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애틀랜타 한인들이 늘 보는 채터후치 강물이 이곳 폭포에서부터 흘러가는 셈이다.
미국에 워낙 유명한 폭포가 많다. 뉴욕주 나이아가라 폭포나 오리건주 멀트노마 폭포를 같은 곳들이다. 거기를 가 본 사람이면 겨우 이 정도 가지고 그러느냐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상대적이다. 험한 산이 없는, 사방천지 평지인 미국 동남부에서 이만한 폭포도 찾기 드물다. 만약 한국에 있다면 설악산, 지리산의 그 어떤 폭포보다는 인기를 끌었을 것이다.
헬렌 지역 특산품 중의 하나인 토종꿀 매장 진열대 모습.
조지아 북부를 소재로 한 하이킹 티셔츠를 맞춰 입은 한인 가족이 헬렌 지역의 상가를 구경하고 있다.
몇 번 언급했지만, 조지아 북부는 원래 체로키 인디언들의 터전이었다. 강과 계곡, 산 이름에 원주민 언어에서 유래된 이름이 유독 많은 이유다. 그런데 이 폭포는 뜻밖에도 미국 여성 이름이다. 사연이 있다. 남북전쟁 때 남부 연합군 대령이었던 ‘캡틴’ 제임스 H 니컬스라는 사람이 말을 타고 이 지역을 정찰하다가 멋진 폭포를 발견했다. 전쟁이 끝난 뒤 헬렌에 터를 잡은 그는 폭포 주변 지역을 구입한 뒤 애지중지하는 딸 이름을 따서 애나루비 폭포라고 불렀다. 사랑하는 딸에게 준 아빠의 깜짝 선물이었다. 애나 루비는 두 아들과 아내를 먼저 잃은 그에게 유일하게 남은 딸이었다.
니컬스 사후 뒤 폭포 주변은 벌목회사에 팔렸다가 1925년 연방정부가 매입해 채터후치 국유림의 일부가 됐다. 헬렌 초입에 있는 하드맨 농장(Hardman Farm)은 니컬스 대령이 1870년에 지어 생전에 딸 애나 루비와 함께 살았던 곳으로 조지아 사적지로 지정돼 있다.
# 메모 : 애나루비 폭포는 주립공원을 통해 들어가지만 주립공원은 아니어서 따로 입장료를 내야 한다. 1인당 5달러. 1년 입장권은 25달러다. 폭포만 걷기 섭섭하다면 유니코이 호수 초입부터 스미스 크리크를 따라 올라가는 4마일 코스 등 다양한 트레일을 걸을 수 있다. 폭포에 들렀다가 다시 유니코이 주립공원 내 트레일을 걷거나, 호수에서 배라도 타려면 주립공원 주차료를 별도로 내야 한다.
▶폭포 방문자 센터 주소 : 3455 Anna Ruby Falls Rd., Helen, GA
글·사진=이종호 애틀랜타중앙일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