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서방제재의 직격탄으로 100여년 만의 첫 국가부도를 눈앞에 두고 있다.
14일 블룸버그·AFP통신 등에 따르면 러시아는 이달 중 달러화 표시 국채의 이자 7억3000만 달러를 지급해야한다. 우선 이중 2건의 달러화 표시 국채 1억1700만 달러의 이자를 16일까지 지급해야하는 상황이라 세계 투자자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이와 관련해 러시아 재무부는 지급 명령을 내리는 것으로 관련 절차를 시작했다. 다만 이자를 달러로 지급할지, 루블로 지불할지는 밝히지 않은 상태다. 앞서 안톤 실루아노프 러시아 재무장관은 러시아가 서방의 제재로 달러화 결제가 불가능하면 채무를 루블화로 상환할 것이라고 거듭 밝힌 바 있다.
실루아노프 장관은 러시아 국영 TV 인터뷰에서 “그것이 디폴트(채무불이행)인가? 러시아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의무를 다하는 것”이라며 루블화로 지급할 의사를 표한 바 있다. 또 서방이 러시아 중앙은행의 외환 계좌를 동결해 러시아를 ‘인위적 디폴트’로 몰아가려 한다고 비난했다.
러시아가 16일 2건의 달러화 국채 이자를 루블화로 상환하면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이후 최초의 외화 디폴트가 된다. 당시 블라디미르 레닌이 이끈 볼셰비키는 혁명으로 차르(황제)를 몰아낸 뒤 제정 러시아의 채무 변제를 거부했다.
16일 이자 만기가 도래하는 2건의 달러화 국채는 모두 루블화 상환이 가능하다는 옵션이 없는데,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앞서 합의된 통화가 아닌 다른 통화로 채무를 상환하는 것은 디폴트로 간주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러시아가 이자 상환에 실패하거나 달러가 아닌 루블화로 지급한다면 약 1500억 달러에 이르는 러시아 정부와 가스프롬·루크오일·스베르방크 등 기업들의 외화 부채에 대한 연쇄 디폴트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서방의 제재에 가담한 ‘비우호국가’의 투자자에게 루블화로 채무를 상환할 수 있도록 한 대통령령을 내리자 러시아가 채무 상환 의무를 다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졌다.
실루아노프 장관은 지난 13일 인터뷰에서 “우리의 전체 외화보유액은 6400억 달러인데 그 가운데 3000억 달러 가량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도 같은 날 “러시아의 채무불이행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이라고 더는 생각하지 않는다. 러시아는 빚을 갚을 돈이 있지만 (그 돈에) 접근할 수가 없다”면서도 러시아로 인한 세계적 금융위기 가능성은 부인했다.
한편 16일 이자 만기가 도래하는 2건의 국채는 30일간의 유예기간이 있다. 채권자 또는 신용평가사, 국제스와프파생상품협회(ISDA) 산하 위원회가 루블화 지급에 대해 신용 사건이라고 결정하고 유예기간 내에 달러화로 이자가 지급되지 않으면, 러시아는 공식적으로 디폴트를 낸 것으로 결정된다.
고석현 기자 ko.sukhy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