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불십년(權不十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권력은 십년을 못가고 활짝 핀 꽃도 열흘을 가지 못한다는 뜻으로 정치권에서 늘 회자되는 말이다. 천하의 어떤 권력도 ‘시간의 흐름’은 막을 수 없다.
“이사(李斯,)-.그는 진나라의 영정을 도와 천하쟁패를 가능케 한 최고의 책사였고, 시황제 치하에서는 승상으로서 나라의 경영전략을 수립했다. 하지만 이사는 시황제의 유서를 위조해 호해를 황제로 추대하는 역신의 길을 선택했다. 그 최후는 비참했다.
그는 원래 초나라 관청의 하급 관리였다. 어느 날, 이사는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바로 쥐였다. 분명 같은 쥐인데 변소와 곳간 즉, 사는 곳에 따라 행동도 모습도 다른 것이다. 변소에 있는 쥐는 더러운 것을 먹고, 모습이 더러우며 더구나 사람은커녕 개가 지나가도 두려워 몸을 숨겼다. 하지만 곳간에 사는 쥐들은 모습도 깨끗하고 개는커녕 사람이 다가가도 도망치지 않았다. 이사는 깨달았다.“사람이 타고날 때부터 운명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 사람이 잘나고 못남은 변소와 곳간에 사는 쥐처럼 환경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다. 야심이 있고 지금의 처지를 바꾸고 싶으면 사람 스스로 그 환경을 바꾸고 공부를 해야 한다.”
이사가 원하는 것은 출세였다. 진나라로 건너간 이사는 여불위의 가신으로 출발하여 수완을 발휘한다. 우선 진나라에 대항하는 6국의 제후와 명사들에 대한 회유 협박을 정책으로 건의했다. 동시에 서로를 이간시키는 정책을 진행했다. 음험한 그의 정책은 커다란 위력을 발휘했다. 그 공으로 승승장구하여 법무대신에 임명된다. 여불위가 실각하자, 마침내 이사는 승상이 되었다. 기원전 221년, 진나라는 천하를 통일했다. 무려 550년간 계속되던 분열과 혼란이 끝난 것이다. 진왕은 시황제가 되었다. 이사는 황제의 최측근으로 부상했다. 이사의 권세는 절정에 달했다.
기원전 210년 7월, 시황제가 순행 도중 사망했다. 시황제의 곁에는 승상 이사, 환관 조고 그리고 시황제의 막내아들 호해가 있었다. 시황제는 유서를 남겼다. ‘북방에 가 있는 장남 부소는 3만 대군을 몽염에게 맡기고 급히 와 내 유해를 맞으라. 그리고 장례를 주관하고 차기 황제에 등극하라’였다. 간특한 조고는 음모를 꾸몄다. 그는 호해를 설득하고 이사에게 달려와 시황제의 유서를 조작하자고 제안했다. 처음에는 반대하던 이사도 조고의 끈질긴 설득에 뜻을 접었다. 유서는 ‘부소는 불효하고 몽염은 불충하니 즉시 자결하고 내 후사는 호해가 잇는다’로 조작되었다. 부소는 효성스럽게도 자살하고 호해가 진나라의 2세 황제로 등극했다.
이사와 조고는 협력했다. 하지만 조고는 이사를 제거하려고 마음먹었다. ‘권력은 나눌 수 없다’는 역사의 진리가 여기서도 적용된 것이다. 인품과 능력 그 어느 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2세 황제는 그야말로 흥청망청했고 정사는 모두 조고의 손에 의해 좌지우지 되었다. 조고의 권력은 그야말로 황제 이상이었다. 유일한 견제 세력은 이사였다.
기원전 208년 이사는 우승상 곽거질, 장군 풍겁 등과 함께 황제에게 아방궁 축성 중지를 건의했다. 하지만 이들의 상소는 황제에게 전달조차 되지 않았다. 조고는 이미 황제의 옆에 인의 장막을 친 것이다. 이에 곽거질, 풍겁은 자결하고 이사는 다시 상소를 올렸다. 조고는 이사를 모함했다. 이사는 옥에 갇히고 모진 고문을 받았다. 이사는 결국 ‘초나라와 내통해 반란을 꾀했다’는 죄를 시인했다.
황제는 이사에게 허리를 잘라 죽이는 요참형을 명령했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다. 이사가 한비에게 저질렀던 모함과 악행이 그대로 이사에게 닥친 것이다. 함양 시장 바닥에서 이사는 온 가족과 함께 요참형을 당했다. 물론 이사에게도 공은 있다. 시황제를 보필해 6개국을 정복하고 천하 통일의 대업을 완수한 점, 그리고 통일 제국의 기틀을 마련하고 각종 법령과 제도를 만든 점 등은 이사의 공로다.
하지만 이사는 그 공로를 넘어 간신의 길을 걸었다. 신념이라지만 다양한 목소리를 용납하지 않은 야만적인 ‘분서갱유’는 이사의 개인적인 야망이 빚어낸 비극이다. 또한 황제의 유서를 위조해 권력을 유지하려 한 것은 아무리 조고의 협박이 거셌다 하더라도 또 다른 기회를 잡기 위해,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이사의 추한 욕망의 결과인 것이다.
철옹성 같던 좌파정권이 몰락했다. 정치 근처에도 안 가본 강골 검사가 정계 입문 1년 만에 대권을 거머쥐었다. 어떤 드라마보다 극적이다. 좌파정권은 자기모순 때문에 스스로 무너졌다. 적폐가 된 ‘사이비 진보’는 퇴장하라는 것이 이번 선거의 메시지다. 좌파정권은 오만하고 뻔뻔했다. 그들은 20년~100년 집권을 호언했다. 그들은 막강하고 기세등등했다. 선거 기간 내내 윤석열 당선인은 공정과 정의의 어젠다를 독점했다. 기막힌 역설이지만, 그렇게 만들어 준 것은 문재인 정권이었다. 불통과 오만, 분열과 갈등으로 역사를 후퇴시킨 문 정권 5년이 대선을 정권 심판장으로 만들었다.
문 정권은 세상을 더 불공정하고 더 불의하게 만듦으로써 공정과 정의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했다. 기회는 공정하지 않고 결과는 평등하지 않았다. 일련의 사건이 586 권력 집단의 정체를 드러내주었다. 자녀 스펙을 만들려 반칙을 일삼고,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기생하고, 재개발 건물까지 손대는 그들은 우리가 알던 민주화 운동가가 아니었다. 돈과 잇속과 자리를 탐내는 속물 집단과 다름없었다. 민주당의 이재명 후보 역시 불공정 프레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가 설계했다는 ‘대장동’은 공공 이익 수천억 원을 업자에게 넘겨준 희대의 스캔들이었다. 윤 당선인은 자신을 “국민이 불러냈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최영미 시인은‘선운사에서’라는 시에서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이라고 노래했다. 선운사 동백꽃은 유명하다. 동백꽃이 질 때에는 꽃잎이 하나둘 지저분하게 떨어지지 않는다. 봉오리 채 그냥 툭하고 떨어져버린다. 바로 ‘잠깐’이다. 영원할 것 같은 권력도 언젠가는 쇠하기 마련이다. 이런 이치를 그들은 몰랐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이처럼 인간은 달콤한 권력 앞에서 한없이 기고만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