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인들, 페퍼스프레이 챙기거나 무조건 택시 타”
“누군가에겐 한국적 얼굴이 전쟁 패배·매춘부·스파이·가난·싼 노동력 연상시켜”
소설 ‘파친코’로 유명한 재미 한인 작가 이민진(53)이 미국에서 아시아계가 겪는 차별과 공포에 대해 펜을 들었다.
이 작가는 뉴욕타임스(NYT) 20일자 지면에 실릴 예정인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항상 두려움에 떨며 살아왔다’는 제목의 기고문을 통해 경험담 등을 털어놨다.
그는 “이달 초 소셜미디어에서 아시아인과 아시아계 미국인들에게 최근 공격 증가에 대응해 어떻게 일상을 바꿨는지를 묻는 비공식 설문을 했다”며 “그들은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 머무르거나, 안전한 길로만 다니고, 페퍼스프레이를 들고 다니며, 친구들과 같이 있을 때만 거리로 나선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아시아계라는 게 너무 드러나지 않도록 모자를 써서 얼굴을 가리거나, 여유가 없어도 무조건 택시만 탄다는 답변도 나왔다.
일부 아시아계는 “너무나 위협을 느껴 스스로를 거의 가두다시피 했다”는 게 이 작가의 전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뉴욕을 비롯한 미국 곳곳에서 아시아계를 겨냥한 끔찍한 폭력 사건이 급증한 것이 주된 배경이지만, 아시아계를 대상으로 한 편견과 범죄의 뿌리는 깊다.
1977년 세 딸을 데리고 서울에서 뉴욕으로 이주한 이 작가의 부모는 맨해튼 한인타운에서 보석상을 운영하면서 여러 차례 강도와 절도에 시달렸고, 모친이 퇴근길에 지하철역에서 낯선 남자의 공격을 받을 뻔했던 적도 있다고 한다.
언니는 고교 통학길에 지하철 안에서 10대 청소년들에 둘러싸여 “칭크”(중국인을 가리키는 모욕적인 표현)라는 욕설을 듣고 지갑을 빼앗기기도 했다.
1986년 예일대에 진학한 이 작가는 뉴욕에서와 마찬가지로 “정신을 바짝 차리고 다녀야 했다”면서 캠퍼스 인근에서 구걸하던 한 퇴역 군인이 자신을 붙잡고 “난 중국 여자를 좋아한다”고 희롱한 사건을 술회했다. “보통은 비폭력적이고 친절한 걸인들이 나한테는 그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아무리 수수하고 남자처럼 옷을 입어도 “난 눈에 띄었다”면서 “내 인종을 집에 두고 올 수는 없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누군가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작고 얕게 패인 눈, 둥그런 코, 불거진 광대뼈, 검은 직모와 같은 나의 한국적인 얼굴이, 전쟁의 패배나 매춘부, 스파이, 난민, 가난, 질병, 값싼 노동력, 경시대회, 사기꾼, 성적 경쟁, 재벌, 나쁜 육아, 산업화 또는 포르노 중독을 연상시켰다”고 진단했다.
이 작가는 “아시아계는 미국에 처음 왔을 때부터 적대와 거부, 때로는 정부로부터의 제재와 맞닥뜨렸다”면서 “그런 것이 거의 바뀌지 않았다는 게 슬픈 대목”이라고 한탄했다.
1970∼1980년대 일본의 급부상에 대한 서구의 공포, 이후 중국이 초강대국이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유래한 중국 혐오 현상, 9·11 테러 이후 이슬람 포비아(혐오증)가 아시아계에 대한 증오를 더했다는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 또는 정부기관이 나를 완벽히 안전하게 지켜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다”면서 “이민 배척자들과 (노숙자처럼) 권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나처럼 생긴 사람들을 공격한다. 그들은 우리가 신체적으로, 정치적으로 약하며 하나로 뭉쳐 대응하거나 목소리를 높이려 하지 않는다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이 작가는 여전히 부모와 자매, 남편과 자녀를 걱정하고 있다며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고 싶다. 모두를 위해 안전을 원한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